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기초생활보장의 권리를

[기고] ‘재생산활동’ 프레임을 통한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

청년의 경제·사회적 어려움은 주요 정당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핵심 정치 의제로 부상한지 오래다. 윤석열 정부의 청년 핵심 공약이 ‘10년간 청년 1억 만들기’로, 이 같은 자산형성정책은 청년을 위한 대표적인 복지로 거론된다. 노동 및 사업소득이 있는 청년이 저축을 하면 일정한 매칭금을 덧붙여서 장기적으로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소위 한국형 실업부조라는 국민취업지원제도나 일부 지자체의 청년수당처럼 청년의 구직서비스 및 훈련 참여를 조건으로 한 한시적 수당제도도 청년대책의 일부로 회자된다.

이들 정책의 특징은 자산형성정책의 경우 전통적인 ‘소득’중심형 복지가 아닌 ‘자산’중심형 복지이며, 청년수당 등은 청년의 취업활동과 연계된 ‘한시적 현금지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장기간의 저축을 대가로 미래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산형성정책은 지금 당장 소득이 없어 배고픈 청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한시적 수당들은 잠시 동안 청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일부 경감시킬 수 있겠지만, 적절한 급여수준과 수급기간을 보장하기엔 한계가 있다. 빈곤 위험에 직면한 청년이 현재의 기본 필요를 충족하도록 청년의 기초생활보장에 대한 권리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권리

유럽연합 회원국 중에는 사회부조를 통해 청년에게 기초생활보장의 권리를 부여한 국가들이 많다.1) 노동시장 신규참여자이자 외부자인 청년은 사회보험 수급자격이 없어 청년의 사회부조 수급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한국도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됐지만 청년에게는 이 권리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 유럽 청년들은 기초생활보장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데 한국의 청년들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유럽 청년들이 사회부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한국보다 청구자격의 연령기준이 낮아서다. [그림 1]을 보면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들이 18세에 사회부조 청구권을 인정하는 반면 한국의 연령 기준은 30세다. 한국의 경우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는 30세 미만 청년은 기초생활보장급여 청구시에 부모 가구에 속한 동일가구원으로 취급된다. 한국의 30세 미만 청년은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1인 가구’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모의 피부양자로 간주되기에 독립적인 기초생활보장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처럼 청년에게 사회부조 청구 자격의 인정 여부는 해당 사회가 부모에게서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을 독립적인 ‘성인’으로 대우하는지 아니면 부모의 피부양자인 ‘아동’으로 간주하는지 보여주는 잣대다. 유럽에서는 18세가 됐을 때 사회부조 청구권을 부여하는 많은 국가와 달리, 프랑스는 비교적 늦은 25세에 도달할 때 인정되는데, 이런 까닭에 프랑스는 유럽학계에서도 ‘가족주의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는 18세~24세 무직 청년은 국가 대신 부모가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인 사회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늦은 30세에 기초생활보장 청구권을 인정하는 만큼 국제적으로 ‘강력한 가족주의’를 견지한 국가에 해당한다.


[그림 2]는 1인 가구인 25세 청년에 대한 국가별 기초생활보장의 적정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모든 국가는 국제적인 빈곤선인 중위 가처분소득의 60%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국가도 청년이 빈곤에서 탈피할 정도의 충분한 기초생활보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중위소득 대비 32%로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이는 비록 한국에서 20대 청년에게 기초생활보장 청구권이 인정되더라도 이들이 받는 급여는 다른 국가보다 부적절한 수준임을 의미한다.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의 정치적 난관: ‘노동유인’ 프레임

청년 기초생활보장 확충의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가족의 책무를 우선시하는 강력한 가족주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개인화의 진척으로 가족주의는 점차 퇴조하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이에 대한 가장 큰 정치적 난관은 복지혜택이 청년의 노동유인을 떨어뜨려 복지의존을 장려해 국가에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노동윤리에서 비롯한다. 사회정책에서 철 지난 가족주의에 대한 낡은 미련도 소위 노동유인 저하와 복지의존에 따른 재정적 부담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깊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2021년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주거를 달리하는 19세~30세 미만 청년을 부모 가구와 구별되는 ‘별도 가구’로 취급해 기초생활보장 청구권을 인정하라는 취지로 보건복지부에 정책 권고를 내렸다.2) 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답변은 이처럼 노동유인 프레임이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대에 가장 큰 정치적 난관임을 보여준다.3) 보건복지부는 ‘부모 지원이 충분한 청년까지 수급하게 될 가능성’과 함께, ‘청년의 취업요인 축소’와 ‘심각한 재정 소요 수반’을 인권위 권고 사항을 당장 이행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았다.

