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워짐’에 맞서는 싸우는 몸들

[질문들]


지난달 14일,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선거사무소를 찾았다. 피켓을 들고 이재명 후보, 윤호중, 박지현 상임선거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등이 도착할 때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를 외쳤다. 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의 항의를 받았고 경찰로부터는 해산명령을 들었다. 지지자들은 왜 민주당만 따라다니며 요구하느냐, 국민의힘으로 가라며 항의했다.

그러던 중 “경찰은 저 사람들 안 치우고 뭐 하는 거냐?”라는 말이 들렸다. 단 한 번의 말이었지만 ‘치우라’는 소리는 유독 머릿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나 반복 재생됐다. 환대받을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치워질’ 무엇이 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폭력적인 말을 내뱉은 그를 한번 째려보고 불쾌한 감정을 털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거리낌 없는 태도가 계속 생각났다. 내가 느낀 모욕과 분노에 대해, 그가 한 폭력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계속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은 어쩌다 튀어나온 실수가 아니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럴 것만 같았기 때문에.

‘치워지는’ 몸

그날 오후 용산역에서 2022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아이다호데이) 공동행동이 있었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 분류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국제적으로 기념하는 날이었다. 용산역 광장은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바꿀 의지 없이 ‘나중에’를 핑계 삼아 도망가거나 ‘구조적 차별은 없다’라며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경찰이 가로막았던 대통령 집무실 앞을 무지개로 물들이며 거침없이 행진했다. 광장과 거리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나와 같은 앨라이(Ally·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와 장애인, 가난한 사람, 성 노동자 등 모두가 환대받는 공간이었다. 이날 대회의 슬로건은 ‘싸우는 몸, 분노의 외침, 권리의 연대’였다. 오전에 ‘치워져야 하는’ 몸이었던 나는 ‘싸우는 몸’들과 함께 당당해졌다.


소수자들은 너무 자주 치워져야 하는 존재로 지목된다.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는 없으니 차별도 없다’라며 노골적인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부터, 차별엔 반대하지만 ‘꼭 그렇게 드러내야 하느냐’라며 돌려서 혐오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태도로 드러난다. 차별하면서도 차별이 아니라며 망설임 없이 차별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혐오를 조장하는 종교집단, 공공기관, 언론, 정치, 정부 등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단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 SBS는 설 특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동성 간 키스 장면을 편집한 채 방영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밴드 퀸의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음악을 담은 영화인데 음악인이자 성소수자인 그의 정체성 일부를 삭제했다. 영화를 만든 의도를 왜곡하고 그의 삶을 훼손했다. 관련해 SBS 관계자는 “지상파 채널에서 영화를 방영할 때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나 흡연 장면을 임의로 편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는 성소수자의 삶이 폭력처럼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그러니 삭제돼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다. 방송에 성소수자가 등장할 때마다 혐오 선동자들은 동성애 옹호·편파 방송이라며 압력을 행사했다. 사실 그동안 너무 이성애 중심 ‘편파’ 방송을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성소수자에 대한 ‘옹호’ 방송이 더 많아져야 균형을 이루지 않겠는가.

정부나 공공기관은 차별 행정을 마치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둔갑시킨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더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고자 2019년에 서울시에 사단법인 설립을 신청했다. 서울시는 미온적인 태도로 대답을 계속 미루다가 지난해 8월에야 불허가 처분을 통보했다. 통상 비영리법인 설립 신청 처리 기한은 2주인데 2년을 미루면서 불허가한 것은 그저 단체 설립을 불허가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갈등 등으로 인해 공익을 저해할 요소가 있다”라는 불허 사유는 성소수자 존재를 불허한다는 의미였다. 성소수자 존재를 지우기 위해 안간힘 쓰는 서울시는 2022년 서울퀴어축제 개최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 신고에 대한 수리도 미루고 있다. 매년 개최했던 축제 장소에 대한 수리 통보를 차일피일 미루며 행사 개최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신중한 논의와 민주적인 과정처럼 포장하지만, 본질은 성소수자의 삶과 존재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승낙을 기다리면서 거부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상존하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싸우는 몸들의 자긍심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국민보건의료실태통계조사, 가족실태조사 등 국가승인통계조사와 관련 법령에 따라 실시되는 각종 실태조사에서 성별 정체성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수집하지 않는 것이 성소수자 집단이 정책 수립 대상 인구집단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가시화하지 않는 것은 침묵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침묵을 거부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두려워도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나의 용기와 맞잡을 용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몸들이 차별 행정에 맞섰다.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들은 2017년 체육관 대관을 취소한 서울 동대문구와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지난달 13일 2심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총 900만 원의 손해를 인정했다. 이 판결은 성소수자 체육대회에 대한 공공체육관 대관 취소는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임을 분명히 하고 평등권 침해를 손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권을 침해한 위법성과 함께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을 확인해줬다. 차별이라는 판단은 법원이 했지만, 이 결정은 ‘싸우는 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싸우는 몸’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싸우며 생존한다.

‘치워지는 몸’이 성소수자만일까. 도시미관을 해친다며 치워지는 노점상과 홈리스, 위험한 존재로 지목되는 이주민과 난민, 비장애인의 속도를 맞출 수 없다며 혹은 보호가 필요하다며 집과 시설에 머무르라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다양한 나‘들’은 내게 나로서 살아가는 용기와 투쟁을 알려주었다. 10여 년 전 퀴어축제를 통해 알게 된 ‘자긍심’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에서 용기가 느껴졌다. 6월은 ‘LGBTQ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즉 ‘성소수자 인권의 달’로 전 세계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이 자신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달이다. 당신이 누구든 치워질 수 없다. 나로서 생존하겠다는 당신의 용기를 우리가 함께 지켜낼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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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싸우는 몸들이 차별 행정에 맞섰다.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들은 2017년 체육관 대관을 취소한 서울 동대문구와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지난달 13일 2심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총 900만 원의 손해를 인정했다. 이 판결은 성소수자 체육대회에 대한 공공체육관 대관 취소는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임을 분명히 하고 평등권 침해를 손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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