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로 끝나지 않을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논쟁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전망하다③]

오는 5월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를 중심으로 기후·에너지 정책을 재구성할 계획이다. 이는 기업 지원을 통한 에너지 전환과 민영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연속성도 크다. 윤석열 정부 5년은 2020년대는 물론이고 이후 한국 사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시기로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에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네 차례에 걸쳐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비판적으로 전망하고 운동의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연재는 ①전력 정책 ②천연가스 정책 ③전기요금 및 탈핵 ④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과제 순으로 이어진다.

‘전기세’
전기를 사용한 요금을 흔히 일컫는 말이다.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보편화된 말이다. 정부가 항상 전기요금을 결정하고 공기업인 한전이 걷어왔기 때문에 세금처럼 인식되는 면이 크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대선에서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됐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공약이었다. 통신 요금이나 수도 요금 등과 함께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의 관심이 높은 분야이고,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이를 이용해 공약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2020년 12월 배럴당 50달러 안팎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올해 3월 초 최대 127.9달러까지 뛰었다. 이에 따라 석탄이나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됐다. 탈원전 탓을 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폐기된 핵발전소는 월성 1호기밖에 없고, 오히려 신고리 3, 4호기가 준공되고 신고리 5, 6호기와 신한울 1, 2호기가 건설 중인 상황이어서,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앞뒤가 맞지 않다. 단순히 거두는 ‘세금’이 아닌, 누군가는 비용을 지출해야 할 ‘요금’이기 때문에 연료비 인상에도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그간 전기요금 쟁점 : 불투명한 원가 공개, 민간발전사 과다 이윤

현재 전기요금 책정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에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전기요금 책정은 크게 도매가격과 소매가격 책정방식으로 나뉜다. 도매가격의 경우, 해당 시간대에 가장 비싼 요금-계통한계가격(SMP)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예를 들어 A, B, C 발전사가 1kWh 당 각각 50원, 100원, 150원으로 입찰하면, 그 시간대 전력 소비량에 따라 가장 값싼 발전사의 발전소부터 가동해 전력수요를 채우게 된다. 전력수요가 적을 경우 A, B 발전기만으로 전력을 공급해 계통 한계가격이 100원으로 결정되며, A, B 발전사에 1kWh당 100원씩을 지급한다. 하지만 전력수요가 많을 때는 C 발전사의 발전소까지 가동해 A, B, C 모든 발전사가 150원을 받는다. 이럴 경우 A사에게 발전원가 50원보다 과한 비용이 지급된다. 그래서 ‘정산조정계수’를 두어 각 발전사가 적절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조정한다.

다소 복잡해보이지만, 발전사에 적정 이윤을 챙겨주기 위해 이런 복잡한 계산법을 사용해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간발전사가 과도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치솟는 연료비 인상과 한전의 적자 누적에도 민간발전사의 수익은 극대화되고 있다. 올해 1분기 포스코에너지는 1,07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SGC에너지는 74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작년 1분기 대비 각각 49%, 139% 증가한 수치다. 민간발전사뿐만 아니라, 한전 발전자회사들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발전량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민간 발전사가 더 큰 이익을 거뒀다.

반면 한전은 1분기 영업손실이 5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한 해 동안의 영업손실이 5조 8,601억 원임을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적자를 메우기 위한 한전의 회사채 발행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한전의 회사채 발행액은 9조 6,700억 원으로, 지난해 1년간의 회사채 발행액 10조 4,300억 원에 육박한다. 발전사에 이런 이익을 주는 것이 적절한지, 원가는 충분히 산정된 것인지 십수 년째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제도 개선이나 투명한 원가공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민에 묻어가는 기업과 고소득자

