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한국산연 빼고는 말할게 없어요”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48)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일본 산켄전기 위장 폐업 철회 원직복직 투쟁 이야기③

매일 똑같은 일상이란…

1월 12일 점심 무렵, 산켄전기 서울영업소와 LG·산켄전기 합작회사(어드밴스 파워디바이스 테크놀로지)가 있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건와빌딩 앞. 경남 창원에서 올라온 한국산연 해고노동자 이명희 씨(한국산연 입사 33년 차)와 이정희 씨(한국산연 입사 29년 차)가 선전전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2020년 7월 15일 모기업인 일본 산켄전기의 일방적인 폐업(법인해산) 공고 이후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549일이 되는 날이다. 주황색 노동조합 조끼가 아니었다면, 영하 12도 서울 한파에 대비해 두툼한 패딩 점퍼로 ‘완전 무장’ 한 두 노동자를 알아보기 힘들 뻔 했다.

“창원보다 서울이 더 추워요. 여기 마곡하고 여의도 LG가 진짜 춥거든예. 바람만 없으면 괜찮은데…. 여기는 골바람이 불고, LG는 한강이 있으니까 강바람이 너무 차요. 와아, 손 시렵겠다. 장갑을 좀 끼고 다니지.”


명희 씨와 정희 씨는 내가 너무 춥게 입었다며 걱정을 한다. 두 노동자처럼 거리에서 매일 찬바람과 맞서지 않아도 되는 내 처지가 미안해진다.

그동안 십 여 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일본 산켄전기의 위장폐업 철회·한국산연 공장정상화·해고자 복직’ 요구를 걸고 산켄전기 서울영업소와 일본대사관, LG전자, 부산영사관,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등에서 투쟁해왔다.

경남 마산자유무역지역(구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던 한국산연은 1973년 일본 산켄전기가 100% 출자해서 설립한 회사로, 전원장치와 트랜스·CCFL(냉음극 형광램프)·LED 등의 전기전자 부품을 생산해왔다. 그동안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조세·임대료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받아온 한국산연은 코로나19 시기를 틈타 지난해 1월 20일 폐업하고 생산직 노동자 16명을 포함한 한국산연 전체 노동자를 해고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일 청산 등기를 마쳤다. 폐업 이유는 연간 50억 원 적자. 한국산연의 인력과 생산제품 생산규모 등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는 이유다. 당시 한국산연 대표이사도 청산 결정을 몰랐을 정도로 일본 산켄전기 본사는 비밀리에 폐업을 추진했다.

“그냥 지냈지요. 뭐. 허허허.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요.”


어떻게 지냈냐는, 한동안 와보지 못한 미안함을 담은 의례적인 인사말에 이명희 씨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 ‘똑같은 일상’이라는 게 사실은 엄청난 것이다. 한국산연지회(금속노조 경남지부) 상경팀의 기상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일어나서 씻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그리고 한 명은 국회로 다른 한 명은 일본대사관으로 피켓과 현수막을 챙겨 이동한다.

“한 팀은 일인시위 마치고 여기(산켄전기 서울영업소)로 바로 오고, 조금 일찍 마친 팀이 숙소에 짐을 갖다 놓고 다시 스피커랑 현수막을 들고 오는 거예요. 여기 도착해서 잠깐 쉬거나 빨리 밥을 먹고 점심시간 맞춰서 선전전을 하죠.”


  서울 강서구 마곡동 앞에서 점심 선전전 준비를 하고 있는 이명희 씨와 이정희 씨 [출처: 연정]

공장에서 30년 몸을 썼으니 고장이 나지

이게 끝이 아니다. 오후에 이곳에서 선전전을 마치고나면, 여의도 LG본사로 이동해서 다시 선전전을 이어간다. LG가 이곳 건와빌딩에 산켄전기와 합작회사를 운영하는 것 외에도 한국산연 위장폐업에 동조하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산켄전기는 사모펀드(IBKS세미콘PEF)를 통해 LG그룹 부회장의 아들 구본준 씨로부터 160억에 인수한 (주)EK(구 ‘지홍’)에서 생산되는 산켄일렉코리아 제품을 LG에 납품하고 있다. 심지어 역대 한국산연 사장 모두가 LG 출신일 정도로 두 회사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산연 해고노동자들은 LG가 한국산연 위장폐업 철회를 위해 노력할 것과 일본산켄과의 거래 중단을 요구하며 매일 LG 본사 앞 일인시위와 선전전을 하고 있다. 주중에 서울에서 진행되는 각종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상경팀의 일정 중 하나다.

