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아이티 대통령 피살 추적보도

[1단 기사로 본 세상] 6개월 탐사로 드러난 아이티 대통령 암살 배후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한겨레 2021년 12월 14일 13면.

200년 넘게 끊임없는 암살과 쿠데타로 혼란을 거듭해온 서인도제도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지난 7월 7일 새벽에 또 대통령이 무장괴한들에게 피살당했다. 암살의 배후를 두고 많은 보도가 이어졌지만 오리무중으로 반년이 훌쩍 지났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12일 살해된 조브네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포함된 마약 거래자 명단을 작성해 미국에 넘기려다가 피살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생존한 대통령 아내를 만나 괴한들이 방에서 서류를 뒤지다가 “이거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모이즈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 등 신분을 막론하고 마약이나 무기 밀래 관련자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조사 대상 중 몇몇은 대통령의 조처에 배신감을 느껴 그를 암살했다”라는 아이티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했다. 뉴욕타임스는 아이티 기업가 샤를 생레미를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생레미는 전직 대통령의 인척으로 미국 마약단속국이 주시해온 인물로, 아이티의 각종 정부 계약과 대통령의 인사까지 입김을 발휘해왔다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집요하게 관계자들을 취재한 뉴욕타임스의 끈기에 감탄했다. 뉴욕타임스의 본질은 놔두고 곁가지만 붙들고 흔들어대는 미디어 홍수 속에 언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표본을 보여줬다.

1851년 ‘1페니’짜리 값싼 신문으로 출발해 1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본의 편인지 잘 알지만,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레거시 미디어란 조롱, ‘혁신’으로 극복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7월 40대 여성 광고전문가 메러디스 코핏 레비엔(49)을 CEO로 뽑았다. 뉴욕타임스 역사상 최연소 CEO였다. 레비엔 사장은 기사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전문 경영인이다. 레비엔은 잡지 ‘디 애틀랜틱’에서 광고를 담당했고 경제 전문매체 ‘포브스’에서도 최고매출책임자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뉴욕타임스 광고와 구독관리 업무를 맡았다.
레비엔은 유료 구독자 수 10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모두들 신문을 사양 산업이라고 외면했지만 뉴욕타임스는 공격적 경영으로 21세기 들어 온라인 유료 구독자를 500만 명 이상 새로 확보했다. 변화를 이끌 수장으로 여성을 그것도 40대 젊은 여성을 뽑는 파격도 보여줬다.

  2020년 7월 24일 조선일보 25면(왼쪽)과 한겨레 19면.

신문사 임원은 고사하고 여성 데스크 비율조차 10% 선에 간당간당하는 우리 언론 환경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한 사람들을 석학이라고 불러놓고 참가를 강권해 돈을 버는 컨퍼런스와 광고형 기사로 한몫을 단단히 챙기는 레드 오션을 새로운 돈벌이 수단쯤으로 여기는 우리 언론은 뉴욕타임스라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나.

철저하게 자본 편에 선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의 의미 있는 기사와 경영전략을 부러워하면서도 늘 그 신문이 누구의 편인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노동운동이 한창이었던 19세기 말 미국 언론은 “굶주린 파업 노동자들에게 총알 밥이나 처먹여라”고 선동했다. 1873년 9월 18일 필라델피아 3번가에 있던 제이 쿠크 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불황의 서막이 올랐다. 그 시간 제이 쿠크는 그랜트 대통령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가 이 사실을 들었다. 1877년 미국 실업자는 3백만 명에 이르렀다. 미국 전체 노동자의 1/5가 일자리를 잃었다. 임금은 45%나 줄었다. 30개의 전국노조 가운데 1877년엔 고작 8, 9개만 남았다. 미국 신문들은 실업자들의 성격적 파탄 즉 ‘게으른 성격’ 탓이라고 했다.

