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언택트’가 미래다

[3·8 국제 여성의 날 특집⑤] 정부,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대기업에 사업 기회 확대


코로나19를 거치며 ‘언택트’, 즉 비대면 사회가 촉발됐다. 대면 공포가 확산하면서 비대면 시장이 활짝 열렸다. 배달, 온라인 쇼핑 앱 주문 금액은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300% 가까이 늘었고,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이 각광받았다. 그동안 비대면 방식을 규제했던 의료분야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정부는 전화 처방 등의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고, 비대면 의료를 위한 환경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스마트 의료 인프라·돌봄시스템 구축’을 8대 유망 분야로 선정해 비대면 돌봄시스템 확충에도 나서고 있다. 비대면 돌봄, 디지털 돌봄 등으로도 이야기되는 언택트 돌봄의 흐름이다.

로봇이 ‘돌봄 노동’을 대신한다고?


코로나19 시기 돌봄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돌봄의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어린이집, 학교, 지역사회복지관 등이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자 가족 내에선 돌봄 노동의 부담이 가중되는 등 돌봄 위기가 확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노인, 장애인 등 건강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비대면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계획을 내놨다. 기업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기반의 돌봄 서비스를 개발하면 정부가 국가 정책으로 이를 지원하는 식이다. 정부가 2020년 발표한 ‘한국형 뉴딜’ 사업 중 데이터, 인공지능,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뉴딜은 이를 뒷받침하는 주요 정책이다. 지난해 7월엔 이를 보강한 ‘한국판 뉴딜 2.0’을 발표하고 디지털 뉴딜 사업의 총사업비를 58조 원에서 67조 원까지 늘렸다. 디지털 뉴딜의 보건의료 영역엔 스마트 병원, 원격의료, AI진단, 돌봄로봇, 디지털 돌봄 등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이 분야에서 90만 개의 일자리 창출도 기대하고 있다. 2020년 디지털 뉴딜이 발표되자 보건의료계는 “모두 돈벌이를 위한 산업 육성 정책들이고 국민 건강과는 관련이 없는 정책들”이라며 “오히려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의료비를 폭등시킬 정책”(1)이라고 비판했지만 디지털 사업은 수정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주요 국가에선 인공지능을 활용한 돌봄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에선 2018년 시장 규모가 1009조 원에 달하며, 정부 주도 고령화 대응을 하고 있는 일본도 2017년 약 50조 원의 시장 규모를 돌파했다. 국내에선 스타트업과 대형 통신 3사(KT, LG유플러스, SKT)가 고령 돌봄 기술의 디지털화를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2020년 한국형 뉴딜을 정책을 발표하기 직전 통신 3사의 최고경영자를 만나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뉴딜 사업에 협력을 구하기도 했다. 


통신 3사를 비롯한 기업들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치매예방, 긴급 SOS 기능이 있는 AI 스피커와 AI 상담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서비스 등이다. 특히 AI 스피커는 현재 각 기업이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SK텔레콤의 ‘누구(NUGU)’는 이용자 수 27만 명을, 카카오의 ‘헤이카카오’는 9만 명을, KT의 ‘기가지니’ 역시 9만 명을 넘었다. 

SKT, KT, LG유플러스는 AI스피커를 이용해 지자체와 함께 노인 돌봄 사업을 추진 중이다. 특히 SK의 ‘누구’는 2020년 정부의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지정돼, 2022년까지 47억 원을 들여 시범 운영 중이다. 구체적 서비스로는 ICT 케어, 긴급 SOS 구조, 방문·상담 등이 있다. 14개 지자체에서 시작한 사업은 현재 60개 넘는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SKT는 지난해 11월 AI가 독거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는 누구(NUGU) 돌봄 케어콜 서비스를 출시했다. ‘누구’는 전화를 걸어 대상자의 안부를 확인하고 불편사항을 청취하는 서비스다. 통화 종료 후엔 통화 결과, 안부 상태, 기타 불편사항 등 모니터링 결과를 지자체에 공유해 지자체가 후속 조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경상남도를 시작으로 지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SKT는 AI 돌봄서비스가 치매의 사전 예방에 효과가 있다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상 AI 돌봄서비스를 확대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SKT는 2020년 1년간의 AI돌봄서비스의 시범 사업 결과를 발표하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2019년 약 30억 원을 투자해 관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터넷 비용과 콘텐츠 사용료도 일부 부담하고 있고, 앞으로는 B2C 서비스로 재원을 마련해 지속해서 지원할 예정이다”라며 “하지만 독거 어르신 전체를 지원하기에는 부담이 크기에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밖에 지자체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한 복지 사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고독사 위험이 큰 중장년층의 사회적 고립 예방을 위해 ‘AI 생활관리서비스(가칭)’을 오는 4월부터 시작한다. AI 상담사가 주기적으로 연락해 건강 관리와 정서적 안정을 돕는 방식이다. 대구시도 네이버와 함께 인공지능 안부 전화를 통한 고독사 예방에 나서기 위해 오는 3월부터 ‘AI 자동 안부 전화 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서울시처럼 지역의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네이버와 업무 협약을 맺고 네이버가 개발한 ‘클로바 케어콜’을 이용하기로 했다.

