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돌봄혁명이 필요한 이유

가브리엘레 빈커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연대 기반의 사회가 필요하다”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선 돌봄노동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자본이 필요한 노동력을 가장 싸게 확보하게 하기 위해선 돌봄노동이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수행돼야 한다. 독일 돌봄혁명의 제안자 가브리엘레 빈커 교수는 광범위한 돌봄 과제가 있는 사람들은 이를 버틸 수 없기에 신자유주의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돌봄혁명을 통해 누구도 배제하거나 희생시키지 않는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빈커 교수는 24일 저녁 줌을 통한 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빈커 교수는 돌봄을 위한 광장을 만들자는 주제로, 돌봄혁명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준)의 주최로 진행된 이날 강의는 참가자 60여 명의 큰 관심 속에 진행됐다. 강연과 질의는 약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신자유주의로의 자본주의 모델 변화, 여성에게 더 큰 부담 지워

  24일 강연 중인 가브리엘레 빈커 교수

빈커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에서 모든 고용 가능한 사람은 돌봐야 할 자녀의 수나 가족 구성원의 수에 관계없이 자신의 수입을 책임지게 됐다”라며 “6, 70년대 남성 부양모델이 폐기되고 2000년대부턴 실질 소득이 떨어져 가장의 임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사회복지비도 점차 줄고 대신 개인의 책임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라고 지난 흐름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 모델 변화가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을 지웠다고 지적했다. 고용 시장 진출과 함께 가족을 위한 무급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여성은 시간 부족에 시달리거나 불안정한 생계에 시달리고, 여성의 높은 부담은 결과적으로 기업엔 더 높은 이윤을 가져다준다. ‘슈퍼우먼’ ‘알파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환영은 일터와 가정에서 높은 부담을 받는 다수 여성들의 현실을 지우며, 이들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만들었다.

자본의 전략에 의해 낮게 유지되는 돌봄 비용은 돌봄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빈커 교수는 “돌봄노동의 질적 손실은 합리화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빈커 교수는 “1960년대 초반 미국 경제학자 윌리엄 잭 바우몰(William Jack Baumol, 1967)이 서비스 노동을 호른 5중주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적 있다. 음악이 더 빨리 연주되거나 5명의 음악가가 아니라 4명의 음악가가 연주할 경우 그 품질이 저하되리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상품은 빠르게 생산해도 사람을 상담하거나 치료하는 일은 빠르게 할 수 없는 일이고, 돌봄 노동의 부족한 인력은 돌봄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환자들도 위험하다

빈커 교수는 독일에서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빨리 퇴원하고 있다며 ‘유혈의 정리해고(blutige Entlassung)’라는 표현을 썼다. 1991년부터 2018년 사이 환자는 1/3 늘었지만 병상 수는 1/4로 줄었다. 이에 따라 환자들의 평균 병원 입원 기간도 절반으로 반토막났다. 빈커 교수는 “더 일찍 퇴원한다고 해서 더 빨리 낫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은 스스로 훈련받지 않은 상태에서 주사를 놓거나 상처 드레싱을 교체해야 한다. 혹은 그를 돌보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 일을 해야 한다”라며 “다시 무급 노동은 증가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같은 기간 의사의 수는 73% 증가한 데 반해 간호사들은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빈커 교수는 “수술이나 의료기기 의학이 포괄수가제로 잘 지급될 수 있었기에 의사 수는 늘었지만, 간호사들은 그들의 과로에 의지했다. 간호인력의 부족은 코로나 이전부터 환자들을 위험에 빠뜨려왔다”라고 말했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의 업무가 너무 과중하기에 내국인들은 이 분야 취업을 꺼리고 있고, 이민자나 이주노동자들이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고 한다. 이 분야 취업에 필요한 능력이나 자격증을 자비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인데, 독일 돌봄혁명 네트워크는 이들의 업무가 꼭 필요한 노동인 만큼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이들의 취업을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한국에서도 돌봄노동자는 장시간·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그들의 처우는 법정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이들의 경력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아무리 능숙한 노동자라도 최저 대우를 받는다. 돌봄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2020년 기준 약 157만 원으로, 전체 취업자 대비 57.3% 수준이다. 더욱이 코로나19 이후엔 이 소득마저 감소하고 있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다.

연결돼 있는 우리, 연계하는 돌봄 정치는 가능하다

독일에선 2014년 ‘돌봄혁명 네트워크’가 발족돼 돌봄 노동자의 급여 및 노동조건은 물론 가족 및 봉사활동의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을 간병하는 이들부터 장애인 단체, 한부모단체, 이민자 조직에 이르기까지 참가하는 단위가 다양하다. 또 활동이 무르익으면서 돌봄 및 교육 분야의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퀴어·페미니스트 및 급진적 좌파 그룹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빈커 교수는 “돌봄혁명 네트워크의 활동과 다른 많은 그룹과의 토론은 돌봄혁명에 대한 논의를 자극하고 풍부하게 했다. 특히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고 베를린의 정당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보수 정치인마저 작은 개선을 내놓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물질적 성공을 이루진 못했다. 아직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압력을 만들기엔 여전히 작다”라며 “정치적으로 더 많은 압력을 조직하기 위해 서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개별 존재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돌봄혁명 네트워크는 돌봄 영역의 관심을 이해하고 함께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관계자들을 묶는 투쟁을 기획 중이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파업의 경우 학부모가 동참하고, 병원 파업의 경우 환자와 보호자, 잠재적인 환자까지 연계를 시도한다. 이러한 확장은 전체 시민들에게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을 빈커 교수는 ‘연계하는 돌봄 정치’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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