국힘 가도 손색 없는 김현종, 양 캠프 줄 타는 셀럽들

[1단 기사로 본 세상] 거대 양당은 참 많이 닮았다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헤럴드경제 12월1일 헨리 키신저 관련 기사.

헤럴드경제가 지난 1일 ‘단독’이란 이름표를 달아 “李캠프 김현종, 헨리 키신저 ‘이재명 후보 Good wishes’ 친필 사인 공개”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98살의 미국인을 한국 대선에 불러낸 이는 이재명 캠프에서 국제통상특보단장을 맡은 김현종 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다. 김 단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단독’이라고 보도하는 언론은 또 뭔가. 하루 종일 진중권, 서민, 김어준 같은 정치낭인들의 페이스북만 쳐다보면서 손가락 속도전을 펼치며 ‘단독’ 딱지를 붙인 기사를 굳이 인간이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명이 채 30분도 안 되는 기사다. 이런 기사라면 인공지능(AI)에 맡기면 될 일이다.

한미FTA 전도사 김 단장과 키신저는 참 어울리는 조합이다. 외국 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10살 이후 줄곧 미국에 살면서 미국 대학과 대학원, 로스쿨을 나와 미국 대형로펌에서 근무했던 김현종이 한미FTA 전도사가 되는 건 당연했다. 노무현, 문재인 두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그는 민주당이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런 김 단장이 헨리 키신저까지 동원해 대선 캠프에서 한 건 했다. 이 틈에 키신저는 ‘인공지능시대’라는 자신의 새 책 선전까지 했다.

전쟁범죄자 헨리 키신저까지 동원

1923년생인 헨리 키신저는 1951년부터 한국을 들락거렸으니 70년 동안 한국을 주물러 왔다. 십여 년 전부터는 조선일보가 그를 자사 콘퍼런스에 자주 초청한다.

키신저가 오면 조선일보는 인천공항까지 나가 그를 영접하고 기사를 쓴다. 그의 공항 패션 차림은 조선일보 지면에 자주 사진으로 등장한다. 85살의 키신저는 2008년 초 조선일보 행사 참석차 인천공항에 도착해 방한 일성을 ‘지도자는 자신만의 비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추겨 세우며 “지난 5년간 손상된 한미관계 복원에 관심이 많다”며 노무현 정부를 은근히 깎아 내렸다.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지만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냉전 사고도 밑자락에 깔았다. 조선일보는 여든이 넘은 전쟁범죄자 키신저를 불러 놓고 아시아의 ‘미래’를 그렸다.

키신저는 1923년 5월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1938년 나치를 피해 도망 나온 키신저는 2차 대전 말 미국 점령군으로 조국 독일에 돌아가지만, 이미 미국 국적을 얻은 뒤였다. 종전 후 10년 넘게 하버드에서 조용히 보낸다. 겉으로 키신저가 배우고 가르친 과목은 정치학이다. 그러나 속으론 전쟁학이다. 그는 1959~69년까지 미 방위연구계획을 주도하면서 팍스 아메리카의 문을 열었다. 본격 정치행보는 닉슨부터 포드 행정부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1969~75년)과 국무장관(1973~77년)을 하던 때다. 그러나 키신저는 1955년부터 군인 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나 케네디, 존슨을 두루 거치면서 안보 분야에서 일했다. 냉전이 키신저를 오롯이 키웠다.

한국 언론은 키신저를 온건 매파로 분류한다. 그러나 그는 극우파의 맹주다. 1969년 4월 14일 동해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전자첩보기 EC-121이 북한 공군기에 격추돼 승무원 31명이 몰사했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뉴욕타임즈 출신 탐사보도 전문기자 시모어 허쉬(Seymour M. Hersh)는 1984년에 쓴 ‘권력의 대가, 닉슨 백악관의 키신저(Price of Power : Kissinger in the Nixon White House)’에서 당시 비화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 비행기는 68년 납치된 푸에블로호와 같이 적성국 통신감청을 전문으로 했다. 당시 대통령 닉슨과 안보보좌관 키신저는 무력 보복을 주장했다”고.

이때 키신저에 맞서 전쟁을 말린 쪽은 미 중앙정보부(CIA)였다. CIA는 북한의 통신을 감청한 결과 고의 도발이 아니고 북한의 관제실수라며 온건한 대응을 주장했고, 닉슨은 물러섰다. 당시 미국의 의사결정 2인자인 키신저 주장대로 무력 보복했으면 한반도는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졌을 거다. 제 나라를 없애려 했던 노인네를 석학이라며 초청하는 신문사가 있다. 이 일화는 조선일보 출신 조갑제가 쓴 책 ‘국가안전기획부(1988년)’ 218쪽에도 상세히 나온다.