수치화된 돌봄, 돌봄 대상자와 돌봄 노동자의 우려


독일 ‘돌봄혁명’의 제안자 가브리엘레 빈커 교수는 디지털 돌봄의 확대는 돌봄 비용을 낮게 유지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정책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저렴한 돌봄 노동의 핵심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빈커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 병원, 요양 시설 등에서의 인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케어 로봇이 등장했고, 일부 요양시설의 노인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빈커 교수는 “시설의 노인들에게 케어 로봇을 안겨줬고, 이 로봇은 말도 걸어주고 환자들에게 노래도 불러준다. 설문이나 통계로 봤을 때 당사자들은 꽤 만족스럽다는 조사가 나오지만, 이런 식의 발전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라며 “돌봄의 본질은 상호의존성으로, 돌봄노동은 인간 간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것을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뒤따른다”라고 밝혔다. 이어 “독일인 대다수가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도 덧붙였다.

한쪽에선 정부가 이야기하는 디지털 돌봄이 젠더 정의에 대한 관점이 없을 뿐 아니라, 돌봄 노동자의 노동을 비가시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돌봄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기술 중심적 해법으로 흐르는 것은 돌봄의 재분배, 탈여성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라며 “한국판 뉴딜 정책에서 돌봄 영역의 기술 진화, 유급 돌봄 노동자의 부족과 임금 상승에 대처하고자 ‘언택트’ 디지털 자본주의를 이용한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은 돌봄자와 돌봄 대상자 간의 고유성, 지속성, 공감 능력 등을 삭제하면서 환자나 돌봄 대상자, 돌봄자 모두를 데이터와 수치로 평준화시키는 데이터 자본주의의 확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2)라고 지적했다.

또 시중의 디지털 돌봄 기술들이 돌봄이 필요한 계층을 위한 적절한 기술인지 의구심도 제기된다. 관련 학계에선 디지털 돌봄에 대해 “건강관리, AI 스피커를 통한 정서지원, 응급알림, 화재감지센서, 조도·습도·온도감지센서 등은 본질적으로 하드웨어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디지털 돌봄이나 확장성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치매인이나 대응력이 떨어지는 대상자들이 겪을 수 있는 응급상황을 대비하겠다고 하지만 이들에겐 화재를 감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리 예방하거나 진압하는 기술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조도·습도·온도감지센서 등의 보급 필요성도 재검토의 대상이 된다”(3)라고 지적했다.

돌봄 현장의 노동자, 노조 및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돌봄 분야의 정책으로 디지털 돌봄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규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민주노총 등 14개 단체는 “돌봄 분야의 국가책임을 더 강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예산 확충 대신 ICT 기술 기반에 근거한 디지털 돌봄에 예산을 편성하고 돌봄 노동자, 장애인 관련 예산을 찔끔 확대하는 데 그쳤다”라며 “관련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돌봄 노동자들은 업무에 적용되는 디지털 돌봄 서비스에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업무 기록을 남겨야 하는 어플이 오히려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또 어플 시작과 동시에 켜지는 위치 추적 기능 또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인생활지원사들은 “서비스 이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다시 약속을 정하고 근무 외 시간에 방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이 같은 업무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라며 위치추적 어플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각주
(1) ‘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바란다’ 성명,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2020.07.16.
(2) <코로나 시대의 ‘젠더 위기’와 생태주의 사회적 재생산의 미래>, 《젠더와 문화》, 김현미(2020).
(3) <사회보장플랫폼과 비대면 돌봄에 관한 고찰>, 장봉석·김영문·김윤덕, 한국융합학회논문지 제11권 제12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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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돌봄 현장의 노동자, 노조 및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돌봄 분야의 정책으로 디지털 돌봄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규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민주노총 등 14개 단체는 “돌봄 분야의 국가책임을 더 강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예산 확충 대신 ICT 기술 기반에 근거한 디지털 돌봄에 예산을 편성하고 돌봄 노동자, 장애인 관련 예산을 찔끔 확대하는 데 그쳤다”라며 “관련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