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 여성 그리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3·8 국제 여성의 날 특집④] 네 개의 돌봄 영역에서 만나는 여성 노동자

차례

① 최초의 여성 총파업, 그리고 가사 노동의 가치
②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③ 변혁 전략으로서 ‘돌봄 혁명’―가브리엘레 빈커
④ 돌봄 노동, 여성 그리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⑤ 직접 제공을 거부한 정부, 민간이 탐낸 ‘가사·돌봄’
⑥ 돌봄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언택트’가 미래다
⑦ 가사·돌봄 노동이 사회화된 세계는?

2000년대 이후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의식 속에서 한국 사회도 돌봄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돌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다. 동시에 사회서비스에서 단시간에 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시장화’ 방식의 사회서비스 확충이 이뤄졌다. 개인 및 영리 기관까지 서비스 공급 주체로 나서 민간 중심의 사회서비스 시장이 형성됐다. 수익 창출을 위한 업체 간 경쟁이 심화했고, 약 20년쯤 지난 현재 ‘공공성’은 오히려 축소됐다. 주로 여성에게 돌아간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심각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채워졌다. 이에 따른 돌봄의 질 하락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은 돌봄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돌봄 노동자가 요구하는 공약에 대해서 어쩐지 주요 후보들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기성 정치가 외면하는 돌봄 노동의 실태를 《워커스》가 네 개의 영역에서 살펴봤다.

1. 860일을 거리에서 싸웠던 간병 노동자

코로나19 이후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산다. 요양시설에선 지난 2년간 여러 차례 집단감염의 화마가 지나갔다. 기저질환이 있던 노인들이 많은 만큼 사망자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감염이 종사자로부터 확인됐으므로, 환자와 붙어있는 돌봄 노동자들은 가족도 만나지 않고, 스스로를 격리했다.


청주시립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권옥자(68) 씨도 아들 부부와 손녀딸을 본 지 오래다. 가족들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그에겐 감염되지 말아야 할 현실의 이유가 더 절박하다. 860일을 싸워 어렵게 복직한 그와 그의 동료의 일자리, 완전히 뿌리내렸다고 보기 어려운 노동조합의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5년 전인 2016년 2월, 청주시청 본관 앞에서 제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까지 시도했다.
청주시립요양병원의 전신인 청주노인요양병원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근무 형태를 일방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요양병원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으로 대응하자 정년을 핑계 삼아 이들을 해고했다. 당시 노조 분회장이었던 권 씨는 부당 해고를 거부하며 파업에 나섰고, 사태는 장기화했다. 24일과 28일이라는 두 번의 오랜 단식에도 병원과 청주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 끝에 2016년 7월, 조합원 전원 원직 복직을 끌어냈다. 파업 860일, 시청 앞 농성 456일 만이었다. 몸은 망가지고, 오랜 농성 생활로 다리도 조금 절게 됐지만 복직은 눈부신 성과였다. 평균 연령 53세의 여성 노동자들이 그렇게 긴 시간을 싸워 복직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쉽게 해고하고,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들로 취급받은 것 자체에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죽자고 일했으니, 죽자고 억울했고요. 일하는 게 좋아서 병원 일이라고 하면 궂은일도 나서서 했는데 우릴 아주 허접한 존재로 취급하니 반항심이 일어났죠. 지금도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요. 노조 혐오하는 사람들이 병원 망하게 하는 사람이고, 병원 문 닫게 하는 사람들이라고요. 만약 우리가 잘리면 병원장도 우리와 같이 나가야 할 거라고요. 같은 병원 밥 먹고 사는데 병원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야죠.”

