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리부트reboot]


한국 사회는 그동안 주한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생겨난 각지의 기지촌에서 윤락업에 종사한 여성들을 흔히 ‘양공주’, ‘ 양색시’와 같은 말로 부르며 멸시했다. 국가는 이들을 ‘외화벌이 애국자’, ‘산업역군’으로 치켜세우면서 군사동맹 유지와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주둔 조건으로 기지촌 환경 개선을 요구했고, 이는 1970년대 정부 주도의 ‘기지촌 정화사업’으로 이어진다. 이 사업을 통해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기지촌 여성들을 ‘ 미군 위안부’라고 지칭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그동안 사회적 차별 속에서 공개적인 자리에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왔다. 타인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기지촌에서의 삶을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경험은 때로 스스로의 의사와 무관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역사적 존재로만 인식되던 기지촌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 『끝과 시작』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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