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기후정의운동 만들기

[녹색 스트라이크]


투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내가 어쩌다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됐을까? 주변에 소위 운동권 출신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거리나 미디어에서 가끔 투쟁을 접했지만, 그 일들은 나와 관계없는 외딴섬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석유화학공장에서 임금노동자로 살다가 정리해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유전질환인 간염이 간암으로 발전해 50대 중반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내가 노동운동을 접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그의 죽음이 산업재해이며, 국가와 기업의 책임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내가 페미니즘 운동을 접하기 전까지는 나의 어머니의 신경질과 분노를 암울한 가정사와 개인적인 성격 탓으로 여겼다. 그가 일상에서 지닌 부정적인 감정이 가부장적인 사회에 살며 겪은 성차별에서 기원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운동의 장(場)은 어떤 세계처럼 다가왔다. 각 운동은 연대를 통해 연결돼 있었고 그 연대의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만큼 세계가 확장했다. 사회운동을 접하면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라는 더 큰 체계 속에서 해석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투쟁이 나의 문제로 연결됐던 첫 번째 계기는 해고 노동자와의 만남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주관한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프로그램에 참여해, 복직 투쟁을 하던 해고 노동자의 농성장을 방문해 그들의 얘기를 듣고 연대를 위한 현장기도회를 진행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콜트콜텍,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차례로 만나고 교육을 들으면서 섬처럼 멀게 느껴지던 일들이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곳의 문제로, 가족과 이웃의 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투쟁하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내게 형용하기 힘든 어떤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첫 피케팅

대학을 졸업하곤 곧장 입대했다. 논산훈련소 수료식 날 오랜만에 받아 든 스마트폰에는 세월호 참사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대형 참사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을 군부대 안에서 지켜보며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제대하고 세월호 미수습자 유가족과 함께하는 기도회를 진행하던 친구를 따라 얼떨결에 거리에서 피켓을 든 적이 있다. 한 번에 그쳤지만, 그날의 피케팅은 내 생애 첫 피케팅이었다. 행인이 아닌 ‘멈춰선 사람’이 돼본 첫 경험이기도 했다. 횡단보도 한 편에 서서 피켓을 들고 가만히 서는 일은 고역이면서 동시에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피케팅은 확실히 이상한 행위였고, ‘낯선 이들은 쳐다보지 말고 그냥 지나치라’는 도시의 정언명령을 어기는 행위였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과 그들이 나의 피켓 문구를 읽는 표정을 바라봤다. 나중에는 그들이 피켓 메시지를 잘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분명 이상한 짓을 한 것은 난데, 반대로 이 도시가 나에게 이상한 형체로 다가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도, 인도를 걷는 다양한 사람들의 걸음, 도시의 풍경 모두 낯설어졌다. 그냥 멈춰서기만 했는데.


동네에서 다시 만난 사회운동

20대 후반, 서울을 떠나 충북 음성군에 이주했다. 대단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음성에 가면 농사, 목공 등을 배우며 도시와 다른 리듬으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연과 동떨어진 인위적인 생활양식에 대한 거부감이 축적됐고, 한편으로는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쌓이기도 했다.

처음엔 직업소개소를 통해 날일을 하다 양계장에서 일하게 됐다. 음성노동인권센터를 소개 받아 언젠가 활동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지만, 그 전에 다른 일들을 먼저 해보고 싶었다. 당시 읍사무소 앞 작은 공원에선 한 달에 한 번 세월호 촛불문화제가 열렸는데,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여성농민회와 농민회 회원들을 비롯한 음성민중연대 사람들과 주민들을 알게 됐다.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사드배치 반대, 화물연대 파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참석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동네에서 열린 세월호 촛불문화제는 내게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사회, 정치, 경제를 알려주는 교실이었고, 사회변화를 꿈꾸는 작은 공동체였다.

음성노동인권센터 또한 공동체가 맺은 결실 중 하나였다. 청주노동인권센터와 음성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2015년에 금왕읍에 동네 노동상담소를 차린 것이다. 지역을 횡단하는 연대 덕분에 음성지역 노동자들이 맘 편히 드나들며 도움받을 수 있는 거점이 마련됐다. 나는 그곳에서 6년째 상담을 하고 있다. 지역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일터에서 겪는 얘기를 들을수록 비수도권 중부지역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노동인권 침해가 오늘날 정치경제 체제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폭넓은 연대를 만드는 기후정의운동

내가 이해한 기후정의운동은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위기를 전 지구적인 시야에서 다루는 운동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내부 식민지 관계가 만들어졌듯이, 북반구 주민의 제국주의 생활양식은 남반구 지역의 노동자와 자원을 추출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정의운동은 지구에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가려져 있는 비인간동물을 비롯한 모든 거주자의 존재를 호명하고, 그들이 겪는 위기에 대해서 말한다. 내가 받아들인 기후정의운동의 주된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이다. 우리 각각의 존재는 자연의 일부로서 연결성을 회복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생활양식과 경제체제를 찾아야 한다. 또 우리는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남기며 다양성과 풍요로 향하는 자연의 원리를 배워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수탈하면서 획일화되고 붕괴해 왔다.