청주노인요양병원은 청주시에서 157억 원을 들여 설립한 공공병원이었지만 운영을 민간에 위탁한 채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다. 특히 청주시는 이 공공병원을 법인도 아닌 개인에 위탁하면서, 병원은 이윤 위주로 운영됐고 노동자의 처우는 갈수록 악화했다. 현재 전국의 요양시설 약 2만5,000여 개 중 공공요양시설은 5%도 되지 않는다. 현장의 돌봄 노동자들은 이 5%마저 민간 위탁에 의존해 실질적인 공공 요양시설은 1%도 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민간에 맡겨진 구조 속에서 재가 급여 요양보호사는 3시간짜리 호출형 시급제 노동을 하며 월평균 70만 원의 임금을 받는다. 권 분회장 같은 시설 요양보호사들은 24시간 격일제라는 고강도의 노동을 견디고 있다.

권옥자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청주시립요양병원분회장은 여전히 노동조건은 열악하지만 노동조합으로 외주화를 막은 것은 성과라고 밝혔다. 요양시설 내 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이 자격을 갖추지 않은 중국 동포나 이주 노동자들로 채워지다 보니 병원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려 했다. 외주화가 이뤄지면 환자를 돌보는 시간도 지금보다 훨씬 짧아진다. 현재는 청주시립요양병원에선 직고용된 간병 노동자가 격일로 24시간 시설에 상주하면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24시간 중 13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만, 나머지 시간에도 간병인들은 대기 상태로 있다가 손길이 필요하면 언제든 노동을 제공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적자를 핑계로 시시때때로 ‘외주화’를 추진하려는 병원이 현재의 24시간 간병서비스를 앞세워 병원을 홍보한다는 것이다. ‘전원 한국인 간병사’ ‘24시간 간병서비스’는 청주시립요양병원의 세일즈 포인트다. 지난 6년간 보호자들도 외주화를 막는 강력한 조력자가 됐다. 병원 측이 외주 인력들을 투입하려고 할 때마다, 권 분회장은 이를 보호자들에게 알렸고, 보호자들은 시청, 병원 등에 항의하며 외주화 시도를 함께 막았다.

코로나에 걸리면 바로 해고라는 병원의 으름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녀들은 주춤하지도, 시무룩해지지도 않는다. 4명씩 조를 짜 벌판에서 라면 회식으로 회포를 풀고, 다시 힘을 내 일하고 싸울 땐 당당하게 싸운다. 간병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갈 길이 멀다는 권 분회장은 후배들이 노조를 통해 이를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2. 가사노동자법 제정에도 위태로운 가사 노동자


