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여성 하청노동자, “차별과 저임금 끊어내려 파업 나섰다”

[인터뷰] 대우조선해양 거통고하청지회 전혜은·정순희 조합원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출처: 은혜진 기자]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조선소 노동자들은 달궈진 철판 위에서 제 살을 깎으며 일했다. “조선소는 여름이 가장 지옥같다”는 노동자들의 푸념은 과장이 아니다. 작업복과 안전화는 바닷물에 담갔다 올린 것처럼 땀으로 젖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유난히 더 힘들지만, 하청 노동자들에겐 1년 365일이 지옥이다.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지난달 2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1m³ 철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농성을 택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우리가 무너지면 우리뿐만 아니라 삼성·현대(중공업)의 모든 하청 노동자들이 지옥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라며 절규했다. 그리고 이 같은 생지옥의 현장 가장 낮은 위치에 여성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조선소 현장을 바꾸는 파업, 우리 모두의 일”

[출처: 은혜진 기자]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파업에는 조선소 하청 여성 노동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20년 넘게 용접 쇳물을 다룬 용접공 전혜은 씨(55)도 그중 하나다. 전 씨는 “떠날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난 조선소지만, 거제에 사는 여성들에게 조선소는 여전히 중요한 일자리”라며 “열악해진 조선소 현장을 바꾸는 것은 남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했다. 성별분업이 뚜렷한 조선소에서 여성 하청 노동자들은 보조적인, 주변적인 업무를 도맡으며 최저임금에 발이 묶였다. 그나마 전혜은 씨는 조선소에 발을 들인 2000년, 운 좋게 용접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1,000도가 넘는 용접 불꽃을 다루는 일은 한 여름엔 작업복 두 벌을 모두 적실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자긍심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나 있는 자식이 뒷전이 될 만큼 일 욕심 하나는 대단했다. 그녀는 “용접일이라는 게 시간이 흘러야 배울 수 있는 일이다. 100번, 1000번을 하면 그제야 쇳물이 보인다”라며 “기량을 쌓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고, 어깨 넘어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일이 많을 때는 연습이라 생각하고 했다”라며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최고의 숙련공’이 되고 싶다는 다짐도 여전하다.

용접공은 ‘조선소의 꽃’이라 불리지만 임금은 처참하다. 대우조선해양의 배만 20년 이상 만든 그녀의 시급은 1만 원을 조금 넘는 1만 500원이다. 그는 “토요일 특근을 모두 챙겨도 4대 보험을 떼면 월 250만 원 정도를 번다. 하루 8시간씩만 일해선 200만 원도 못 버는데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어렵다”라며 “하청업체 상여금 550%를 없애고, 임금 인상분이 전혀 없었으니 임금의 절반 이상을 빼앗긴 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전의 임금은 사실 전 씨가 “거의 회사에 살면서 번 돈”이다. 당시에도 기본급은 최저시급에 맞춰져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해 밤 10시까지 철야 작업을 하면서 임금을 벌충했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는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전 씨는 “편의점 알바도 아니고 애사심을 갖고 다닐 수 있어야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하루 놀고 하루 쉬고, 알바하는 거랑 마찬가지”라며 “지금 우리 회사 막내가 40대 후반이다. 30대는 물론이고 40대 초반도 보기가 어렵다. 상용직들은 학자금이 나오니까 그거라도 받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고되는 이들도 많았다. 불황이 핑계가 됐고, 노조하려는 이들을 쫓아내려는 이유도 있었다. 전혜은 씨는 불황과 구조조정 속에서도 억척같은 투쟁으로 살아남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라는 말을 증명한 여성 노동자다. 2020년 회사는 정리해고 명단에 그녀를 끼워 넣었다. 그녀의 회사 ‘명천’은 조선소 내 100여 개의 하청업체 중에 유일하게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미 희망퇴직으로 3~40명을 내보낸 뒤였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도 않고, 회사가 어렵다는 말만 했다.

“4명이 남아서 끝까지 싸웠어요. 두 달 정도 선전전을 하고, 회사 안에서 천막 농성도 하고요. 크레인 고공농성까지 했는데 회사가 꿈쩍도 안 해서 아무도 못 이긴다고 했어요. 그런데 극적으로 해고 3일을 남겨두고 타결을 봤죠. 원청에 타격이 있으니까 그때부터 교섭창구를 열어서 대화를 진행하게 됐어요.”

