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인력인권법 폐기 시도에 반발하는 간호사들

“보건복지위, 10만 국민 버려…반년 지나도록 논의도 안 하고 폐기라니”

지난해 10월, 10만 명의 동의로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된 ‘간호인력인권법 제정’ 요구가 국회에서 논의도 거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축소와 미준수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가 핵심인 이 법은, 간호사 당사자, 노조를 비롯한 보건의료단체들이 오랫동안 제정을 촉구해 왔다. 간호사들은 국회가 간호인력인권법의 취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법안을 폐기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16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10만 국민을 버렸다”라며 “국회가 청원동의로 만들어진 간호인력인권법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폐기하려 한다”라고 국회를 규탄했다.

앞서 지난 9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보건복지위 위원들은 간호인력인권법 청원의 취지가 간호법 수정안에 반영돼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간호법 수정안은 간호사 처우 개선을 일부 다루고 있지만,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규정하진 않고 있다. 간호법을 발의한 최연숙 의원조차 ‘간호법은 간호에 관한 총괄적인 법률이지 간호인력 처우 개선이 목적인 법률이 아니다’ 고 말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인력인권법의 핵심은 ‘간호사 1인 담당 환자수 법제화’로, 이 기준을 위반하면 처벌할 수 있는 강제조항이 포함돼 있다”라며 간호법 수정안과 간호인력인권법이 서로 다른 법임을 강조해 왔다.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 문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어렵게 성사시킨 국민청원동의까지 무력화하면, 간호사들은 무엇을 더 해야 하냐며 울분을 쏟아냈다. 평균 퇴직 연령이 34세, 장롱면허가 50%에 달할 만큼 숙련된 간호사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신규간호사 45.5%가 이직에 나서고, 간호사 근속 연수가 평균 5.9년에 불과하다는 것도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지표다.

  16일 국회 앞에서 '간호인력인권법' 폐기를 중단을 요구하며 퍼포먼스 중인 간호사들.

김경오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코로나 초반, 국회와 정부는 간호사에게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영웅 칭호를 붙였다. 이제 급한 불을 끄니 일회용품을 버리듯 또 내팽개치려고 한다. 병원이나 정부나 간호사들을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김 씨는 “코로나 병동에서 일반병동으로 전환 후 간호사들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1인당 18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고 있다. 간호사들은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기다리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정부가 이들을 버렸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사직하는 간호사들을 설득하는 일도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능력 있는 간호사들은 다른 업계의 회사로 가고, 해외로 떠난다. 숙련된 간호사의 부족은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환자들은 위험해진다. 간호사에게 환자를 간호할 시간을 달라. 국민의 건강도 함께 지킬 수 있게 해달라”라며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민정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사도 청원의 취지를 다시 검토해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간사는 “간호사 1명당 적게는 16명에서 많게는 40명이 넘는 환자를 간호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병든 채 병원을 떠난다. 환자들 또한 간호사 얼굴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낙상 등의 안전까지 위협받으며 병원을 이용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병상이 있어도 간호사가 없어서 환자들은 구급차에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간호사의 인권을 지키는 일은, 환자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경득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은 “간호법 제정을 두고 코로나를 함께 극복해온 의료계 노동자를 분리하는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저항하는 그룹들도 나오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제 간호인력의 구조를 개선하고 환자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법안인 간호인력인권법이 묻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인력인권법은 죽음의 순간에 누가 나를 치료하고 간호하고 간병해 줄 것인가 걱정을 더는 법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국민 인권에 관한 법으로, 이 법은 누구도 저항하거나 반대할 수 없고, 이해충돌도 이권 다툼도 있을 수 없는 법이다”라며 “이러한 내용이 하나도 담기지 않는 간호법으로 간호인력인권법을 대체하겠다는 논리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연대본부, 간호인력인권법 폐기 막을 서명 운동 돌입

더불어 이날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인력인권법 폐기를 막고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에도 돌입했다. 하루도 되지 않아 1,500명 넘는 시민들이 간호인력인권법 제정 촉구를 위한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10만 명의 청원은 간호인력 부족으로 인해 죽은 환자들과 태움으로 인해 죽은 간호사들의 죽음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아무리 험난해도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서명운동 참여하기
bit.ly/간호인력인권법폐기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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