“천막에 있을 때는 앉아있기라도 하는데, 이거는 쉬는 시간이 없고 내 서가 있고 이러니까. 여기도 그렇고 LG도 그렇고 쉴 데가 없거든요. 날이 따뜻하면 밖에 잠깐씩 앉아 있으면 되는데, 추워놓으니까 마땅히 쉴 데가 없어요.” (이명희 조합원)


물론, 창원에 있다고 편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공장 앞 천막농성장 사수와 출퇴근 선전전 등 기본 일정을 포함하여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입법을 위한 거리서명, 지역 연대집회 참석 등의 일정을 매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창원은 일명 ‘나와바리’이고, 서울은 생면부지 낯선 곳이다. 명희 씨에게 작년에도 안 좋다고 들었던 허리 통증은 어떤지 묻자 “이 나이에 안 아픈 게 이상한 거 아니겠냐?”고 한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래 서있다 보니 더 아픈 것 같다고 했다.

“공장에서 교대근무 하며 30년 몸을 썼는데, 고장이 나지. 지금 남아있는 사람 다 그래요.” (이명희 조합원)


  한국 산켄전기 서울영업소가 있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건와빌딩 앞에서 점심선전전을 하고 있는 이명희 씨 [출처: 연정]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어요

“아니 이렇게 힘드신데, 왜 아직 남아 계셨어요?” (필자)


“내 말이…. 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어요.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더 바뀌어요. 나가자니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쓰이고, 있자니 내 몸이 힘들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명희 조합원)


“아직까지는 동지가 더 마음이 쓰이죠?” (필자)


“그거는 듣기 좋은 말이고. (웃음) 다들 힘든 걸 아니까 내 혼자 편하자고 나가자니 마음이 쓰이는 거지. 나가서 안 볼 사람 같으면 그냥 나가면 되는데, 어차피 나가도 볼 사람들이니까. 이 시국에 다 어려우니까 내 혼자 살자고 나가는 것도 참 그렇고…. 하루에도 골백번 생각이 바뀌고 그래요.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점점 더 팍팍해지는 거예요. 사람들하고 말도 하기 싫어지고 이럴 때 있잖아요.” (이명희 조합원)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도 명희 씨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가장 먼저 그만둘 사람이 자신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연말 청산 등기를 마친 후에 회사가 조합원들을 흔들었지만, 명희 씨는 남았다. 아마 ‘하루에도 골백번 바뀌는’ 그 생각을 하며 버티었을 거다. 어쩌면 남아있는 많은 조합원들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건강문제, 가족과 아이들 문제 등 개인적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힘들어 보여서 “요즘 무슨 일 있나?” 물어보면 “별일 없다”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걸 알면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더 물어볼 수도 없다. 명희 씨는 서로 힘들다보니 말은 못해도 속으로는 다들 폭발 일보직전 아니겠냐고 한다.

  2021년 12월 30일, 2021년을 마무리하며 한국산연 천막농성장(경남 창원시 양덕동 마산자유무역지구) 앞에서 한국산연지회 조합원들 [출처: 금속노조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요

“우리는 돌아가서 일할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지금 제일 부러운 게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고, 주말에 쉬는 사람들이에요. 마산에 아침 출투 한다고 서 있으면 출근시간이니까 차들이 막 가고 그러잖아요. ‘나도 전에 이렇게 출근시간에 갔는데’ 생각하다보면 자꾸 내 자존감이 떨어지니까 그게 힘들어요. 주위에서도 ‘언니야, 나이가 있는데 그만하고 나온나.’ 이런 말을 하니까 주위 사람도 안 만나지고. 자기는 내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도 자꾸 그러니까 내도 안 만나지고. 자꾸 힘들어지지.”


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를 들고 건와빌딩 앞을 지나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걸음이 바쁘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지루하기까지 한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를 일이, 또 누군가에게는 이처럼 부럽고 그리운 일이다. 명희 씨도 정희 씨도 일을 할 때는 ‘출근을 안했으면, 점심시간이 안 끝났으면’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루에 골백번도 더 바뀌는 생각들 속에는 계속 투쟁해야할 이유가 많다.

“내 인생은 산연 빼고는 말할게 없어요. 내 인생의 한 80퍼센트는 산연이죠. 여기서 많은 추억이 있었고, 아픔도 있었고, 희로애락이 다 있었으니까요. 정말 별게 다 있었어요. 오늘 우짜 이래 나왔는데요?”


한파 속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면 좋으련만 “새해도 되고, 그동안 못 와서 인사라도 드리려고 왔다”는 답변이 고작이다. 선전전이 다 끝나기도 전에 찬바람 맞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야 하는 처지에 아름다운 격려의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산연 노동자들과 이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있다고, 매 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자주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는 전하고 싶다. 돌아가며 농성장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설 연휴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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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즐거운 명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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