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후보’를 선택한 9176명의 의미

[인터뷰] 20대 대선 완주한 노동당 이백윤 후보

‘사회주의 대선 후보’가 출마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했다. 뿌리 깊은 반공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수백 억 원의 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정말 완주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여러 우려와 의심 속에 지난해 말 ‘사회주의 좌파 대선후보’ 경선이 치러졌고,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의 이백윤 후보가 선출됐다. 그는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자본주의를 적당히 고쳐 쓰자는 개혁이 아닌, 자본주의와 손잡는 가짜 진보가 아닌, 삶을 바꿀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여기 있다고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3개월 여 동안, 그는 전국을 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공존과 연대의 새로운 사회주의를 꿈꿔보자고, 사회주의는 현실 가능한 선택지라고 이야기했다. 재벌 국유화, 가사‧돌봄 사회화와 국가책임 일자리, 주택 사회화 같은 사회주의 공약들을 소개했다.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기후 총파업’을 호소했고, 하반기 ‘사회주의자 대회’를 제안했다. 거리마다 ‘사회주의’를 내건 선거 벽보와 현수막이 나붙었다. 분단 이후,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가장 공공연하게 울려 퍼진 날들이었다.

여전한 우려와 의심 속에서, 노동당 소속 기호 7번 이백윤 후보가 20대 대선을 완주했다. 그리고 9176명의 유권자가 ‘사회주의 대선 후보’인 그를 선택했다. 과연 9176표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워커스》가 20대 대선에서 낙선한 이백윤 사회주의 후보를 만났다.

  20대 대선에 출마했던 이백윤 노동당 후보

‘사회주의’를 선택한 9176표의 의미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물으니,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간간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선거 평가도 듣느라 바쁜 일상을 보낸 듯했다. 전국에 선거 포스터와 현수막이 붙고, 2,550만 세대에 공보물이 전해졌으니 유명세를 치르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물론 ‘사회주의’를 내걸고 대선까지 출마했으니,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알아보시는 분은 많지 않아요. 선거운동할 때는 유세차도 있고, 선거 운동원도 있고, 코트 같은 것도 입고 있으니 ‘저 사람이 후보인가 보다’ 하는데, 지금은 평소처럼 점퍼 걸치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잘 못 알아보시죠. 그런데 아무래도 행동이 조금 조심스러워지긴 했어요. 지난 3개월 동안 ‘사회주의’라는 가치를 대표해 온 거잖아요. 한편에선 노동당 대선 후보로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주는 부담이 있기는 한데, 워낙 무던한 성격이어서 큰 불편은 없어요.”

당선을 기대하며 출마한 것은 아니었다.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 전망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사회주의’라는 대안적 체제를 새로운 선택지로 올려놓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지율이나 득표수에 연연하며 지레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사회주의 정치의 마이크가 되고자 했으니, 그 소임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거는 정치적 지형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지표이기에, 결과를 둘러싸고 여러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득표수 9176표, 지지율 0.02%의 성적표를 받아 든 이 후보는 “부족한 성적표인 것은 맞다”라고 평가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 관심을 갖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득표수가 그 척도 중 하나일 수 있고요. 사회주의가 대중적으로 큰 동의 지반을 얻지 못했다는 면에서 부족한 성적표라고 생각해요. 다만 3만 표를 얻었다 한들 무엇이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18대 대선 때와 득표수를 단순 비교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봐요. 2012년 대선 당시 김소연 후보가 1만 6천 표, 김순자 후보가 4만6천 표를 받았더라고요. 당시는 정의당도 없었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도 사퇴한 상황이어서 진보 후보가 두 명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오준호 후보까지 합치면 네 명이 나온 거잖아요. 조건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실 투표 결과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9176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기준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이번 대선은 우리 삶에 사회주의라는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동안 진보정당들이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는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사회주의라는 다른 체제를 내세운 것이니까요. 수십 년간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를 생각해보지 않은 분들에게 갑자기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욕심이니까요.”


아쉬운 것과 얻은 것

선거 결과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데 급급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다양한 논쟁과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것일 텐데, 그 마저 부족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공약을 충분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전달했는지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사회주의 공약에 대해 몇 가지 평가가 있었어요. 한편에서는 사회주의가 현실과 얼마나 밀착해 있는지,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공약이었다고 평가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또 한편에선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임팩트가 없었고,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충분한 상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사회주의를 내걸고 출마한 후보인데, 다른 진보 후보들과 대단한 차별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어요.

뼈아픈 지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다른 후보들, 심지어 윤석열, 이재명 후보조차 경제 공약은 거의 제시하지 않았어요. 해답이 없으니까요. 심상정, 김재연 후보도 공약은 정말 많은데 구체적으로 경제 구조를 어떻게 전환하겠다는 뼈대가 없었어요. 반면 우리는 공공주도 경제로서의 사회주의 체제와 단계들을 제시했어요. 그 지점에서 다른 진보진영 후보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차별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그것을 시각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실력의 문제가 있었다고 봐요.”


그렇다고 아쉬움만 남는 선거는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했고, 이전에는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났다. 선거를 통해 얻은 것들도 많다. 초반까지만 해도 선거운동본부 시스템이 잘 가동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본선 기간에 들어서면서 지역 당원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고 했다. 퇴근 후 매일 모여 선거 운동을 하는 당원들이나, 혼자 지하철역 앞에 나가 피켓을 들던 당원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다. 대선이라는 정치 공간을 통해 손발을 맞춰보면서, 중요한 시기에 당원들이 함께 몰입해 활동할 수 있다는 신뢰감과 자신감 같은 것도 생겼다. 무엇보다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과 만날 수 있었던 건 신선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유세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이십 대 남성이 오더라고요. 가방에 제 공보물 하나만 넣어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우파인데, 노동당의 공약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관심이 너무 많다며 꼭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거예요. 주로 하는 이야기가, 삼성 같은 재벌을 국유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진짜 도움이 되느냐. 이백윤은 현행법상으로 국유화가 가능하고 하는데 사실 불가능한 것 아니냐. 이런 내용들이었어요. 대화가 끝난 후 사인도 받아 가시더라고요.

