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제공을 거부한 정부, 민간이 탐낸 ‘가사·돌봄’

[3·8 국제 여성의 날 특집④] 文 정부 임기 동안 ‘직영’ 줄고 ‘민간위탁’ 늘었다

차례

① 최초의 여성 총파업, 그리고 가사 노동의 가치
②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③ 변혁 전략으로서 ‘돌봄 혁명’―가브리엘레 빈커
④ 돌봄 노동, 여성 그리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⑤ 직접 제공을 거부한 정부, 민간이 탐낸 ‘가사·돌봄’
⑥ 돌봄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언택트’가 미래다
⑦ 가사·돌봄 노동이 사회화된 세계는?


공적 돌봄의 부족은 민간시장의 확대로 이어졌다. 정부가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 대 개인 간 거래나 가사·돌봄 중개 업체들이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돌봄 노동의 경우 ‘사회서비스’로 묶였지만 서비스 공급의 대부분을 민간에 맡겼다. 민간 사회복지시설의 비리가 끊이질 않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렸다.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가사 관련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고, 공적 돌봄의 공백은 또다시 여성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워커스》가 정부가 키워온 가사·돌봄 시장을 살펴봤다.

가사·돌봄의 이용자와 노동자, 만족하나요?

민간에서 아이 돌봄 노동을 하는 이들을 베이비시터라고 부른다. 아이 돌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여성가족부(여가부)는 2007년부터 아이돌봄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가사·돌봄 노동자 구인 정보를 제공하는 민간 사이트에는 채용공고가 꾸준히 올라온다. 주 5일, 풀타임 근무의 경우 200만 원부터 200만 원 중반까지 월급이 형성돼 있다. 상세요강에는 업체가 돌봄 노동자를 소개할 경우 수수료를 지급한다는 내용도 쓰여 있다.



우선 7개월 된 아기를 돌봐줄 노동자를 찾는 채용정보를 들여다보자. 공고를 올린 이는 몇 달 전 아이를 출산한 맞벌이 부부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인하고 있다. 월급으로는 250만 원이 책정됐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초혼 신혼부부의 평균 소득은 7,709만 원으로 월 642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앞선 사례를 대입하면 부부는 매달 소득의 약 40%를 돌봄 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

이번엔 가사·돌봄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자. 노동자는 부부의 요구에 따라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11시간 30분을 일해야 한다. 월급 250만 원을 시급으로 단순 계산하면 올해 최저임금(9,160원)을 조금 넘는 1만 원 정도다. 부부는 아이와 놀아주기, 목욕시키기 등 돌봄 업무를 비롯해 아이 생활공간 청소도 부탁했다. 이와 함께 집안의 ‘가벼운 가사’도 도와달라고 했다. 이용자의 편의에 따라 가사와 돌봄 업무를 모두 맡아야 하는 셈이다. 평균 임금을 받는 이용자로서도 비용 부담이 상당하고,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도 전체 노동자 평균(2019년 기준 372만 원1)조차 되지 않는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서비스의 경우 이용자와 노동자 모두 만족하고 있을까? 위의 부부가 ‘영아종일제’ 유형을 신청하게 되면 월 200시간, 3월 기준 하루 8.7시간에 대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나머지 하루 세 시간 가량의 돌봄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영아종일제의 서비스 비용은 시간당 10,040원 가량이다. 부부의 소득 기준을 중위소득 85~120% 이하로 가정했을 때, 정부 지원에 따른 비용 약 91만 원과 본인부담금 61만 원 등 약 150만 원 선의 비용이 든다. 민간 업체 대비 약 60%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의 경우, 민간 업체처럼 ‘가사 노동’을 요구할 수 없다. 서비스 범위는 이유식 및 젖병 소독, 기저귀, 목욕 등 영아 돌봄에만 한정된다.

그렇다면 아이 돌봄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해 8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돌봄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돌봄사업의 열악한 환경을 폭로했다. 아이돌보미의 약 30%가 월 60시간 미만 근무자로 최소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코로나 이후 이 같은 비율이 57%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연차와 상관없이 최저임금을 받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 신분이라 불안정한 생활에 내몰린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사·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대표적인 저임금 일자리다. 사회서비스 부문 노동자의 임금은 2019년 기준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372만 원) 대비 절반가량인 197만 원(53.1%)에 불과하다. 요양보호사의 경우엔 더욱 심각한데, 같은 해 기준 107.6만 원2으로 전체 노동자 대비 40.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아이돌봄서비스 플랫폼 기업에도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사회서비스 바우처(이용권) 사업을 아이돌봄서비스 플랫폼에도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는 돌봄서비스 분야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지원 사업’ 공급 기업으로 영유아 전문 아이돌봄서비스 ‘돌봄플러스’를 운영하는 휴브리스를 선정했다.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사업의 수요기업에 선정되면 이용료의 최대 90%를 정부에서 지원받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이 원한 ‘가사노동자법’