대우조선해양은 2017년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며 4년 연속 영업흑자를 달성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2020년 6월까지의 영업이익은 2조 4,030억 원. 원청은 수조 원의 흑자를 내면서 하청 노동자는 5천 명 가까이 대량해고되고 있었다. 전 씨는 “조선소 호황기에도 회사는 어렵다고만 했다. 저가수주에다 강재값이 올랐다며 회사의 손실만 이야기하면서 한 번도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 하청 노동자 임금을 억누르면서 손실을 메꾸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숙련공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그에겐 노조 활동으로 바꾸고 싶은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너무도 명확한 조선소의 성별분업을 넘어서는 것. 전 씨는 “조선소는 현장직도, 사무직도 남녀 차별이 있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 안 된다. 그런데 용접처럼 여성들이 배워서 할 수 있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라며 “여성이라고 일도 조금 주고, 돈도 조금 주고 하는 차별은 분명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30kg 넘는 장비 들고 하루 2만 보…
가짜뉴스 보지 말고 현실을 봐주세요”


“쉬운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산업은행을 상대로 싸우는 거고, 이 말은 국가하고 싸우게 된다는 거잖아요. 원청에서도 한치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니까 어차피 드러날 거짓 선전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고요. 돈이 많아 그런지 가짜뉴스를 잘 퍼뜨리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자기들이 돈으로 처발라도 진실은 밝혀지게 돼 있어요. 국민들도 돈이 가리키는 것을 보지 마시고, 현실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출처: 은혜진 기자]

정순희(48) 씨는 담담하게 이번 파업 투쟁이 쉽지 않겠노라 말했다. 정 씨는 조선소 일 중에서도 가장 안 쳐준다는 발판(비계) 설치 관련 업무를 하는 하청 노동자다. 발판공이 발판을 설치하면 취부사나 용접사가 발판을 딛고 자신의 작업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정 씨는 남성 발판공들이 고소 부위(높은 곳)에 올라 발판을 설치하면 이들에게 파이프 같은 기자재도 날라다 주고, 자재도 정리하고,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하는 업무를 한다. 원래 주 업무는 현장 통제 업무지만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여러 일을 떠맡게 됐다.

“작업을 하려면 사이즈별 파이프를 포함해서 자재 가짓수가 3~40가지는 돼요. 이 자재를 발판공들한테 전달해주는 거예요. 위에 있는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드니까요. 문제는 자재 무게인데 이게 한 30kg 정도 나가요. 이걸 들고 하루에 보통 1만 5천 보에서 2만 보정도 걷는 것 같아요. 손가락 마디마디가 튀어나오고, 관절이 다 나가죠. 정신없이 일할 땐 모르는데 집에 가면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어요.”

그렇게 오후 5시에 일을 마치면 그녀의 작업복과 안전화는 온통 땀으로 젖는다. EBS 극한직업에도 소개된 적 있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여기도 임금은 최저임금이다. 정 씨가 보기에 발판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투쟁이 없어서다. 그는 “우는 애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다들 불만은 많은데 잘릴까 싶어서 말을 못 꺼낸다”라며 “특히 발판에선 나서서 싸우는 사람들이 더 없다보니까 회사가 아주 작정하고 임금을 틀어쥐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계약해지의 불안이 높은 하청노동자들이지만 정 씨는 싸워서 이겨본 경험이 있다. 지난해 그녀가 소속된 업체 ‘진우’가 4대 보험을 체납한 채 업체를 폐업시키려 했을 때, 체납 문제를 해결하고 고용승계를 받아냈다. 4대 보험 체납은 그동안 조선소 하청업체들의 고질적 문제였지만, 그녀와 동료들은 끝까지 싸워 이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투쟁은 쉽지 않았다. 싸우는 건 소수인데, 성난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백이었다.

“6년 전에 조선소에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회사가 세 번 바뀌었어요. 가는 곳마다 4대 보험 체납을 겪으니까 이번엔 한번 싸우고 싶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그랬고요. 막상 투쟁을 시작하니 상상 이상이에요. 당사자들 포함해서 연대 동지들까지 합해도 서른 명이 될까 말까인데 원청에서 수백 명이 와서 농성하는 사람들을 끌고 갔어요. 텐트도 못 치게 찢어버리고요. 지금 파업 중인 사람들도 몇 명이나 된다고 그렇게 괴롭히잖아요.”

살 떨리는 위협에도 파업을 놓을 순 없다. “이때 확실하게 잡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악조건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라며 그녀는 동료들을 떠올렸다.

“내 임금도 그렇지만, 우리 발판 쪽 남성 동료들도 이 임금을 갖고 살 수 없어요. 이 사람들 그 높은 곳에 올라가면서도 파이프 한 다발이라도 더 챙기려고 자기 안전은 안 돌보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쉽게 돈 벌어가는 사람들이랑 달라요.”

정부, 파업에 재 뿌리나

  지난 3일 민주노총 영남권 노동자대회가 열린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7명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가 선박 고공과 1미터 감옥에서 끝장 농성을 벌이고 있다. [출처: 은혜진 기자]

한편, 33일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4일 거제경찰서는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지회장과 부지회장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지난 1일 신청했다고 밝혔다.

전혜은 씨는 어렵게 만든 파업인 만큼,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서울과 거제를 오가며 바쁘게 파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순희 씨도 파업에 나설 때 이미 큰 싸움인 것을 각오했기에, 질기게 버텨볼 예정이다. 공권력 투입을 시간문제라고 하던 정순희 씨는 “경찰이 유최안을 잡아간다면 또 다른 유최안들이 나타날 것”이라며 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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