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람되오나’ 사건은 어떤 기시감을 들게 한다

[미디어택]취재·질문 제한되는데 “김치찌개 약속…” 질문을 굳이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국정농단 사태로 지지율이 5%로 떨어졌던 국민의힘은 단 5년 만에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한국은 이제 “손발 노동, 아프리카”,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위험한 노동관을 가진 대통령을 맞이하게 됐다. 이로써 “가난한 사람 부정식품 선택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 “장애인도 ‘정상인’ 같은 삶”, “‘식용개’는 따로 키우지 않느냐”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은 윤석열 당선인이 곧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는 본 투표 전날이던 세계여성의날에 “여가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문구를 재차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 얼마나 진전했는지도 불투명한 오늘인데, 이제 후퇴를 걱정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후퇴 역시 우려된다. 현재 언론 운동장에서 가장 핫한 말은 “외람되오나”이다. YTN <돌발영상> ‘동상이몽’ 편(3월 14일)은 대선 결과 이후, 대장동 특검을 약속했던 윤석열 당선인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을 담았다. 이 3분 34초짜리 동영상은 다른 화제를 만들었다. 지난 13일,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사 발표장에서 한 기자가 “정말 외람되오나”라는 말과 함께 대장동 특검 관련 질문을 던진 게 회자했고, ‘언론의 굴종’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외람되오나’는 시작일 뿐(?)…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외람되다’라는 형용사는 “하는 짓이 분수에 지나치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여기에 ‘정말’이라는 부사를 붙여 강조까지 했으니,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해당 영상에는 “기자가 눈치를 보며 질문을 한다”, “기자가 저렇게 공손한 거 처음 본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기자가 질문하는 게 외람되면 일을 그만둬야지”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외람되오나’는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이미 ‘속 보이는 행보’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MBN은 지난 10일, 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제20대 대선 특집 다큐멘터리 <윤석열, 국민이 부른 내일의 대통령>을 편성했다. ‘국민이 부른 내일의 대통령’이라는 제목은 국민의힘 윤석열 캠프가 선거운동 기간 직접 만들어 사용한 슬로건이다. 언론사가 이것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 다큐멘터리 제목으로 쓴 것이다. SBS는 윤석열 당선인이 출연했던 <집사부일체>를 11일 밤 특별 (재)편성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인가.

20대 대선 결과에 쏠린 해외의 관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웃픈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몇몇 매체들은 대만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연예인급 외모’라며 화제가 됐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팩트체크한 결과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인용된 대만 언론의 기사에는 선거운동 기간 김건희 씨를 둘러싼 허위 경력 등 각종 논란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윤석열 당선인과 관련한 ‘논란’은 가린 채 왜곡된 형태로 한국에 소개한 것이다.

뉴스타파 김경래 기자는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철마다 시시때때로 열리는 기자 백일장이 올해도 역시 돌아왔다”면서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에 빗대어 ▲아시아경제 <대식가 윤석열 ‘식사정치’…양념갈비 먹고, 디저트는 민트초코>, ▲세계일보 <“후추간도 직접” 김치찌개·짬뽕·피자.. 尹 당선인 ‘공개 오찬’ 연일 화제>, ▲매일경제 <청와대 회동 무산된 날…윤석열, 번개로 찾은 김치찌개집 가보니, 가격이?> 기사를 선정했다. 그러고는 “최소한 스스로를 정론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기사는 자제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꼬집었다.

권력을 향한 언론의 충정은 비단 이번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TV조선을 비롯한 JTBC, 채널A, MBN 종합편성채널 4개가 개국한 2011년 12월을 기억한다. 당시 TV조선은 차기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낯 뜨거운 아부성 자막과 멘트를 내보냈다. 그뿐인가. 2014년 1월, MBN의 한 기자는 취임 2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을 찾자 “너무 안고 싶었어요”라며 안기는 모습을 선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땡이뉴스(전두환 정부 당시 땡전뉴스를 빗댄 표현)’라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특히, 20년 만에 대통령 주례 연설을 부활시켰으며 이는 KBS라디오를 통해 그대로 송출됐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한경오’ 사태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중심으로 ‘기레기’, ‘가짜뉴스’ 담론이 형성되면서 언론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언론 환경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가짜뉴스’ 문제에 불을 지펴 정권에 유리한 언론 지형을 만드는 데에 골몰했다.

기시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게 만드는 요즘

그래서 진심 걱정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언론 지형은 어떻게 바뀔 것이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외람되오나’ 표현으로 논란을 빚은 A기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윤석열 당선인’이기 때문에 쓴 표현은 아니었다”라면서 “제 질문에 난처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예의상 입버릇처럼 썼던 표현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A기자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당일 기자회견에서 ‘예의상’이라고 하더라도 A기자의 질문으로 ‘외람되다’라는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윤석열 당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A기자가 2~3개의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한정된 시간 질문 기회를 놓친 다른 동료 기자들에게 들어야 했던 감정이 바로 ‘외람되다’였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저널리즘 후퇴는 아주 빠르게 현실화할지 모르겠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기간 “친여 매체”, “정권의 하수인” 같은 편향된 언론관의 모습을 보여줬다. 당선 후에는 더욱 노골적인 행보를 드러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하던 날, 현판식 취재가 제한되는 일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기자들과 만든 대화방에 비판 글들이 올라왔으나, 이를 관리자가 삭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벌써 KBS와 MBC, YTN, 연합뉴스TV, TBS 등을 ‘불공정 방송’으로 낙인찍었다.

최근에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윤석열 당선인이 3월 23일 통의동 건물 앞에 마련된 기자실을 방문하며 ‘현안 질문 금지’를 전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것이 참담한 이유는 기자들이 그 같은 황당한 요구를 수락했다는 점이다.

‘외람되오나’ 사태는 어쩌면 하나의 해프닝일지 모른다. 그러나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 그리고 언론보도·취재행태 등 일련의 사태를 봤을 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늘 그렇듯 ‘설마’가 ‘역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니문’ 기간이 있다고 한다.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다만, 정도는 지켜야 한다. 가뜩이나 ‘질문 금지’ 같이 취재가 제한되는 이때, 어렵게 마련된 자리에서 “예전에 취임하시고 기자들 돼지고기 김치찌개 끓여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 약속은?”이라는 질문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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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최근에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윤석열 당선인이 3월 23일 통의동 건물 앞에 마련된 기자실을 방문하며 ‘현안 질문 금지’를 전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것이 참담한 이유는 기자들이 그 같은 황당한 요구를 수락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