사실 청년의 노동유인 개선은 국제적인 복지개혁 의제이자 정책 프레임이기에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조건임이 분명하다. 많은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회부조 수급자인 청년의 노동유인을 극대화하고자 수급신청 자격에 엄격한 구직활동 및 강제적인 노동활동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 시 복지급여를 삭감하는 워크페어형 활성화(activation)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급 신청을 하는 현재의 청년이 과거보다 자율성을 침해당하고 경제적 박탈에 처할 여지가 커졌다. 따라서 노동유인 프레임은 청년에 대한 기초생활보장 청구권 확대에 가장 큰 정치적 장벽이라 할 수 있다.

‘재생산활동’ 프레임을 통한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 모색

청년에게 기초생활보장의 권리 부여는 더 이상 부모의 피부양자인 ‘아동’이 아닌 정치공동체의 ‘성년’이자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시민권을 인정하는 척도다. 부모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꾀할 수 있도록 청년에게 기초생활보장 청구권 자격의 인정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대로 주거를 달리하는 19세~30세 미만 청년을 부모와 다른 ‘별도 가구’로 취급한다면 부모와 독립적인 청년의 수급권을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청년에게 빈곤선 이상의 최저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의 생계·주거급여액을 현실화해야 한다. 강제적인 구직 및 노동관련 의무의 최소화와 엄벌적 조치의 폐지도 수급을 신청하는 청년의 자율성 확대를 위한 중요한 개혁과제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 권고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노동유인’ 프레임은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에 가장 큰 정치적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와 돌봄의 관점으로부터 최저소득보장의 잠재력을 찾은 페미니스트와 생태주의자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4) 그들은 관대한 최저소득보장 혜택은 시민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해 생존을 위한 (반)강제적인 노동시장 참여 대신에, 비공식적인 돌봄과 자원 활동 등 다양한 재생산활동 참여를 선택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엄벌적인 사회부조를 생태적 모델로 관대하게 재설계한다면 시민의 재생산활동을 장려해 사회를 보다 윤택하게 하고 생태적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요지다.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은 이를 예비하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참여(또는 노동시간 증대)를 강제하는 ‘노동유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높은 탄소배출을 수반하는 생산 활동의 시간을 축소하면서 비공식 돌봄을 장려하는 ‘재생산활동’ 프레임을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대한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통한 재생산활동에는 가족구성원과 타인에 대한 보살핌과 지역사회의 자원 활동, 환경에 대한 보살핌과 함께, 청년의 고등교육(학부 또는 대학원 과정) 참여 및 성인의 다양한 교육 참여 등 노동시장 외곽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포함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 청구자격의 최소 연령 기준을 현행 30세에서 법적 성인의 시작점인 18세로 대폭 낮추고 생계·주거급여액을 빈곤선 이상으로 현실화하며 엄벌적인 조치를 폐지하는 정책 개혁 방안은 이런 ‘재생산활동’ 프레임을 통해 보다 많은 정치적 지지를 확보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각주>

1. Chevalier, T., 2015, “Varieties of Youth Welfare Citizenship: Towards a Two-dimension Typology”, Journal of European Social Policy, 26(1), 3-19.
2. 국가인권위원회, 2021년 12월 20일 검색, “결정문(20대 청년을 개별가구로 보장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권고)”, https://www.humanrights.go.kr.
3. 인권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권고…보건복지부 일부 수용", 파이낸셜뉴스, 2021년 9월 1일, https://www.fnnews.com/news/202109011019160093
4. Laruffa, F., McGann, M., & Murphy, M. P. 2021, “Enabling Participation Income for an Eco-social State”, Social Policy and Society,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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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이 지점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와 돌봄의 관점으로부터 최저소득보장의 잠재력을 찾은 페미니스트와 생태주의자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4) 그들은 관대한 최저소득보장 혜택은 시민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해 생존을 위한 (반)강제적인 노동시장 참여 대신에, 비공식적인 돌봄과 자원 활동 등 다양한 재생산활동 참여를 선택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엄벌적인 사회부조를 생태적 모델로 관대하게 재설계한다면 시민의 재생산활동을 장려해 사회를 보다 윤택하게 하고 생태적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요지다. 청년의 기초생활보장 확충은 이를 예비하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유광민

    지금도 월세사는 청년에게 주거급여 의료급여 및 청년수당 등 기초생활수급자보다 복지혜댁이많고 장애인예산5조 청녀녜산20조원을 복지가 너무많음에도 불구하고 농손일손돕기는 하지않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