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한테 얼마나 상처가 될까, 그것 때문에 참아요”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50) 내부고발 해고, 10년째 투쟁중인 기아차 판매노동자 박미희 씨 이야기②

100번 통화한 고객도 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까 살아서 아무리 말을 해도 이 대한민국에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있잖아요. 대한민국이 안 썩은 데가 없어요. 엊그제 정우형 동지한테(삼성전자서비스 해고노동자 ‘故 정우형 열사 분향소’에) 갔었는데, 그 심정이 너무 이해가 돼요. 내가 죽어서 이 잘못된 세상에 대해 호소라도 하고 싶어요. 나 솔직한 심정이에요. 우리 엄마 생각하면 자식이 나 말고도 3명이 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애들한테는 얼마나 상처가 될까. 울컥하다가도 나 사실 그것 때문에 참고 있어요.”


5월 26일 저녁, 박미희 씨가 다음날 열릴 국가인권위원회 앞 ‘해고노동자에 대한 현대·기아차와 서초구청의 인권탄압에 눈감는 국가인권위원회 규탄’ 기자회견 소식을 전하며 이야기한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했다.

지난 4월 1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박미희 씨가 지난해 11월에 진정을 했던 ‘지방자치단체의 대형화분 설치 등 집회의 자유 침해’ 사건을 기각한다는 결정을 했다. 서초구청이 박미희 씨의 ‘집회 물품을 수거하고 집회・시위를 진행하던 자리에 대형화분을 설치함으로써 천막과 현수막을 설치하지 못하게 한 행위가 진정인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내용이었다.

  5월 2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진행된 ‘해고노동자에 대한 현대·기아차와 서초구청의 인권탄압에 눈감는 국가인권위원회 규탄’ 기자회견 장면 [출처: 기아차 판매 내부고발 해고노동자 박미희 공동대책위원회]

박미희 씨는 부산 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11년 동안 마스터(자동차 판매노동자)로 일하다 대리점들의 부당판매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원직복직과 사과, 해고기간 임금 지급 등을 포함한 정당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10년 째 투쟁하고 있다.

미희 씨는 2002년 부산 기아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IMF 금융위기로 하던 일이 어려워지면서 우연히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게 된 게 계기였다. 운전 면허증이 나오기도 전에 차를 사서 집 앞에 세워놓을 만큼 운전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기도 했다. 모닝·K7·오피러스, 미희 씨가 많이 팔았던 차들이다.

당시만 해도 소형차부터 트럭까지 다양한 차종을 판매하는 현대기아차 영업사원 중에 여성은 거의 없었다. 처음 입사 했을 때는 자동차 기계 구조와 기술을 파악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본사 교육도 많이 다녀봤지만, 실질적인 교육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저는 사람한테 마음에 없는 소리 잘 안 해요. 내가 잠시 잊어버리거나 착각을 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 뭘 물어보면 계산하지 않고, 내가 아는 걸 가능한 친절하게 알려주거든요.”


그런 진정성이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번 구매한 고객이 지인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장사를 하는 자신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미희 씨는, 어느 순간 주변에서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근무기간 내내 미희 씨의 실적은 거의 상위권이었다. 많이 팔 때는 한 달에 15대도 팔았고, 1등도 많이 했다. 기아자동차 본사로부터 차장 임명장도 받았다. 운이 좋아 그냥 얻어 걸린 결과가 아닌,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영업이라는 게 내가 얼마만큼 파느냐가 곧 내 힘이에요. 내가 애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서 무조건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업사원들 차 한 대 파는 게 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고객을 정말 왕처럼 모셔야 되거든요. 차 한 대를 팔려면 고객하고 최소한 50번은 통화해야 해요. 100번씩 통화한 고객도 있어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원직복직·사과 요구 피켓을 들고 있는 박미희 씨 [출처: 연정]

부당판매 내부고발, 이름을 알려 달라?

업무가 익숙해질 때쯤, 판매노동자들이 정당하게 수당을 받지 못하는 부당판매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고객에게 10만 원 이상의 할인이나 용품을 제공하는’ 부당판매를 금지하는 정도 판매를 표방하고 있었다. 매월 판매노동자들에게 부당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사인도 하게 했다.

