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도 진료하는 영리병원, 새정부 의료민영화 급물살타나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 의료의 위기 다룬 토론회 열려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구심점으로 의료민영화를 빠르게 추진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민간 주도의 경제 성장과 공공부문에 대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재벌 기업과 보수 언론이 요구해온 ‘영리병원 허용’이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녹지국제병원을 운영하는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제주도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잇단 승소 판결을 받고 있고, 나아가 영리병원에 대한 국가-투자자 소송(ISD)을 진행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영리병원 허가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국토부 장관으로, 한미 FTA 체결자인 한덕수를 국무총리에 지명했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임명과 동시에 ‘민간 주도 경제 성장 모델’과 공공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과대안, 참여연대 등의 단체는 2일 오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왜 다시 영리병원(투자개방형 병원)인가’ 토론회를 개최하고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 의료의 위기를 살펴봤다. 의료민영화는 이미 우회적으로 진행 중이며, 의료공공성을 담보하는 세 가지 정책(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건강보험 의무가입제, 영리병원 금지) 중 가장 약한 고리인 영리병원 금지 정책을 해제하면서 미국식 의료민영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모든 정부가 직접적, 우회적으로 영리병원 허용과 의료민영화를 추진해 왔다”라며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 직접 추진을 중단했으나 영리병원 근거법은 남겨두면서 언제라도 추진할 수 있도록 불씨를 남겼다”라고 밝혔다. 이어 “양당은 병원경영지원회사 MSO, 병원영리자회사, 보험회사의 의료행위 허용 등 우회적 영리병원화를 추진하고 있고, 보험회사의 준 의료행위와 병원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건강관리서비스가 ‘가이드라인’으로 합법화됐다”는 것을 지적하며 “영리병원 도입을 허용하는 법을 개정해 우회적 영리병원 도입 및 의료민영화의 추진을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우 공동대표가 지적한 영리병원 설립의 근거가 되고 있는 법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경제자유구역법)’이다. 2006년 제정된 제주특별법은 구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의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특례 규정을 삭제해 외국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의 내국인 대상 의료업을 허용했다. 2002년 제정된 경제자유구역법은 국내 최초로 영리병원을 명시했는데 2005년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개념을, 외국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는 법 개정을 진행했다.

영리병원 설립 근거인 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법, 폐기 요구 쏟아져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는 “위 두 법에 따라 경제특구와 제주도 내 국민건강보험법상 당연요양기관으로서 건강보험환자에게 건강보험수가로만 의료서비스를 해야 하는 내국인 개설 의료기관과, 당연요양기관에서 제외돼 수가를 임의로 책정할 수 있는 외국인 개설 의료기관이 양립하게 됐다”라며 “외국의료기관의 전면적 비급여 진료 허용은 내국 의료기관에 대한 심각한 역차별이며, 제도적인 역차별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내국의료기관과 관련하여 공급자 측면에서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을 뒤흔드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며, 수요자 측면에서 국민들의 건강권과 관련하여 차별적 접근을 제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의료계와 정부, 국민 3자 간의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 변호사는 “제주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두 개의 판결이 건강보험상의 수가 및 의료행위 법정 제한 시스템에서 벗어날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국의 공적 의료체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국회가 이 두 법에 근거한 ‘외국의료기관’ 근거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충분한 고가 의료시장이 형성될 경제적 가능성이 확인될 경우 경제특구 내에는 다수의 외국의료기관이 진출하게 될 수 있고, 외국의료기관의 비급여 시장 개방 요구는 실정법상의 근거 하에 그 설득력을 더하게 될 것이며, 결국 전면적인 비급여 시장개방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이렇게 되면 강제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에 대한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탈퇴압력이 강화될 것이며, 한편으로는 민간의료보험이 이를 대체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리병원 허용은 국내의료기관에 대한 헌법상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하의 당연요양기관제와 보험수가제를 전제로 한 전 국민 의료보장의 붕괴의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제주도민의 뜻은 ‘영리병원 불허’로 이미 모였다

오상원 의료영리화저지제주도민운동본부 정책기획국장도 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법 내 영리병원 허용조항을 전면 삭제하는 것이 제주도민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여부를 제주도민이 참여하는 숙의형 정책개발로 결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그해 3월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가 이 청구를 받아들여 2018년 7월부터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제주도민 공론조사가 시작됐다. 200여 명으로 구성된 ‘녹지국제영리병원 관련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2018년 10월 4일, 개설 불허 58.9%, 개설 허가 38.9%의 결과를 제출하며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불허를 권고했다.

오 정책기획국장은 “당시 제주도민들이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불허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될 것 같아서(66%)’를 가장 큰 이유로 뽑았다”라며 “하지만 원희룡 지사가 제주도민의 결정과는 다르게 2018년 12월 5일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부’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고, 이후 반발한 중국녹지그룹이 잇단 소송을 제기해 사실상 내국인도 진료가능한 완전한 영리병원 개설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이 지난해 9월 영리병원 설립 등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고 제주도의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주특별법 내 영리병원 허용 조항 완전 삭제’를 골자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발의됐지만 이 법안은 제주도의 방해로 소관위원회 법률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제는 도민을 대변하는 제주도의회가 적극 나서 제주특별법 내 영리병원 허용조항을 폐지해 도민의 열망에 부합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빅테크 기업과 영리병원이 만나면, 의료영리화 시너지↑

IT,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의료민영화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처럼 한국도 카카오, 네이버 같은 기업들이 나서 보건데이터를 이용한 의료산업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데이터를 민간기업이 수집하고 전송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악해, 빅테크 기업들이 의료 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었다. 카카오는 의료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병원·연구기관·스타트업·정부기관 등에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계획을 가진 사내독립기업 카카오 헬스케어를 런칭했다. 네이버도 8개 의료기관과 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협약을 맺고, 가명 의료 데이터와 임상데이터 등을 제공받고 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현재 기업은 웨어러블디바이스 등의 라이프로그 정보 수준에만 접근이 가능하다. 이보다 훨씬 민감한 개인의 의학적 과거력과 검사 결과, 처방내용 등의 의료 데이터는 병원에서 발생하고 축적되는데 만약 영리병원이 허가된다면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데이터를 의료기관 밖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라며 “심지어 영리법인이 병원을 세울 수 있게 되면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빅테크와 영리병원의 결합은 의료영리화의 시너지효과를 낳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이 기획국장은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이 1차 의료와 의료인력을 대체하면서 환자와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헬스케어 산업에 흘러 들어가는 막대한 공공재정과 공공 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며 “생명을 살리는 의료 공공성 강화 대책이 필요한 지금, 영리병원 논의와 영리적 디지털헬스산업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 기획국장은 “빅테크 자본의 헬스케어 사업의 주요 수익모델은 개인의 건강데이터를 수집해 수요를 창출하고, 기존 의료행위를 원격의료나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라며 “이러한 의료의 디지털화는 충분한 검증을 거치치 않아 그 위험성을 알 수 없고, 민간기업이 집적시키고 고도화하는 보건의료 데이터는 안전성, 정확성,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어 의료인과 시민단체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사회를 맡은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영리병원 논란이 재점화되는 이유는 경제 침체와 연관이 있다”라며 “자본이 떨어진 이윤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해온 영리병원 사업을 위해 드라이브를 걸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 상임연구위원은 “지난 20년간 시도돼 왔고, 최근에 잠잠했던 영리병원 사업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규제 완화해보자고 달려드는 상황이다”라며 “영리병원을 법적으로 허용한 민주당 정부가 다수인 상황에서 책임감을 갖고 투자개방형 병원을 국내법에서 완벽하게 들어내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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