앤드류 카네기나 JP 모건, 록펠러 등 자본가는 ‘한몫 잡기에는 혼란이 좋다’고 의견을 모았다. 카네기는 재빨리 거대한 강철공장을 세워 값싼 원료와 노동력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록펠러는 수 백 개의 경쟁기업을 합병했고, 모건은 쿠크를 대신해 미국의 대표 은행가가 됐다.

동남부 펜실베니아주 경제를 주름 잡은 프랭클린 벤자민 고웬은 1869년 고작 33살에 ‘필라델피아 앤드 리딩 철도회사’ 사장이 됐다. 고웬은 아일랜드 출신의 노동공제조합(노조) 우두머리 죤 씨니를 꼬셨다. 고웬은 남북전쟁 때 북군에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사서 입대시키고 무연탄의 도시 포츠빌에서 젊은 지방검사로 숨어 지냈다. 북아일랜드 이민자였던 고웬의 아버지는 남부와 노예제도에 동조했다. 고웬은 씨니를 이용해 노조를 자신의 계획을 실현할 도구로 삼았다.

1877년 노동자 파업 시위가 여러 도시로 번지자 경찰은 노동자를 공격했다. 경찰은 파업 시위대를 공산주의로 매도했다. 말을 탄 경찰이 도망가는 노동자를 쫓아가 채찍으로 등짝을 후려갈겼다. 1877년 6월 1일 ‘펜실베니아 앤드 리딩 철도회사’가 또다시 임금 10% 삭감을 발표하자, 노동자들은 즉각 파업에 나섰다. 이후 파업은 한 달여 이어졌다. 프렌치 장군이 출동해 파업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군대의 발포와 함께 진압이 시작됐다. 1877년 철도 파업은 단순 임금투쟁 이상이었다.

현장을 취재했던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 광경(파업시위 진압)이 재미가 없진 않았다”고 비아냥거리면서 “어제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 같다. 공산주의는 저절로 자라는 풀은 아니다”라며 노조 혐오 기사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 1877년 7월 25일자 ‘공산주의자들에 점령된 시카고’라는 제목의 기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만 그런 게 아니다. 뉴욕 트리뷴도 1877년 7월 28일자에 ‘시카고의 공산주의자들… 13명 피살’이란 제목으로, 뉴욕 월드도 1877년 7월 22일자에 ‘피츠버그 약탈되다. 공산주의의 악령에 완전히 사로잡힌 피츠버그’라는 제목으로 각각 보도했다.

한창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던 19세기 후반 미국 신문은 한결같이 ‘투쟁하는 노동자에겐 몽둥이가 제일 좋은 약’이라고 선전하며 자본의 선봉대를 자처했다. 맨 앞에 뉴욕타임스가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파업 노동자를 ‘야만적 종자들’이라고 규정한 뒤 “그들은 몽둥이의 힘 밖에는 무서운 것을 모른다”거나 “노조원들에게 수류탄을 던져 혼구멍을 내 주어야 한다”고 버젓이 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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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신문사 임원은 고사하고 여성 데스크 비율조차 10% 선에 간당간당하는 우리 언론 환경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한 사람들을 석학이라고 불러놓고 참가를 강권해 돈을 버는 컨퍼런스와 광고형 기사로 한몫을 단단히 챙기는 레드 오션을 새로운 돈벌이 수단쯤으로 여기는 우리 언론은 뉴욕타임스라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나.

  • 이수헌

    먼 기사여. 아아티도 심각한 지역 아니었나. 지도를 보니까 쿠바 옆에 있구만. 그곳 대통령이 어떻게 된 거여. 기사라고 반 년 가까이 지난 거를 가져와서 뉴욕타임즈 이야기를 했구먼. 핀트를 잘못잡은 것 같다. 노동계 언론에서 어느 곳이 제일 많이 보려나. 참세상도 근래에는 조금 늘지 않았나. 노동계 언론은 아니지만 좋은 생각인가 그책도 가끔 볼만한데. 경락이는 이제 그만 참세상을 떠나서 좋은 생각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