“소장들이 영업 코드도 없고 회사 교육도 안 받은 외부 사람들한테 차를 과다 할인해주며 팔게 했어요. 그리고 우리 영업사원과 수당을 똑같이 줘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무실을 따로 차려놓고 영업을 했어요. 돈을 팍팍 깎아 주니까 고객들이 영업사원이 아닌 걸 알면서도 차를 사는 거예요. 그 할인된 돈은 영업사원들 수당이에요. 대수를 못 채우면 대리점에서 눈치가 보이니,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과다할인을 하는 거죠. 팔아도 돈이 남지 않았어요. 다들 너무 힘들어했죠.”


미희 씨가 일하던 당시에 2천 5백만 원짜리 스포티지 한 대를 판매할 경우, 통상 80~90만 원이었던 판매노동자들의 수당이 20~30만 원 정도로 삭감됐다. 반면에 부당판매의 주범인 소장들은 인센티브와 승진 혜택을 누렸다. 기아자동차는 천만 원의 순이익을 가져간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소장들이 한 달에 몇 천만 원 수익을 누릴 때, 판매노동자들은 생계에 허덕이고 있었다. 대리점 직원 상조회에서 이 문제를 공유했고, 미희 씨를 포함한 세 명의 노동자가 내부고발에 나서기로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최종 남은 사람은 미희 씨 혼자였다. 회사에서 강력하게 대처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낸 미희 씨는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 대리점 지원시스템 이사에게 전화를 했다. 2013년 4월 말이었다.

“25분 정도 통화했어요. 시장이 너무 망가져서 영업사원들이 너무 힘들다. 다 가장들인데 돈 만 원도 주머니에 못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 값이 없어) 직원들 눈치를 본다. 꼭 좀 해결해 달라고 호소를 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대리점의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나는 익명으로 제보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더 잘 처리해야 되니까 가르쳐 달래요.”


미희 씨는 제보를 받은 이사가 혼자만 알고 있겠다고 한 말을 믿고, 대리점 명과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이사가 ‘○○○’라며 소장의 이름을 얘기했다. 소장과 아는 사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믿고 기다렸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출처: 연정]

해고, 일주일만 일인시위 하고 오겠다

한 달 후인 2013년 5월 30일, 대리점 지원시스템 이사는 미희 씨가 내부고발 했던 대리점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희 씨의 내부고발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미희 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제보와 관련해서는 어떤 처리 결과도 회신 받지 못했고, 해결된 것도 없었다. 해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서 한 장, 심지어 문자 한 통도 받지 못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소장이 저보고 이야기 좀 하자 그래요. 그러더니 ‘같이 근무를 못 하겠네요. 그만두세요. 월요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통보를 해요. 회사에서 아무 제재가 내려온 게 없었는데도요.”


소장은 해고와 동시에 대리점 소장들이 소통하는 공간에 미희 씨 이야기를 공유하여, 미희 씨가 다른 대리점에도 갈 수 없도록 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명단에 미희 씨를 올린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알고 물어요. ‘우리가 어찌하면 되겠어요?’ ‘아무것도 하지마세요. 다른 사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내가 해결할 겁니다. 나 이 일에 대해 용서 못합니다.’ 하고 나왔죠.”


정작 미희 씨는 가족들에게는 해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씻고 드라이 하고 옷을 다려 입고 나왔다.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어 차를 대놓고 먼 산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다.

“제가 가장이거든요. (울음) 3개월 동안 그렇게 하다가 수입이 없으니까 저도 버틸 수 없는 거예요. 결국 집에 얘기 했어요.”


해고가 된 직후, 미희 씨는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 대리점 지원시스템 이사 밑에서 근무하던 부장에게 부당판매 내부 고발자 해고에 항의하며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당시 해당 부장은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해고를 인정하며 “9월 중순까지만 기다려 달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석 달을 기다렸지만, 기아자동차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2013년 10월, 일인시위 방법도 몰랐던 미희 씨는 친구들과 상의해 피켓을 만들어 상경해 무작정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으로 왔다.

“가족들한테 일주일만 일인시위 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일주일만 일인시위 하면 분명히 해결될 거다. 진실이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덧붙이는 말

<워커스> 2020년 6월호 “살아있는 한 해결될 때까지 투쟁할겁니다”에 게재된 본 필자(연정)의 글 중 박미희 씨의 투쟁 과정을 인용·보충 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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