세계 경제체제는 식민주의적인 세계화를 경유하며, 국경을 뛰어넘는 불평등과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어느 지역은 수도권과 메가시티를 위한 에너지와 원료를 생산하는 기지가 되고, 어떤 지역은 폐기물을 소각하고 매립하는 장소가 됐다. 베트남 화석연료발전소 건설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기업(삼성물산, 두산, 한국전력, 한국수출입은행)이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 이미지를 광고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빼앗고, 노동력을 부당하게 추출하면서 공장 밖에서는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같은 부정의가 우리의 일상과 의식 속에서는 상당 부분 가려져 있다.

기후정의운동은 오늘날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언급되고 있는 과학기술이 얼마나 불평등하고, 파괴적인 체제에 복무하고 있는지도 비판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전기/수소차, 탄소포집기술 등은 그간 자연을 인간과 분리해 대상화해오던 방식을 더욱 고도화한 형태다(그래서 매우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이다), 이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광물을 채굴해야 하고, 많은 노동력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기술은 민중과는 동떨어진 채 ‘신재생에너지 시장’이라는 국가와 기업의 전쟁터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태양광 발전에 쓰이는 태양 전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규소를 합성실리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화학 공정은 매우 복잡하고 공정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전기를 소비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지난 수년간 실리콘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고, 현재는 싼값의 전기, 노동력, 핵심 장비를 갖게 된 중국이 세계의 실리콘 공장을 자처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태양광 에너지는 중국 노동자의 값싼 노동과 대규모 생산, 중국의 자원무기화 정책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고도의 기술력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햇빛은 지구의 모든 거주자에게 매일 평등하게 쏟아지고 있지만, 햇빛을 전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온통 기업과 시장에 내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낸 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프리카 뿔 지역은 역대 가장 극심한 가뭄과 폭염을 겪고 있지만, 내리쬐는 햇빛은 그들에게 재난일 뿐, 에너지원이 아니다. 경제 원조와 태양광 발전 지원을 하면 된다고? 또다시 획일성과 붕괴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지 않은가.

동네모임에서 시작하는 기후정의운동

음성에서는 올해 1월부터 매월 마지막 금요일마다 ‘우리의 금요일’이라는 이름의 모임이 열린다. 초등학교와 마을학교 교사, 연극배우, 활동가, 목사, 공무원, 농민, 하수처리장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기후위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첫 모임 때 어떤 이유로 모임에 참여하게 됐는지 물었다. 답답하고 절망스러워서, 누군가 해결해주길 기대하지만 결국 지역 사람들이 나서야 할 것 같아서, 공장 중심 정책만 있고 복지 예산이 너무 적은 음성군 행정에 불만이 있어서, 예술 활동과 기후위기를 연결하기 어려운 지역 조건에 고민이 있어서, 그리고 음성군이 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등등 각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얼마 전엔 ‘우리의 금요일’을 함께 하는 목사님 부부가 그들이 운영하는 생극면 도토리숲 작은 도서관에 기후정의와 탈성장을 주제로 한 도서들을 비치했다. 나는 오랫동안 마을학교 활동을 해온 목사님의 소개로 ‘학교 마을 넘나들기 수업’을 맡고 있다. 마을학교 활동은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 청소년들에게 기후정의를 설명하는 다양한 경로 중 하나다. 대소중학교 1학년 6개 반 수업을 하면서는 종이 상자로 피켓을 만들기도 했다. “선생님, 피켓이 뭐에요?”, “우리도 (등교 파업하고) 시위하러 나가도 돼요?”라는 질문에 기쁜 마음으로 설명했다. 자신의 의견을 여러 사람에게 내보이는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도토리숲 작은 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 진행하고 있는 ‘지구를 지키는 도토리 특공대’는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연과 함께 놀고 지역 생태계와 기후위기를 학습하는 마을학교 수업이다. 국내 여느 도시가 그러하듯 생극면도 자동차를 중심으로 도시가 설계돼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위험했다. 지난해에는 특공대원들이 집단으로 면사무소를 찾아가 ‘자전거 도로를 놔달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면담에 응한 부면장님은 화물차가 많이 다니고 도로 폭이 좁아서 현실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설치하기 어렵다며 특공대원들에게 궁색한 변명을 했다.

