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아랍 청년의 현실

[INTERNATIONAL2]


1. 재테크하는 아랍 청년

최근 국내 한 언론은 중국 젊은 층의 ‘금테크’ 현상을 전했다. 2030 젊은 세대가 금으로 만든 액세서리 수집에 푹 빠졌다는 것이다. 중국 금 소비 백서에 따르면 2021년 금은방 손님의 약 75%가 25세~35세로, 젊은 세대가 큰손으로 부상했다.1) 이 정도는 아니지만, 아랍의 일부 청년도 재테크에 적극적이다. 정치적 불안정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불확실성을 배경으로 아랍 청년들 사이에서는 휴대폰 앱을 통한 재테크가 유행하고 있다. 현재 투자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한 29세의 아랍 여성은 2년 전 자신이 태어난 레바논을 떠나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정착하기 전만 해도 근로소득으로 삶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주변 사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주를 결심한 것은 조국 레바논이 2019년 말 이래로 초유의 경제위기와 재정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이 청년은 IT 기술로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당연히 이전보다 저축, 투자 등 자산관리가 훨씬 쉬워졌다. 이것은 주식이나 코인에 몰두하는 한국의 청년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새로운 기술에 힘입은 재테크의 부상을 촉진했다. 걸프만 산유국의 경우 코로나19 초기 유가 급락으로 이전부터 시도해온 경제구조와 재정 수입원의 다변화 전략을 본격화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것은 지금까지의 관대했던 복지제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제 현재와 미래의 생계를 감당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재테크 산업의 발전은 이러한 요구에 부합했다. 또한 감염병의 확산으로 일부 산업이 붕괴하고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금융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나타났다. 개미 투자자들이 부상한 것이다. 두바이의 한 온라인 투자금융회사 대표에 따르면, 2020년 일사분기부터 본인이 일하는 회사의 신규 계좌가 급속히 늘어났다. 그리고 신규 고객은 대부분 25~45세의 젊은 층이라고 한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푸자이라 국립은행에서 일하는 한 투자전문가는 “우리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플랫폼은 투자를 보다 쉽게 하고 투자 관행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2)

2. 의외의 형상들

재테크에 몰두하는 중산층 청년의 모습은 기존 아랍 세계에 대한 논의 레퍼토리에 없던 것이다. 일자리 부족이나 궁핍한 생활로 분노를 표출하는 군중, 사우디 왕자같이 얼마 되지 않는 부호들,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던지는 전사. 이러한 지배적인 이미지에 포함되지 않는 형상들을 몇 가지 더 찾아보자.

삼포세대나 오포세대는 지구 저편 아랍세계에도 존재한다. 근대적 사고의 확산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이 결혼과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1960년대에는 18~20세에 결혼을 했다면 이제 이 연령은 예멘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27세 정도로 높아졌다. 참고로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의 평균 혼인 연령은 국가에 따라 차이가 커서 스웨덴은 34세, 프랑스는 32세이다. 이에 반해 동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30세 미만이다.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실업이나 불안전 고용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정착된 것과 만혼 현상은 무관하지 않다. 혼인 비용에 대한 부담도 장애 요소다. 대부분 남성이 부담하는데 약혼식 반지, 결혼식 반지, 귀걸이, 예복, 그리고 적어도 이틀 정도 이어지는 피로연 음악 및 음식비용 등이 포함된다. 여성 역시 부모가 지참금을 준비해야 한다. 커플이 실업 상태에 있거나 저임금 일자리를 가진 경우 이 비용을 충당하기 쉽지 않다.3) 게다가 결혼을 위해서는 자기 소유의 집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여전히 강한 것도 결혼을 미루는 이유가 되고 있다.