  미 정보기 피격을 보도한 동아일보(1969년 4월16일 1면)

떠벌이 키신저는 74년 11월 포드 대통령과 함께 미 국무장관으로 방한해서도 “한국의 국무총리(김종필)와 국회의장(정일권)이 자신의 하버드대 제자”라고 떠벌린다. 키신저는 숱한 여배우와 가수들과 문란한 사생활 끝에 74년 봄 낸시 배긴스와 비밀 결혼해 호사가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출신으로 민주당에서 정치를 해온 조세형 전 의원이 쓴 ‘워싱턴 특파원(1976년, 민음사)’ 48쪽에도 키신저의 떠벌이 기질은 잘 드러난다. 조세형은 키신저가 정치 일선에서 뛰던 1968~74년까지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면서 키신저를 직접 겪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유신독재 때 책을 썼던 조세형 기자조차 키신저를 ‘아시아의 미래’라고 추겨 세우진 않았다. 그런데 언론자유가 활개 치는 21세기에 키신저를 영웅으로 그리는 신문이 있다. 조세형은 그의 책에서 키신저의 성공 비결을 “카우보이처럼 혼자 행동하는데 있다”고 했다. “무자비할 만큼 현실적”이고 “힘의 존중”을 신앙으로 여기는 인물로 묘사한다. 30년 전의 문법임을 감안하면 조세형이 본 키신저는 안하무인의 독선가다.

캄보디아 킬링필드는 1969~73년의 1기와 1975~79년의 2기로 나뉜다. 1기 킬링필드는 미국이 먼저 자행했다. 그러나 우리는 크메르 루주가 집권했던 2기만 기억한다. 1기 때 미군의 폭격으로 60만~80만 명의 캄보디아 민중이 죽었다. 1기 학살 때 미국은 B-52 전략폭격기로 53만9129톤의 포탄을 쏟아 부었다. 미국이 2차 대전 때 일본에 쏟은 포탄 16만 톤의 3배다. 1기 학살의 주범은 닉슨과 키신저다. 키신저는 “베트콩들이 캄보디아를 보급선으로 삼아 준동한다”며 캄보디아 비밀폭격을 주도했다. 뒤늦게 미 의회가 중립국인 캄보디아 폭격을 문제 삼자 키신저는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베트콩을 공격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이렇게 키신저는 베트남-미국 간 전쟁에서 제3자였던 캄보디아를 향해 비밀전쟁을 수행했다.

2005년 4월 ‘한겨레21’은 베트남전 종전 30돌 기념으로 전 베트남군 총사령관 보응웬잡 장군(당시 94세)을 인터뷰했다. 보응웬잡은 우리에게 ‘인민의 전쟁 인민의 군대(백두, 1988년)’으로 더 잘 알려진 디엔비엔푸 전투의 노장이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은 1973년 평화협정의 공로로 키신저와 레둑토 당시 북베트남 수상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지명했지만, 레둑토는 베트남에 아직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고, 위선자 키신자처럼 비굴하지 않겠다”며 수상을 거부한 사실을 소개했다. 우리 보수언론이 이런 키신저를 세계적 석학이니 국제전략전문가로 호명하는 사이 그는 백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호사스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치지망생들

이재명 후보가 지난 1일 영입한 청년인재 중 한 명은 바로 전날까지 국민의힘 합류를 타진하기도 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이재명 캠프가 데이터 전문가로 영입한 김윤이(38)씨가 전날까지 자신에게 이력서를 전달하는 등 국민의힘 대선 캠프에 합류 의사를 타진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 12월2일 4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치지망생들도 문제지만, 어디로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정치구조를 만들어 놓은 거대 양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도 양당을 저울질하다가 민주당을 택했다. 이렇게도 많이 닮은 두 당이 카메라 앞에선 왜 맨날 싸울까.

  매일경제 12월2일 6면.

‘이미지 정치’ 찾는 것도 닮은꼴

그런데 예능 PD 데려다 이미지 정치한다고 집 나간 민심이 돌아올까. 어차피 정치는 쇼라고 고개 돌리기엔 좀 너무하다. 이재명 캠프는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슬로건을 만든 카피라이터 정철도 ‘메시지 총괄’이란 이름으로 영입했다.

광고하는 사람을 대선 캠프에 모셔가는 것도 거대 양당이 똑같다.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엔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던 광고 전문가 조동원 씨가 홍보기획본부장으로 활약했다. 그 반대편엔 소주 광고 ‘처음처럼’을 유행시킨 손혜원이 있었다.

  매일경제 11월17일 8면.

정철이 만든 ‘사람이 먼저다’는 개그맨 송준근이 개콘에 이식했지만, 정작 개콘은 사라진지 오래다. 유행어 만들어 이미지 정치하려거든 요즘 쉬고 있는 개그맨이 훨씬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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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나이 외에 조건 없는 보통 평등선거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이미지 정치는 필연적이다. 키신저와 조선일보 비판은 좋지만 이후 전개는 현실세계와 연결되지 못한다. 친미우파 거대양당이 아니라 반미좌파 거대양당이 경쟁한대도 이미지 정치는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