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시기, 기후정의 운동의 과제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전망하다④]

오는 5월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를 중심으로 기후·에너지 정책을 재구성할 계획이다. 이는 기업 지원을 통한 에너지 전환과 민영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연속성도 크다. 윤석열 정부 5년은 2020년대는 물론이고 이후 한국 사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시기로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에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네 차례에 걸쳐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비판적으로 전망하고 운동의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연재는 ①전력 정책 ②천연가스 정책 ③전기요금 및 탈핵 ④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과제 순으로 이어진다.

지난 대선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가 조직되지 못했을 때 어떻게 여론과 표심, 담론과 정책이 보수 기득권 정당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기후운동을 대표하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 대선’이라는 구호 아래, 대선 후보들의 기후정책 평가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을 ‘기후악당’으로 규정했지만 일반 시민은 물론 많은 기후 활동가와 지지자들의 투표 행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민주노총이 추진했던 민중경선은 대중운동의 흐름이 모아지지 못한 채 상층의 논의만으로, 그것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준비하면서 아무런 힘도 내기 어렵다는 사실만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린뉴딜’과 ‘2050 탄소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친기업 녹색 성장의 기조는 윤석열 정부에서 더욱 ‘급진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위는 허점투성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주 52시간 노동제, 화학물질 관련 법안을 과도한 기업 규제라며 완화할 것을 천명했다. 이와 함께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공공기관 구조조정까지 예고하고 있다. 또한 핵 산업과 ‘C테크(기후기술)’ 투자 확대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시장기반 수요 효율화’란 명목으로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 확립’을 내걸고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일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반노동 성장주의’ 기조와 강한 연속성을 보인다. 그럼에도 언론은 종종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문재인 정부로부터 ‘U턴’인 것처럼 말하고, (친)민주당 세력은 작은 차이를 부각시켜 ‘반윤석열’ 전선을 치려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이 핵발전을 ‘기저전원’이라며 신한울3-4호기 건설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침묵했던 양이원영 등 민주당 의원들은 대선 이후 윤석열의 친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국 수호’를 외쳤던 세력은 ‘촛불행동연대’라는 이름으로 ‘검수완박’과 ‘선제 탄핵’을 요구하며 반윤석열 전선 구축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벌써부터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도 따라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반윤석열 전선’이 형성되는 것은 또다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민주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헌납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전민중적 참여를 통해 일궈낸 촛불항쟁이 결국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 수렴된 것처럼, 양당 구도를 끊임없이 강화시키는 ‘차악’의 정치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5년 후에도 똑같은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윤석열 정부를 준비하는 기후정의 운동은 독자적 대안과 전망을 가지고 공동의 투쟁 경험을 축적하고, 이에 기반해 독자적 세력화를 이루기 위한 중장기적 시야와 계획이 필요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반윤석열 전선’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이윤과 성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지구, 노동자, 지역사회에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부를 추출해왔다. 온실가스, 폐기물, 억압과 차별, 배제 등 많은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 기후위기, 불평등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등 오늘날의 총체적 위기를 야기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자본주의 성장 체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오늘 우리가 당면한 중첩된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럼에도 거대 양당은 이윤과 성장, 기술과 시장 효율성 논리에 기반한 ‘녹색 성장’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전히 시장주의자들은 재생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고 정부가 적절한 인센티브만 주면 민간 기업이 가장 적절한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윤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은 그린워싱으로 귀결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 사회, 기후와 생태는 부차화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전선은 ‘반윤석열’, 그리고 민주당을 포함해 녹색 성장을 추진하고자 하는 체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대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최근 이슈로 떠오르는 ‘에너지 민영화’는 이를 위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발전 공기업 분할매각에 대한 거센 저항이 일자 정부는 공공 기업의 민간 매각 대신 ‘우회적’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새로 건설되고 있는 석탄 및 가스 발전소는 물론 재생에너지 발전의 대부분도 해외 거대 자본을 비롯한 민간 기업이 주도했고, 이미 전력 생산의 30%가 민간에 넘어갔다. 더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체제 공고화의 과정에서 우회적 민영화의 흐름이 의료, 돌봄, 교육 등 공공 서비스 전반에 걸쳐 진행됐으며 여기에 여야의 구분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윤석열 전선’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와 모두의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 전선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요구를 모아내자

이를 위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투쟁은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를 둘러싼 투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초기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피해의 최소화와 일자리 보장을 중심으로 이해됐던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국제적 기후정의 운동의 확산과 함께 그 의미가 확장됐다. 따라서 지금은 과거의 억압과 차별의 구조를 시정하는 것, 이를 위한 자원과 권력의 재분배와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자기결정권 보장, 그리고 새로운 권력 관계에 기반해 재생적인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하게 됐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기후위기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과 공동체들(MAPA)’에 대한 북반구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나 미국의 선주민과 유색인종 커뮤니티들이 환경정의 원칙에 입각해 사회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권력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여전히 ‘피해 최소화’나 ‘지원과 보호’로 이해되는데, 이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전환 투쟁도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와 서민, 지역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업 주도 녹색 성장 정책에 맞서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보다 확장되고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투쟁의 주체는 이미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발전소 폐쇄로 당장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비정규 석탄 노동자들을 비롯해 산업 전환에서 피해가 예고된 노동자들, 민간 기업이 건설하는 화석연료 발전소에 저항하고 핵발전소나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지역 주민들, 무분별한 농지 태양광과 대규모 해상 풍력 발전소 등에 더해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인 CPTPP로 고통 받게 될 농어촌 주민들, 그리고 기후정의를 외치는 활동가들. 이들이 힘을 모아 보다 공공적이고 민주적이며 생태적인 에너지 체제의 밑그림을 그리며 ‘지원과 보호’의 대상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 스스로를 권력화해 나가야 한다.

체제 전환 세력의 권력화를 위한 사회적 투쟁을 준비하자

다행히 지난 대선을 거치며 대안적 세력화에 대한 공감대도 커졌다. 선거 기간 763인의 서명을 담아 발표한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라는 선언문은 “기득권 정당 중 한 쪽과 공동전선을 만드는 대신, 우리 자신의 대안을 만들고 세력화”할 것을, “제도 개혁을 넘어선 체제 전환”을 목표로 삼을 것을, 그리고 이후 5년, 10년을 내다보며 “우리가 전선과 구도를 만들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미래를 조직”하기 위해 밑바닥에서 대중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운동의 목소리를 확장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자고 제안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도 대선 직후 논평을 통해 문제는 “기후위기를 만들고 가속화 한 경제와 정치 체제”이기에 “이를 바꾸는 것은 어떤 후보나 정당에 의탁하고 기대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며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을 정치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더 큰 걸음을 시작할 것”임을 약속했다.

이미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대중운동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전장연의 투쟁은 장애 인권 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의제화 시켰으며 국회 앞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과 연대투쟁이 몇 주째 지속되고 있다. 3월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서 시작된 ‘봄바람 순례’는 전국 각지의 투쟁 현장을 연결하며 투쟁 열기를 달구었고 차별 없는 노동권과 질 좋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동절 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몇 년 만에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이제 우리 앞에는 윤석열 정부 시기를 관통하며 다양하게 분출하게 될 대중운동의 요구들을 새로운 대안과 전망으로 모아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차별과 위계, 착취에 기반한 파괴적 추출 자본주의를 넘어 모두의 평등하고 존엄한 삶이 보장되는 정의로운 체제 전환의 요구를 모으고 이를 사회적 투쟁으로 전환시킬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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