그런 경험들이 계속 있었어요. 광주에서 피켓을 들고 유세를 하는데, 한 이십 대 여성분이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오시더라고요. 자신의 사촌 언니가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있는데, 자신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대요. 그래서 우리가 올린 유튜브 영상이나 사이트를 많이 찾아봤다고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북한이나 중국과 동일시하면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회주의가 구 사회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충분히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응원해주셨어요. 그런 분들과 만났던 것 자체가 굉장히 새롭고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사회주의’를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한 선거였다. 출마를 결심한 뒤로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내걸고 출마하는 대선이었다. 그로서는 ‘사회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많이 없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혼자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정책 공약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득하는 일은 당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었다.

  20대 대선에 출마했던 이백윤 노동당 후보

“공약과 내용이 만들어지고 제 역할이 분명해지면서 처음보다 부담감이 많이 줄었어요. 어떤 상황이든 내 역할을 규격화해 놓으면 그다음에는 별 무리 없이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대선 후보로서 제 역할을 세 가지 정도로 생각했어요. 첫 번째는 후보 취급도, 어쩌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 모멸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텐데 그런 일들을 웃으면서 넘기자. 두 번째는 그동안 사회주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운동해온 만큼, 이것을 국민 대중 앞에서 설득력 있게 말하려고 노력하자. 마지막으로는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이 내‧외부적으로 흔들릴 수 있지만, 나는 등대처럼 굳건히 자기 자리에 발 딛고 서서 내 역할을 하자.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가장 걱정이 됐던 건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내걸었을 때 당원들이 각종 공격에 노출되는 것이었다. 군소정당 후보로서 재정적 어려움도 감내해야 했다. 현수막도, 공보물도, 선거운동 차량도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선인데, 선거 운동이 너무 초라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따라다녔다. 여러 모멸적인 상황들도 견뎌야 했다. 언론은 유력 후보와 배우자의 가십에만 열을 올리며 군소정당 후보의 목소리를 배제했다. 군소 후보들을 지운 건 언론만이 아니었다. 안철수와 윤석열의 단일화 직후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제 거대 양당 사이에서 저 심상정 한 사람 남았다”라고 말했다.

“김건희의 옷 색깔까지 기사화가 되는데 우리는 무슨 짓을 해도 언론에 실리지 않더라고요. 왜곡된 언론 환경 탓도 있을 테지만, 한편에선 언론이 사회주의를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을 주저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언론 보도가 거의 안됐는데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꽤 있었어요. 남초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는 사회주의에 여성해방까지 이야기를 하니 ‘최강 빌런’이 나타났다는 식으로 회자되기도 하고요. 저와 있는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더라고요. 특히 젊은 세대가 모인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있었어요.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놓고 욕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도 했고요. 잘못하면 심리적으로 트라우마가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강렬한 거부 반응은 별로 없었어요. 사회주의 같은 체제의 문제를 토론의 영역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국민적 성숙도가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봐요.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사회주의는 무조건 나쁘다는 과거의 반공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사실 여론몰이나 마녀사냥은 일종의 분위기잖아요. 이제 사회주의를 좀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갖춰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과거의 정치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

대선 하루 전인 3월 8일 저녁, 이백윤 후보는 강남역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였다. 이곳은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본관이 있는 부동산 불패의 땅이자, 2016년 여성 혐오 살해의 현장이었고, 그의 첫 유세 장소였다. 그는 번화한 강남역 대로변에서 “저 이백윤의 대선 출마로 한국 정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라며 “이제 사회주의자들이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며, 해방 이후 단절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이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운동의 출발점을 통과한 그는, 올해 하반기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총 결집해 사회주의 정치의 전망을 모아내는 ‘사회주의자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사회주의자 대회는 각 영역의 운동이 모여 시대 인식을 공유하고, 공통의 지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거예요. 각 영역 운동이 갖고 있는 지난하고 험난한 숙제들을 어떻게 함께 해결할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자기 과제로 받아 안을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고요. 한편으로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면, 윤석열 정권 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운동적 과제를 제시하게 될 거라고 봐요. 불안한 것은 망해가는 신자유주의를 붙들고 있는 윤석열에 맞서는 방식이 ‘반 윤석열’ 혹은 ‘반 수구’ 수준에 그치는 것이에요. 다시 정치가 ‘반 수구’로 회귀하지 않도록 진보 변혁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지 논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유세가 끝난 뒤 그는 당원 및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같이 고생한 당원들을 보며 뭉클했고, 이제 노동당이 마음먹으면 대선 정도는 치러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고단하고 부족한 도전이었지만, 첫 발을 뗀 것이기에 두 번째, 세 번째 걸음도 내딛을 수 있게 됐다. ‘사회주의에 투표해 달라’는 호소를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은 그의 유세를 가만히 지켜봤고, 또 다른 몇몇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었다. 과연 선거운동 기간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는 어떻게 가 닿았을까. 작지만 단단한 사회주의의 씨앗이 뿌리내렸기를 바라며, 그는 더 많은 이들에게 ‘사회주의 정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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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강남역 대로변에서 “저 이백윤의 대선 출마로 한국 정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라며 “이제 사회주의자들이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며, 해방 이후 단절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이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 박용주

    담아줘서 감사합니다.
    뭉퉁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