지난 1월 14일, 서울시의회에선 ‘가사 노동자 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지난해 제정된 <가사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노동자법)이 오는 6월 16일 시행될 예정이기에 서울시도 조례를 만들어 가사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가사서비스 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적극적 움직임이었다. 최영미 한국가사 노동자협회 대표는 발제를 맡아 “서울시 가사 노동자는 최소 4만 명~최대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등 상당한 수로 집계되나, 대부분 고용불안과 생활고, 근골격계 질환 등의 산재, 심각한 노동인권 침해에 시달린다”라며 “플랫폼 업체를 통한 노동이 확대되며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이 커 집중적으로 가사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가사노동자법이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가사서비스 제공을 업으로 하는 인증 받은 기관)과 근로계약을 맺은 가사 노동자에 대해서만 가사노동자법을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어, 조례에선 대상 범위를 모든 가사 노동자로 넓혀 지원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조례가 제정된 충남, 울산 등은 법 밖의 가사 노동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직업소개, 가사서비스 제공 플랫폼 이용 등 계약의 형식이나 방법과 관계없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수입을 얻는 사람’을 가사서비스 종사자로 정의해 지원 대상으로 설정했다. 최 대표도 다른 지역의 사례를 들며 “제정된 법률에서 포괄하는 노동자는 향후 5년간 30%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에 가사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해 동일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동일한 가사서비스노동을 하면서도 고용된 업체에 따라 노동법 적용이 결정되는 건 명백한 차별이고 모순이란 이야기다. 그녀는 서울시 조례가 다른 시·도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만큼 가장 모범적이고 실효적인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시의회 역시 <가사 노동자의 고용개선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원안에서 직업소개소나 미인증업체,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외 가사 노동자’가 현실에서 다수 존재하는 것을 고려해 ‘가사 노동자’의 정의를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 2월 21일 서울시의회는 가사 노동자의 범위를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계약을 맺은 이들로 한정한 수정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서울시의회는 원안 조례보다 가사 노동자의 범위를 축소한 이유에 대해 “가사 노동자를 법률과 다르게 확대 정의하면 법령과 조례상의 해석이 서로 달라져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라며 더불어 “인증제도의 도입을 통해 가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유도하여 고용안정과 노동권익을 보장하고자 하는 <가사근로자 법>의 제정 취지를 훼손하고 인증제도가 무력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영미 대표는 원안에서 후퇴한 서울시의 가사 노동자 조례에 대해 큰 실망감을 표했다. 최 대표는 “가사 노동자의 범위를 조례에서 넓힌다 해도 고충처리, 상담, 자문 등을 지원하는 정도이고, 법률 역시 가사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목적인데 가사 노동자를 더 넓게 포괄하는 것이 왜 상위법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이에 대한 대응을 곧 준비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해 제정돼 큰 주목을 받은 가사노동자법은 부실한 내용으로 논란을 낳았다. 가사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 68년 동안 방치되다 법 안으로 들어올 기회이지만 법의 허점은 치명적이다. 윤지영 공감 변호사는 “가사노동자법이 아니더라도 제공기관에 고용된 가사 노동자들은 현행 근로기준법상으로도 근로자에 해당한다”라며 “가사노동자법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가사 노동자에 대해서만 노동자를 인정한 셈이니 그 실익이 적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2020년 기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사서비스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58.5세, 월 급여수령액은 122만7천 원으로 조사된다. 시급으로 따지면 1만623원 정도지만 이동 시간과 보건증 발급, 기타 제반 비용을 제외하면 임금 수준은 이보다 더 낮아진다. 또 특성상 혼자 서비스 이용자의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고도 잦다. 최근엔 여성 가사 노동자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강제 추행한 40대 남성이 구속돼 큰 충격을 줬다.

하위 서비스 노동이라 인식되는 가사 노동자 일에 이주 여성 노동자들도 많이 유입됐다. 이들은 주로 입주 가사 노동을 맡고 있다. 최 대표는 “재작년까지는 이주 여성 노동자들과 교류가 가능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 동포들에 대한 혐오가 커졌고, 급기야 지난해 하반기부턴 소식이 끊겨 어떤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대부분의 이주 가사 노동자가 입주 가사 노동을 하고 있는 만큼, 전염되면 바로 입주가정에서 쫓겨나기에 정기적 모임도 와해됐다. 비자(F4) 갱신을 위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도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입주 형태의 이주 가사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2017년 한 조사에 따르면 주당 근무일은 6일이 86%로 가장 많았고, 근로시간은 일 16시간 이상이 62%를 차지했다. 주 6일 근무자들은 대개 토요일 점심에 나와 일요일 오후 혹은 저녁에 다시 들어가는데 코로나19가 발생하고선 이동이 여의치 않기에 짧은 휴일마저 온전히 쉬기 어려워졌다. 이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이나 아픈 노인을 돌보기 때문이다. 별도의 독립된 공간 없이 아이와 노인과 함께 자는 경우도 많았는데,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한 체위 변경 때문에 온종일 일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다만, 곧 시행될 가사노동자법은 입주 가사 노동자에게 기숙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이 점은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중국 동포·영주권 취득자·결혼이민자 등 일부에만 허용된 가사도우미 취업을 일본·싱가포르처럼 국적에 상관없이 외국인에게 개방해 합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가사 노동자의 비용을 낮춰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촉진하겠다”라는 취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현재도 열악한 가사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이주 여성 노동자들을 채움으로써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다. 이주 가사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3.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이 돌봄의 주축인 보육교사는 전국적으로 약 24만 명이다. 이 중 70%에 달하는 16만 명이 민간·가정 어린이집에서 근무한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보육교사들은 돌봄 노동을 쉬지 않았다. 정부는 이들의 ‘헌신’, ‘희생’을 부각했으나, 실상은 보육교사에게 새로운 위기를 감당하도록 책무를 부과하고 통제를 강화해 나갔다. 상호 간 돌봄에 대한 가치가 중요해진 때, 현장에서 멍들어가는 보육교사를 돌보는 존재는 없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더불어 보육교사들은 채용취소와 정리해고로 심각한 고용불안에 직면했다. 그것은 임금의 일부를 원장에게 반납하는 임금 페이백으로까지 이어졌다. 또 보육교사들은 긴급보육으로 등원한 원아를 돌보는 동시에 가정보육을 지원하는 각종 추가업무(인터넷 강의와 교구 제작 및 전달)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들은 국공립 어린이집보다 정원충족률이 낮은 민간 및 가정어린이집에서 심각했다. 또한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보육교사들은 방역 관련 업무가 늘어나 업무 부담이 매우 증가했다.