전기요금 소매가격 책정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현재 소매가격 체계는 한전이 제출한 전기요금표를 산업부 장관이 인가하게 돼 있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 등 물가 당국의 의견을 묻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판단이다. 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거나 선거 직후 전기요금을 올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콩보다 두부가 더 싼 상황(연료보다 전기가 더 싼 상황)’, ‘연봉 2억 받는 한전 사장도 전기요금 할인받는 상황’ 같은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기요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연료비가 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전기요금이 오를 때마다 각종 할인제도가 생기면서 나온 비판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연료비 연동제’ 시행 논의가 이어졌다. 연료비 연동제는 연료 가격이 올라가면 이에 따라 전기요금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제도다. 원가가 올라가면 요금도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런 원칙은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또 원가 인상에 따라 발생하는 적자를 한전이 그대로 부담해, 공기업 부실이나 경영 정상화 등을 이유로 한 주요 업무의 아웃소싱, 이로 인한 비정규직 증가, 업무강도 강화 같은 악순환의 씨앗이 만들어졌다. 연료비 연동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도입되긴 했지만, 매우 제한적인 비용만, 그것도 연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쪽은 거대 기업들이다. 2021년 기준 전체 전력 판매량의 54.7%가 산업용 전력이며, 주택용 전력은 15%에 불과하다. 심지어 전력 구매 상위 30개 기업의 전력 소비량은 우리나라 전체 주택용 전기 사용량보다 많다. 따라서 대기업일수록 원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전기요금의 혜택을 많이 누린다.

주택용 전기 또한 최근 누진제도가 완화되며 가장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구간의 요율이 7.6배에서 3배로 완화됐다. 누진제도는 전체 전력 소비량을 기준으로 누진 구간과 요율을 정한다. 이 때문에 누진제가 완화되면 전력 소비가 적은 가구는 오히려 전기요금이 올라간다. 이에 따라 냉방기기 가동 여력이 없는 에너지 빈곤층의 전기요금이 인상되고,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간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져 왔다.

최근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세 인하도 마찬가지이다. 유류세 인하로 소득 하위 20%보다 상위 20%의 이익이 6.3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2008년 유류세 인하 직후 소득 상위 20%의 휘발유 소비량은 82.5ℓ에 달했지만, 하위 20%는 13.1ℓ 소비에 그쳤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나 유류세 모두 ‘서민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동결되거나 인하되지만, 정작 그 혜택은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더 많이 돌아가고 있다.

전기요금 개편과 정의로운 전환 전략 모두 필요

지난 3월, 정부는 예정됐던 기준연료비(지난 1년간 평균 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만 1kWh당 6.9원 인상하고, 최근 3개월간 인상된 연료비(변동연료비)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4인 가구 기준 한 달에 인상되는 전기요금은 2,300원 정도다. 한전은 변동연료비가 1kWh당 33.8원이 돼야 한다고 산정했으나, 정부가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4월 전기요금은 소폭 인상에 그쳤지만, 현행 제도는 전기요금을 분기별로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러시아가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천연가스 공급망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려 하고 있어 국제 에너지 가격 불안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6월과 9월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만약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를 그대로 둔다면 결과적으로 공기업 한전의 적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조 8,601억 원 적자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고, 올해는 적자가 2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민간기업과 달리 공기업이 꼭 수익을 낼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국민의 생활 안정 도모하는 것’이 공기업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번 적자가 정말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생활 안정화를 위한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한전이 기초수급대상자와 차상위계층, 장애인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금액이 매년 6천억 원 규모다. 액수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달 1~2만 원 정도 할인해주는 선에 그치고 있다. 현재의 지원 방식은 에너지 빈곤층에게 매우 제한적인 지원이 될 수밖에 없다. 부실한 주거환경으로 단열조차 되지 않는 집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고, 생활이 어려울수록 냉난방 비용을 아끼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전기요금 동결, 인하가 아닌, 에너지 빈곤층의 주거환경개선과 그린 리모델링 등 실질적인 혜택을 통한 ‘정의로운 전환’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산정 체계를 바로잡아 민간 발전사업자의 부당이익을 줄이고, 원가를 제대로 산정해 전기요금을 바람직하게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높아진 전력과 에너지 요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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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부실한 주거환경으로 단열조차 되지 않는 집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고, 생활이 어려울수록 냉난방 비용을 아끼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전기요금 동결, 인하가 아닌, 에너지 빈곤층의 주거환경개선과 그린 리모델링 등 실질적인 혜택을 통한 ‘정의로운 전환’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산정 체계를 바로잡아 민간 발전사업자의 부당이익을 줄이고, 원가를 제대로 산정해 전기요금을 바람직하게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높아진 전력과 에너지 요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