지난 3월부터 모이고 있는 ‘기후위기 마을교육 연구회’에선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마을 청소년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마을학교 교사들과 주민 중 기후위기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였다. 내년에는 더 많은 마을학교 선생님들이 더 많은 학교와 마을학교 거점에서 기후정의를 소개하고 행동을 만들어내리라 기대하고 있다. 나에게 지역 사회운동을 만나게 해준 음성민중연대 회원들도 최근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에 가입하고 학습모임을 준비 중이다. 민중연대에 소속된 여성농민회, 농민회 회원들은 그 누구보다 기후정의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역 기반의, 작지만 조직적인 운동

사회운동 주변부에서 살아오던 내가 사회운동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일상성’이었다. 여러 계기들이 중첩되며 사회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지만, 나의 행동을 이끌었던 건 부담 없이 접근이 가능한, 누군가 펼쳐놓은 일상적인 모임과 교육, 집회였다. 이런 자리에서 맺게 된 새로운 관계들은 새로운 사회의 이상이 나의 삶 속에 침입하도록 이끌었다. 서울 지역과 전문적인 활동가를 중심으로 생산된 운동 구호와 메시지들이 SNS를 타고 지역 거주민들에게 송출돼도, 일상적인 만남이 없는 한 힘을 갖기 어려운 것 같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일상성을 담보할 수 있는 거점이나 공동체는 지역에서 축적해온 사회운동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음성지역의 경우 민주화 운동, 농민 운동과 노동조합 운동이 서로 연대하며 명맥을 유지해왔고 그 위에 장애인, 여성, 청소년, 이주민 등 정체성에 기반한 지역 활동들이 자리 잡고 있다. 기후정의운동은 각 지역 공동체가 가진 운동의 역량을 기반으로 거점을 세우고, 지역의 문제와 요구를 긴밀하게 연결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지역에서의 삶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지역민들의 투쟁은 우리 앞에 놓인 공통 과제이자, 공동의 전선(戰線)이다. 우리는 지역과 정체성을 뛰어넘는 끊임없는 연대를 통해서 지금의 폭력적인 체제를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강원 양수발전소 송전탑 백지화, 부산 원자력발전소 고리2호기 폐쇄와 가덕도 신공항 반대, 강릉 안인을 포함한 신규 화력발전소 반대, 제주 제2공항 반대, 청주 SK하이닉스 LNG발전소, 음성 LNG발전소와 산업단지 건설 반대, 그밖에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 지역 투쟁들이 연결돼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탈시설과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체계 마련을 위한 투쟁,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쟁취, SPC그룹의 노동착취와 노조파괴에 대한 투쟁,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파업, 충주 하나로택시 노동자의 파업 고용허가제와 외국인보호소 폐지, 공장식 축산 폐지 투쟁, 농민들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반대 투쟁이 각자의 이유에서, 하나의 투쟁으로 연결돼야 한다. 나아가 다른 국가의 운동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SNS, 해외 언론매체, 그리고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 해외 사회운동을 소개하는 몇 안 되는 플랫폼들이 있다.

작지만 촘촘하게 조직된 동네모임들이 세계적인 연대 의식을 갖고서 행동할 때 변화는 일어난다. 감사하게도 주변에 ‘운친’(운동 친구)들이 생겨나고 있다. 행동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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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견

    전에 등산모임에서도 부모님 해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분도 같은 예군요. 지금은 90년대보다
    부모님 해고의 예가 몇 백배는 늘어났겠네요.
    비정규직 시대라서.
    음성군도 단체들이 있군요. 정읍시도 있던데.
    그런데 기후운동은 예전 환경운동처럼 유행처럼 확산하다가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후위기가 석탄 석유와 같은 에너지에서 발생하는데 전기 태양광 같은 에너지로 전환하는 시대라서. 그래서 기후위기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보다 전쟁으로 인한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하고 핵심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될
    때는 기후운동이 반전운동과 닿아야 할 겁니다.
    님처럼 하다간 시민운동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을 겁니다.

  • 문경락

    종합적인 시각을 갖고 문제를 살펴야하며 여러 제반문제들도 무시하지 않으며 측정하고 그리고 관련단체들의 도덕성과 활정상황도 살펴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안드로메다

    글을 굉장히 잘 썼는데 이 정도 쓰는 것을 보면 서울대를 나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