국공립, 법인, 직장 어린이집은 호봉제가 적용되는 정부 인건비 지원 기관이지만 민간·가정 어린이집은 보육교직원의 인건비 지급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진행한 보육교사 임금실태조사에 따르면 민간·가정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기준 임금의 77.6% 수준만 받고 있었다. 대부분 최저임금에 맞춘 결과로 경력이 쌓일수록 국공립과 민간 교사 간 임금 격차는 더욱 커진다. 숙련된 인력이 안정적으로 일할 유인이 없어 보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퇴직한 어린이집 교사 A씨는 “대학 졸업 후 9년 동안 교사로 일했지만 남아 있는 또래 교사들은 거의 없다. 경력 때문에 재직했던 어린이집에서도 여러 업무를 맡아 정말 힘들게 일했는데 지난해 말 원장이 교사들 임금으로 장난친 걸 알았고, 그걸 안 모든 교사가 사직을 결심했다”라고 퇴직 이유를 밝혔다. 교사들이 나서 항의할 수 없었냐는 질문에 A씨는 “원래도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다. 책임감 때문에 졸업식까지 기다렸지만, 더 이상 어린이집에서 교사를 하고 싶진 않았다”라며 “다른 선생님들 역시 계속 일을 해야 하고 평판이 중요하기에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원장은 보육교사 임금을 자의적으로 책정해 경력과 무관한 임금을 지급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은 호봉제지만, 민간·가정 어린이집 원장은 본인이 정한 어린이집 인건비 예산안에 따라 원장 임금을 받아 간다. 2018년 어린이집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처럼 예산 횡령과 페이백 등의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원장을 신고하고 처벌할 방법은 없다. 보육교사와 아동들에게 돌아가야 할 국가의 지원은 원장의 주머니로 흘러가게 된다. 돌봄에 대한 국가 예산 투입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공공보육 체계의 확충은 없기에 민간 중심의 서비스 구조가 유지되고 있고, 그 안에서 원장의 권력은 공고하다. 교사들은 비리 사실을 알아도 원장들의 역공이 심해 고발하기도 어렵다. 원장의 비리를 꼬집는 교사는 오히려 원장의 주동으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지난 1월 18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보육교사 344명을 대상으로 한 보육교사 노동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보육교사 10명 중 7명(71.5%)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직장인 평균(28.9%)의 2.5배였다. 사적용무지시, 업무 전가, 야근 강요, 휴가 불허, 모성침해, CCTV 감시 등 부당한 지시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답변이 62.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물론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보호조치도 마땅치 않다. 보육교사의 감정노동 보호조치 의무자인 원장은 최소한의 조치인 안내문 부착, 학부모 대상 교육조차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실시하지 않고, 실제 발생한 피해조차 책임지지 않고 있다. 공적 영역에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도 다르지 않다. 지자체는 괴롭힘 피해 신고에도 ‘어린이집 운영권은 원장에게 있고, 보조금 횡령이나 아동학대가 아니면 원장과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전혀 없다’는 식이다.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장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문제는 무늬만 국공립을 띄고 있다는 것”이라며 “민간 어린이집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으로의 전환이 많은데 원장들이 운영하던 방식이나 보육 철학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보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원이 생겼지만 사회서비스원에서도 민간의 운영방식이 적용돼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육교사가 스스로 일을 그만둘 정도로 시스템은 엉망이다”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보육의 민간 의존 구조를 탈피하지 않고, 민간 시설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식을 고수하며 보육 비용 부담과 서비스 질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4. 여성이 짊어지는 가족 내 돌봄 노동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B씨는 최근 10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수도권의 모든 어린이집이 휴원에 돌입할 때도 긴급보육으로 아이를 등원시켰지만 아이를 위험에 방치한다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오늘도 xx이만 등원합니다’라는 담임교사의 말을 애써 무시하기도 했다. 아이 돌봄을 도와주셨던 부모님도 ‘아이가 걱정되지도 않냐’ ‘너는 모성애가 없냐’라며 B씨에게 육아휴직 할 것을 압박했다. 결국 B씨는 간호사들의 잇따른 퇴직으로 초토화된 병원을 뒤로하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출산 후 직장에 빠르게 복귀한 것도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기에, B씨는 허탈함이 들기 시작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존재인가. 그녀의 의지와 선택은 이제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돌봄 노동의 실태를 살펴보면 이것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평범한 산물이라는 것이 도출된다.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희생이 두드러진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돌봄 서비스 중단으로 가족 내 돌봄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역할을 불안정 노동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던 여성들이 맡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10월 서울시 가족 내 돌봄 노동 수행 중인 30~50대 여성 600명을 대상으로 돌봄 실태를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남성의 27.8%가 이전보다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은 37.1%가 가사 노동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응답자의 79.7%가 배우자가 있다고 응답하였으나 혼자 돌봄을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한 여성이 50.3%로 높게 나타나 여전히 여성에게 돌봄 노동이 가중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라며 “코로나19 이후 강화된 성별 분업을 보여주는 결과”라고도 분석했다.