결혼을 주저하는 것은 아이 계획을 미루는 양상을 동반한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출산율은 2.8~2.9명 정도다. 이 수준은 10여 년 전부터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평균 출산율이 1.53명(2020년)인 유럽연합이나 0.9명 수준의 한국보다는 높은 편이지만 핵가족 모델이 대세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결혼 연령이 늦어짐과 동시에 학업 기간도 길어졌다.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은 사회 진보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회진출이 어려워진 사회 상황으로 강요된 선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행하는 과정이 점점 더 길어짐을 의미한다. 성인기로의 이행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학교에서 일자리로, 일자리에서 가족의 구성으로. 이 과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결혼을 미루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구조의 변화가 가족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의 안정성이 크게 침해된 것이 가족 구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가족을 최후의 보루로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아랍사회는 강한 부족 연대, 가족 연대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것을 아랍사회 전통의 산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강한 유대관계는 사회의 위기 속에서 나타난 가족 가치의 부활이라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랍 사회에서 자녀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는 현상도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출산율 저하를 경험한 이 지역 국가들은 이전보다 희소해진 자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저출산으로 희소해진 자녀가 가족 내에서 어떤 존재인지 잘 알 수 있다. 결혼, 출산, 양육이 자연스러운 현상에서 중대한 결심이 되는 보편적인 경향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교성의 개인화도 아랍 청년이 지닌 의외의 모습이다. 아랍 사회나 이슬람 사회는 강한 종교성, 그리고 집단적인 종교성의 대명사다. 그런데 가족구조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세속화 현상도 이 지역을 피해 가지 않는다. 종교가 이 지역을 특징짓는 요인인 것은 종교성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종교적 헌신성의 정도로 보면 한국이나 미국, 중남미 등 다른 지역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랍 세계가 특별한 것은 유독 이 지역에서 종교가 정치성을 강하게 띠고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며 시민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6~2017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8개국에 거주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에게 종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큰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4) 이들에게 이제 종교는 개인적인 웰빙이나 수양의 측면이 더 강하다. 또한 경제력과 학력이 높은 계층이나 대도시에서 더욱 강한 종교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 지역의 종교성이 전근대적인 유산이라거나 빈곤과 배제의 산물일 것이라는 일반적 인식에 보다 신중해지길 요구한다.


3. 청년들에게 놓인 극단적인 선택지들

앨버트 허쉬만이 제시한 이탈(exit), 항의(voice), 충성(loyalty)이라는 유형화를 아랍 청년에 적용해보면 이주, 저항, 순응의 형태를 찾을 수 있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이 경제학자의 논문 제목은 아랍 청년에게 주어진 선택지에 더 잘 부합하는 표현인 듯하다. 계급적 측면에서 보면, 의외로 이탈이나 항의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청년들의 것이다. 이주는 언어적, 경제적, 사회적 자본을 요구하며 저항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학력 수준과 경제 수준을 가진 이들이 주도한다. 체제에 순응하는 보수적인 태도는 역설적으로 무엇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선택지인 경향이 있다. 심지어 저항운동의 수혜마저 균등하지 않다. 튀니지의 공공정책 전문가 지안 벤 야야는 튀니지 혁명의 실패를 청년층 내부의 격차에서 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모든 청년이 같은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혁명과 연관된 직업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은 튀니지 사회의 개혁 주체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환멸을 느낄 수 있다.”5)

2011년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에 대해 철학자 슬로보예 지젝은 자기 파괴적인 폭력, 종교적 근본주의, ‘아랍의 봄’과 같은 저항 행위6)와 같은 유형과, 또는 조금 다른 식으로 아무런 요구 없는 저항, 절대적인 믿음에 근거한 저항, 그리고 고전적인 시민의 저항과 같은 유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폭력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무력함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일자리를 가질 전망이 불투명한 이들, 미래가 없는 이들이 바로 이러한 유형의 저항과 폭력의 주체들이다. 논의의 배경이 주로 유럽과 중동이기도 해서 그가 제시한 형상들은 아랍 청년에 잘 부합한다.

4. 이데올로기로서의 청년 담론

적어도 아랍 세계에서 청년은 단지 하나의 생애주기로서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30%에 육박하는 청년실업 문제나 거리에서 좌절과 분노를 표출하는 청년의 모습은 해당 사회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이때 청년 또는 청소년은 교육이나 주거, 일자리, 미래 등 무언가를 결여한 존재이자 범죄나 집합행동을 유발하는 위험한 계급이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아랍 청년들은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로 표상된다. 한쪽에는 이슬람주의자나 테러리스트, 다른 한쪽에는 실업과 배제에 처한 무력한 존재가 있다.

