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3천조인데 ‘30대 재벌사내유보금, 1천조’ 육박

노동당, 2021년 재벌사내유보금 발표…“상위·하위 재벌 격차 커져”

지난해 가계부채가 3천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같은 해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1천조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906조1458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35조 원이 증가했으며, 5대 재벌 사내유보금 역시 약 26조 원이 증가한 727조6082억 원이었다.


노동당은 9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재벌사내유보금 현황을 발표했다. 재벌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수익에서 각종 비용을 지출하고 남은 이익금을 동산·부동산 형태로 쌓아둔 것으로, 상당 부분이 금융자산이나 현금성 자산이다.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기업에 출자한 ‘투자자산’도 포함된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981조1710억원이다. 전년(1045조1301억원)보다 63조9591원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1천조에 달했다. 이는 작년 가계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사상 처음 200%를 넘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계의 ‘순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0.7%로, 전년보다 12.5%P 높아졌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증가 폭이 컸다.

“한계기업·가계부채, 경제위기 뇌관 될 것”

노동당은 30대 재벌 전체 상장사(189개)와 자산 500억 원 이상 외부감사대상 비상장회사(435개)를 합해 624개 법인의 개별재무제표를 전수조사했다. 30대 재벌을 선정한 기준은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한 것을 따랐다.

10대 그룹별 사내유보금은 △삼성 304조4063억 △SK 139조4345억 △현대차 160조9371억 △LG 65조9231억 △롯데 56조9072억 △포스코 62조4854억 △한화 39조1163억 △GS 17조1234억 △현대중공업 38조7774억 △신세계 21조351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앞서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올해 2월 노동당과 합당하기 전인 2016년부터 재벌사내유보금 현황을 발표해온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재벌사내유보금은 역대 최저치로 증가했다. 이종회 노동당 공동대표는 이번 재벌사내유보금 현황에 대해 “10대 재벌까지는 사내유보금이 조금 늘었지만, 나머지 재벌들은 어렵다는 얘기”라며 “코로나 경제위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 한계기업이 극도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 기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비중은 20%에 달한다.

노동당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규모가 전년보다 줄어든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부터 사모펀드(PEF) 전업 집단, 금융·보험사와 PEF 관련 회사만으로 구성된 집단을 (대기업집단 지정 대상에서) 제외함에 따라 한국투자금융 등이 빠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이 크다”라고 했다.

노동당은 한계기업들과 함께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 가계부채 규모는 한국은행의 ‘2022년 1분기 가계 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총 1859조4천억 원에 달한다. 가계부채 규모가 실제로는 더욱 심각할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는 전세자금과 자영업자의 대출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전국민중행동에 따르면, 이를 포함할 시 가계부채 규모는 3200조 원, 가계성 법인 대출까지 포함하면 3500조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 경우 GDP 대비 190%에 달하게 된다. 노동당은 2021년 2분기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8%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이것이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코로나에도 늘어난 재벌의 이익, 어디서 왔나

30대 재벌사내유보금 규모가 전년보다 줄었지만, 재벌 대기업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늘었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작년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289.2조 원 증가했다. 2021년 1344.5조 원에서 2022년 1633.7조 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매출액도 292.5조 원 증가했다.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당기순이익도 2021년 43.5조 원에서 2022년 125.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2.3조 원 증가했다. 전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78.0조 원 늘었다.

이에 대해 한성규 민주노총 재벌체제개혁특별위원장은 “재벌의 독점은 더욱 확대·강화되고 있다”면서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5% 증가했고 sk하이닉스는 148%, 현대차는 자그마치 2.8배가 증가한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남겼다”라고 지적했다.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로 얻은 영업이익을 재벌 일가의 기업승계를 위한 사익에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영승계를 위해 천문학적인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재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배당금은 3632억 원으로 전년 대비 66.1% 증가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배당금은 10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3% 증가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853억 원(전년 대비 1.5배 증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703억 원(전년 대비 12% 증가)을 받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배당금은 292억 원으로 5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적지만, 배당금 증가율(30.5%)은 세 번째로 높았다. 5대 그룹 총수의 지난해 합산 배당금 증가율은 전년 대비 44.3%에 달한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비정규직을 고용한 비율도 높아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10대 재벌이 고용한 비정규직은 2020년 기준 52만 명에 달한다. 300인 이상~500인 미만 기업은 26.4%, 1만인 이상 기업은 43.5%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10대 재벌에 포함되는 GS(58.8%), 포스코(53.3%), 롯데(52.4%), 현대중공업(52.2%)은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벌은 기후위기의 주범이기도 하다. 녹색연합 발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14곳)의 업체는 지난 10년간(2011년~2020년) 국내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51.4%를 배출했다. 상위 10% 업체(140곳)로 확장하면 77.7%에 달한다.

정록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은 사내유보금은 재벌의 돈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과 지구의 생명들을 대가로 한 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내유보금이 “기후부채, 생태부채, 노동자 민중에 대한 부채”라며 “재벌 자본은 가장 싼값에 원료를 조달하고 대량 생산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경쟁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모았다. 이를 위해 상품의 원료가 되는 각종 광물을 남반구 국가의 자연을 파괴하고 땅을 파헤치며, 노동자의 삶과 생명을 앗아가며 착취 수탈해왔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재벌들의 투기수익도 막대하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재무제표상 투자부동산)은 장부가 기준, 5대 재벌은 12조4983억 원, 10대 재벌은 23조6038억 원, 30대 재벌은 31조9692억 원에 달한다. 그룹별로는 롯데(5조8430억), 신세계(4조 5355억), 한화(3조1226억), GS(2조6403억) 순이었다.


이는 시가를 기준으로 하면 더욱 높아진다. 정부는 2021년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을 68.4%라고 발표했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30.7%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준으로 하면, 5대 재벌의 투자부동산 규모는 164조2267억 원∼366조7000억 원이고, 10대 재벌은 310조1539억 원∼692조5355억 원, 30대 재벌은 419조9570억 원∼937조7123억 원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에 사내유보금 환수 요구

노동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가 노골적인 친재벌 행보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재벌개혁과 규제는커녕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강화하는 규제 완화 일색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재벌 총수의 전횡이나 사익 추구를 야기할 우려가 큰 ‘복수의결권 도입’, ‘동일인 친족 범위 조정’, ‘기업승계제도 완화 및 상속세율 완화’ 등이 그것”이라고 비판하며, 재벌체제 청산을 위한 요구안을 대통령 집무실에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사내유보금·투자 부동산·부당 수익 환수를 통한 사회 불평등 해소 △불법파견 기업 처벌, 재벌의 정규직 직접고용 시행,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통한 불안정 노동체제 청산 △기업의 탄소배출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정책 도입, 정의로운 전환 △재벌체제 청산, 공공주도 경제정책으로 재편 등이 담겼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선임 간사는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독과점,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대규모 담합, 높은 경쟁 제한성과 불공정거래, 총수 일가를 위한 사익편취와 정치권력과의 결탁 등 청산돼야 할 행태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재벌은 단순히 기업을 경영하는 경제집단이 아니라,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투명성·청렴성을 훼손하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경제 권력을 쥔 재벌이 이를 이용해 총수의 승계 등 사익을 추구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난 것이 바로 몇 년 전의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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