여성들은 공적 돌봄의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부담했지만, 정신건강에 피해를 겪었고, 이에 따라 돌봄의 질 역시 담보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면접 조사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코로나19 시기 육아휴직으로 아이 돌봄을 전담하게 된 여성들은 쉼 없는 돌봄 노동에 우울증세를 호소했다. 한 여성 면접조사 참가자는 “코로나로 애들이 집에 많이 있으니까 ‘뛰지 마, 조용히 해.’ 이 말만 하루 종일 하는 것 같다”라며 “갱년기도 다가오니까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특별히 안 했지만 더 하기 싫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온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사·돌봄 영역의 사회화와 함께 돌봄의 여성 전담 탈피와 남성의 돌봄 참여 역시 확대돼야 한다. 가족 내 돌봄 책임이 여성 한쪽의 부담이나 역할로 한정되는 성별화 경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또 가족 내 돌봄의 성별 분업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서비스 영역에서도 남성 노동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미래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돌봄은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비생산적인 일로도 여성의 일로도 치부되어서는 안 되고, 임금노동 영역에서 가난하거나 이민자이거나 유색인종인 여성들의 일로 떠맡겨져서는 안 된다. 목표는 사회 전체가 돌봄의 보람과 짐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은 다양한 규모의 삶을 가로질러 가족으로 한정되는 돌봄의 범주를 새로이 규정해 좀 더 확장된 또는 ‘난잡한’ 친족 모델을 포용하는 것으로 구현된다.”(1)

각주
(1) 《돌봄선언-상호의존의 정치학》, 더 케어 컬렉티브, 니케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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