외부 세계가 이 지역의 청년을 언급할 때면 정치적 함의가 더욱 명백해진다. 여성이 아랍사회의 후진성과 억압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사용돼왔듯 청년은 위험과 비참함, 그리고 암울한 미래를 강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청년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겨진다. 심지어 성인의 기준을 크게 넘어선 연령대의 시민도 청년이라 불리며 부모나 국가가 개입해야 하고 그래도 되는 존재로 간주한다. 몇 세 미만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높은 실업률과 저항운동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도한 언급은 성인 시민에게 개입하는 근거가 된다. 이미 독립한 지 두 세대 정도가 지난 나라에 소위 국제사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근거로 활용된다는 뜻이다. 청년에 해당하는 연령대는 제각각이다. 한국에서는 14~29세, 15~29세, 19~29세, 19~34세, 20~39세, 2030 세대 등으로 규정된다. 아랍세계에서도 15~29, 19~39 등 통계에 따라 다양한 연령대를 의미한다. 질적인 면에서도 엄밀한 정의 없이 그때그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삐에르 부르디외(1980)는 ‘청년’이 내용이 없는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이라고 했다.7) 엄밀하지 않은 개념이면서도 정치 담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념이다.

5. 오래된 현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한 아랍 전문 학술지는 〈아랍 청년: 도전과 기회〉라는 특집호를 발간했다.8) 당시 이러한 시도가 벌어진 배경은 아랍 세계의 인구변동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 세대 전인 1970년대 7~9명에 달했던 합계출산율이 2000년에는 평균 3.5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다른 많은 변화를 동반했다. 석유 수입에 의존했던 지대 경제체제의 위기, 지역분쟁의 격화, 세계화와 같은 변화가 아랍 청년이 당면해야 했던 현실이었다. 가부장제의 위기와 세대 갈등도 인구변화가 낳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러한 변화가 아랍 사회에 기회가 될지 부담이 될지 당시로선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질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출구는 막혀 있고 기다리는 사회는 오지 않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을 특징짓는 청년의 이탈과 저항은 통합의 실패, 사회의 해체가 낳은 전형적인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정보화, 세계화의 맷돌이 아랍 청년들을 세계 어느 청년과 다르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생경한 모습도 오랜 전통의 잔존이라기보다 전 지구적인 맷돌이 새로이 빚어내고 있는 생경한 결과인 측면이 크다. 새로운 비참함이 지구 저편의 청년과 우리의 청년을 운명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하는 비참의 한 축인 전쟁과 폭력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또 다른 축의 비참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각주>
1) https://news.v.daum.net/v/20211216173014556?s=tv_news, 2021년 12월 16일 검색
2) https://www.notretemps.com/depeches/dans-le-monde-arabe-les-fintechs-ont-le-vent-en-poupe-aupres-des-jeunes-42610, 2021년 12월 14일 검색
3) Stefano Pontiggia, 2020, “Tents and rails: ‘Young people’ of southern Tunisia between unemployment, waiting and protest”, Ateliers d’anthropologie, no.47, p.8.
4) Friedrich-Ebert-Stiftung, 2018, Coping with Uncertainty: Young People in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MENA Youth Study.
5) https://www.nouvelobs.com/monde/20201217.OBS37671/ils-avaient-entre-16-et-19-ans-pendant-le-printemps-arabe-en-tunisie-ils-temoignent-dix-ans-plus-tard.html, 2020년 12월 18일 검색
6) 슬로보예 지젝, 2012, 『멈춰라, 생각하라』(주성우 옮김), 미래엔: 120쪽.
7) Pierre Bourdieu, 1980, Questions de sociologie, E´ditions de Minuit: pp.143-154.
8) Philippe Fargues, 2001, “Jeunesse du monde arabe: de´fis et opportunite´s”, Monde arabe Maghreb-Machrek Vol. 171-172, La Documentation franç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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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신자유주의, 정보화, 세계화의 맷돌이 아랍 청년들을 세계 어느 청년과 다르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생경한 모습도 오랜 전통의 잔존이라기보다 전 지구적인 맷돌이 새로이 빚어내고 있는 생경한 결과인 측면이 크다. 새로운 비참함이 지구 저편의 청년과 우리의 청년을 운명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하는 비참의 한 축인 전쟁과 폭력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또 다른 축의 비참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