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와 맞서 싸우는 ‘서울교통공사’

장애단체‧언론을 ‘적’으로 삼고 투쟁 전략 세워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 직원이 작성한 한 건의 문건에 장애계가 분노하고 있다. 이 문건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최근 더 잦아지고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받는 지하철이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등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진보적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등을 싸워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실수나 무리수 등을 약점 삼아 디테일하게 공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러한 실수를 “‘공식적으로’ 물고 늘어지기 어려워 ‘또 다른 스피커’도 고민 중”이라고 한 대목에선 포털 뉴스 댓글까지 여론전에 동원한 것은 아닌지 의심도 사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해당 문건에 대해 홍보팀 직원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홍보팀 직원의 업무와도 밀접한 관련이 돼 있는 만큼 개인적 일탈로 쉽게 치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문건은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제목의 ppt 파일로 지난 3월 4일 직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다. 작성자는 ‘개인적 의견’으로서 지하철 내 시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25p에 달하는 ppt에서 그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이에 대한 공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론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지피지기 백전불패’ 등의 표현을 인용해 “전장연과 맞서 싸우려면 우선 어떤 단체인지 알아야” 한다며 단체의 연혁과 주요 활동, 투쟁 전략, 전장연을 중심으로 둔 장애계 지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인식을 뜻하는 ‘언더도그마’라는 표현을 열 차례 가까이 써가며 “우리가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야” “힘든 싸움이지만 ‘디테일’ 찾아내기로 승부, 선 넘는 쪽이 진다”라며 구체적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 실점은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이 실점 또는 무리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면서 ‘디테일하게’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는 ‘차별 발언 등으로 빌미 주지 않기’ 등이 거론됐다.

문건 작성자는 보도자료 작성 업무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문건에서 그가 꼽은 장애인 단체의 ‘실점’ 사례 등이 보도자료 작성에 그대로 쓰였다. 한 예로 지난 2월 있었던 전장연 이동권 시위에서 한 시민이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한다’라고 말한 데에 대해 전장연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식으로 대꾸하자 이를 문제로 키우기 위해 나섰다. 그는 이 사건을 ‘결정적 미스’로 꼽으며 “여론전 위한 보도자료 준비 중 해당 사건 제보 정보를 확인한 뒤 사실임을 확인하고 시민 피해상황을 알리는 소재로 활용했다”라고 설명했다. 몇몇 보수언론에 의해 의도대로 기사가 나가자 그는 “2월 23일 보도 후 화가 난 사람들이 전장연 라이브 영상에서 해당 장면을 찾아 유튜브 등에 영상을 확산하기 시작했고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라고 전했다.

여론전 피해자들 “개인적 일탈로 꼬리자르기 말아야”

[출처: 비마이너]

비마이너에 대한 악의적인 분석도 눈에 띈다. 서울교통공사는 비마이너를 ‘장애인 전용 언론’, 전장연의 ‘당 기관지’라고 표현하며 약자는 선하다는 기조의 기성언론과 함께 비마이너와 싸워야 한다고 밝힌다. 마이너한 매체이지만 언론사이기에 장애계의 목소리를 담는 여론전 용도로는 충분하다는 평가까지 담았다. 전장연과 비마이너의 인적 사항을 파악해 가족 관계라든가, 창립멤버가 동일하다는 등의 관계성도 드러냈다.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은 “비마이너는 장애와 빈곤 이슈를 다룰 때 나침반이 되는 언론사로, 많은 기자들이 해당 이슈를 작성할 때 비마이너를 참고한다”라며 “이러한 언론사로서의 위치를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식의 표현이 굉장히 모욕적이었고 화가 났다”라고 밝혔다.

[출처: 비마이너]

강 편집장은 문건의 기조 아래 여론전을 위한 댓글 작업도 진행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강 편집장은 “이번 문건을 확인하고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이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문건 작성자가 언론에서 했던 인터뷰, 이번 문건의 기조와 내용이 장애인 이동권 시위 기사에 달린 댓글들과 매우 유사했다. 시민이 알기 어려운 구체적인 지형까지 파악하고 있어 의아했던 댓글이 있었는데 비공식적인 창구 등을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문건에 기재된 것으로 봐서 실제 그것을 이행한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됐다”라고 밝혔다. 해당 댓글은 언론사 취재가 시작되자 지난 15일 수정된 뒤 삭제됐다.

전장연 또한 17일 성명을 내고 서울교통공사의 행태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전장연은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명시된 교통공사가 이행해야 할 의무를 요구한 것으로, 공사는 이제까지 이에 대한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역사에서 발생한 장애인의 죽음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라며 “공사가 지난 과오에 대해 빠르게 사과하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히면 되는 문제였지만 공사는 이를 ‘장애인과 시민의 싸움’으로 편가름하는 언론플레이 전술을 짜는 데만 급급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언론공작 문건 작성은 홍보실 언론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라며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공식적인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서울교통공사는 17일 공식입장을 내고 “2022년 3월 17일 YTN ‘“장애인 단체는 싸워 이길 상대”…서울교통공사 대응 논란’ 등의 보도에 대하여 시민 여러분께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린다”라며 “방송에서 문제 삼은 문건은 한 직원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사내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공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라고 해명했다. 공사는 “직원 개인의 의견에 불과할지라도 그 내용은 적절하지 않았다. 직원의 미숙함은 곧 공사의 미숙함이다. 머리 숙여 사과 말씀 드린다”라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조직 차원의 여론전에 대해서도 “사실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부인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홍보직원이 몇 명이나 된다고 조직적 여론전이 가능하겠나”라며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 단체를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대응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전장연은 오는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5호선 답십리역에서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이들은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공식 사과와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비마이너 역시 18일 입장문을 내고 서울교통공사에 공식 사과를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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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서울교통공사는 17일 공식입장을 내고 “2022년 3월 17일 YTN ‘“장애인 단체는 싸워 이길 상대”…서울교통공사 대응 논란’ 등의 보도에 대하여 시민 여러분께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린다”라며 “방송에서 문제 삼은 문건은 한 직원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사내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공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라고 해명했다. 공사는 “직원 개인의 의견에 불과할지라도 그 내용은 적절하지 않았다. 직원의 미숙함은 곧 공사의 미숙함이다. 머리 숙여 사과 말씀 드린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