민간 가사서비스 시장 역시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가사서비스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7조5천억 원이다. 현재는 8~10조 원까지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사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은 더뎌 이들은 여전히 비공식 노동을 해 왔다.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줄곧 ‘가사사용인’으로 규정해 법 적용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1일, 무려 68년 만에 가사 노동을 인정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노동자법)’이 제정됐다.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맺는 가사 노동자에 한해 4대 보험, 퇴직금, 유급휴일·유급휴가 등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하지만 이는 현행 근로기준법보다 못한 수준으로, 적용 제외 요건이 다수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됐다. 근로시간의 경우 주 15시간 이상 보장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가사 노동자의 동의가 있거나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 15시간 미만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주 15시간 미만일 경우 현행법상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이 어려울 수 있고, 건강보험은 제외된다. 퇴직금과 유급휴일, 유급휴가도 적용되지 않는다.

해당 법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온 것은 다름 아닌 가사서비스 플랫폼이었다. 지난 2019년 11월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가사서비스 제공 플랫폼을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이 신청한 가사 노동자 법을 우선 적용하는 내용의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승인했다. 지수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준) 활동가는 “가사서비스가 방문 노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가사 노동자에 대한 신원 보증이 하나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며 이 때문에 “(업체가)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서비스 품질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가사서비스 공식화 필요성 설문조사’에서 서비스 이용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질문에 이용자의 32.4%가 ‘종사자 신원보증’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사회서비스 직접 제공” 문재인 정부,
직영 시설 더 줄고, 민간위탁 늘어


역대 정부들은 사회서비스를 확장 과정에서 직접 제공보다 민간 시장을 키우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1970대에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 민간 시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회서비스를 확대했다. 1980년대부터는 민간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의 서비스가 제공됐고, 2007년부터는 기존 공급자 지원방식에서 수요자 지원방식으로 변화했다.3

이는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라고 공약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서 직영 사회복지시설은 오히려 소폭 줄었고, 민간위탁 비율은 늘어났다.

문 정부 임기 첫해인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사회복지시설 수는 59,536개에서 60,087개로 551개 증가했다. 하지만 1.2%(1,190개)에 불과했던 직영 운영 비율은 3년 사이 1.0%(630개)로 0.2%p 줄었다. 이와 함께 90.8%(54,041개)를 차지하던 민간 비율도 86.6%(52,046개)로 4.2%p 줄었다. 늘어난 것은 민간위탁 시설이다. 7.2%(4,305개)에서 12.3%(7,411개)로 5.1%p 늘었다.

돌봄 영역의 민간위탁은 서비스 질 하락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민건강보험이 2020년 4월 발표한 ‘2019년 장기요양기관(재가급여) 정기평가 결과’에 따르면 90점 이상을 받은 비중은 지방자치단체가 6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법인 50.8%, 기타 36.4%, 개인 27.4%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평가점수 60점 미만인 기관은 개인이 92.0%로 가장 높았다.

서비스 질의 하락은 노동자의 고강도 노동과 소득 불안정에서 비롯된다. 2019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문요양 노동자의 74.7%는 시간제 계약직이다. 서비스 시간에 따라 비용이 지급되는 ‘방문형 서비스’ 특성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 장기요양요원의 45.4%가 가장 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임금’을 꼽았다. 뿐만 아니라 노인요양시설의 인력 배치 기준도 지켜지지 않는다. 현행 시설요양원은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배치하도록 한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야간에는 요양보호사 1인이 20명의 노인을 돌보는 경우도 발생한다.

민간·가정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경우엔 임금 차별을 겪는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산정하는 ‘보육 교직원 인건비 지급 기준’이 민간·가정 어린이집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에 따르면,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 10명 중 9명은 최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주]

1 통계청(2020), <2019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보고서>
2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9), ‘2019년도 장기요양 실태조사’
3 사회공공연구원(2015),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개편방안: 사회적 돌봄서비스를 중심으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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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서비스 질의 하락은 노동자의 고강도 노동과 소득 불안정에서 비롯된다. 2019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문요양 노동자의 74.7%는 시간제 계약직이다. 서비스 시간에 따라 비용이 지급되는 ‘방문형 서비스’ 특성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 장기요양요원의 45.4%가 가장 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임금’을 꼽았다. 뿐만 아니라 노인요양시설의 인력 배치 기준도 지켜지지 않는다. 현행 시설요양원은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배치하도록 한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야간에는 요양보호사 1인이 20명의 노인을 돌보는 경우도 발생한다.

  • 누군가

    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저는 관련 분야 연구자입니다. 앞으로도 현장의 실태를 자세하고 낱낱이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