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2라운드 돌입하는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기고] 끝나지 않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

선종록 일당이 벌인 한낮의 도피 행각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공대위 활동가들이 주식회사 케이오 대표이사 선종록과의 교섭을 촉구하며 서울 마곡동 본사 사무실에서 24시간 철야대기를 시작한 지 오늘로 16일째다.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2일, 사측은 소수의 인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 내근직과 현장직 10여 명과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대거 동원해 부리나케 짐을 뺐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사무실에 보관 중이던 각종 서류는 물론,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까지 빠짐없이 반출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전기기술자를 불러 사무실 전원공급도 완전 차단했고, 매립형 시스템 에어컨은 아예 통째로 들어냈다.

  지난 2022.7.2. 케이오 사측은 한낮에 사무실 집기와 인원을 어디론가 빼돌렸다. 사진은 마곡동 케이오 본사 사무실에 설치된 매립형 시스템 에어컨까지 사측이 뜯어내 나간 뒤의 모습 [출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사측의 백주대낮 도피 행각은 선종록 대표이사의 오른팔 격인 이주원 노무부장이 진두지휘했다. 노무부장은 본사 사무실에 머물고 있던 해고 노동자 곁으로 불쑥 다가와 “당사 마곡동 본사 사무실에 대한 귀 노조의 불법적인 점거로 인해 업무수행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며 퇴거요청서를 이날 오후 2시부터 3시반 사이 2차례에 걸쳐 내밀었다. 퇴거요청서 하단에는 지난 2년여 동안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선종록 대표이사의 이름과 직인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노무부장이 허공에 대고 읊조리듯 반복해 고지한 퇴거요청 이후 본사 사무실은 갑작스레 분주해졌다. 원래 본사 사무실에 상주하는 내근직 인원은 대표이사를 제외하면 네 명에 불과하지만, 사측은 7월 2일 ‘이사 작전’을 수행할 인원 여남은 명을 추려 오후 네 시경 현장에 급파했다. 행동대원들이 집결을 마치자마자 노무부장은 작전 수행을 명했고 고작 두 시간여 만에 사무실 집기 반출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케이오 본사 관계자들은 유유히 종적을 감추었다. 과거에도 기륭전자나 콜트악기처럼 기업 청산 과정에서 사업주가 야반도주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멀쩡히 경영을 지속하는 회사가 백주대낮에 해고 노동자를 버려둔 채 꽁무니를 뺐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부당해고 판정엔 불복, 대화 요구엔 불응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측의 태도는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도 케이오 사측은 고용노동부를 통해 ‘복직 당일 퇴직’안을 제시해 해고 노동자들을 우롱한 전력이 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눈엣가시 같은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현장에서 내몰았는데 이를 번복하는 결정은 추호도 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2020년 5월 11일 사측이 단행한 정리해고의 본질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뒤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부당해고라는 결론이 일관되게 나왔음에도, 케이오는 일말의 타협조차 한사코 거부해 왔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에 불복해 지체 없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지난해 1월에도 케이오는 한결같이 강경하고 단호했다. 자신들은 부당해고라는 사법적 판단에 도저히 승복할 수 없으니, 최종심에서 판가름을 내겠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측은 억만금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원직복직과 명예회복만큼은 기어이 막아설 작정이었다. 그래서 총액 1억 7천만 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는 것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고, 행정소송 법률대리인으로 거대로펌 김앤장 변호사들에게 막대한 수임계약료를 안겨주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의 초심, 재심 판정에 이어 지난해 8월 행정소송 1심 판결까지 사실상 3심에 걸쳐 케이오 사측의 부당해고가 인정됐다. 지난 6월 15일에는 행정소송 2심 재판이 시작되었고, 오는 9월 28일 선고기일이 잡힌 상황이다. 이변이 없는 한, 재판부의 판단은 이전과 동일할 것이다. 사측은 과연 그 점을 몰라서 이러는 것일까?

결국 케이오는 승패가 빤해 보이는 지형에서 ‘지는 싸움’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셈이다. 정년이 지났거나 얼마 남지 않은 해고 노동자들이 설령 법적으로 이기더라도, 회사는 항소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법원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가면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실효를 상실하게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돈과 시간은 언제나 가진 자의 편이었다. ‘민주적이고 대등한 노사관계’는 법전에 있는 좋은 말일 뿐, 최소한의 고용유지 노력도 하지 않은 기업의 부당해고 사건에 대한 당국의 제재 수단은 현실에서 이렇다 할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비용 줄이고 책임 흐리는 공항‧항공산업 외주화

각국 정부가 국경 봉쇄와 거리두기를 해제하면서 한동안 ‘시계(視界) 제로’였던 공항‧항공산업도 서서히 먹구름이 걷히고 있다. 지난 2년간 여객과 물자 수송에 심각한 타격이 있었음에도 공항‧항공산업이 가까스로 붕괴를 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기간산업안정기금과 고용유지지원금을 비롯한 정부 지원금이 국고에서 수십조 원 단위로 지출되었고, 공항 시설에 대한 이용료의 납부유예나 감면 등 세제혜택이 뒤따랐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항공기 기내 청소와 수하물 처리를 담당하는 케이오 역시 수혜 대상 업종이었지만, 사측은 어찌 된 영문인지 휴업수당의 최대 90%까지 정부가 재정보조를 하는 고용유지지원금제도를 의도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지상조업 2차 하청사인 케이오가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무기한 무급휴직과 정리해고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은 다름 아닌 ‘다단계 하도급 구조’ 덕분이다. 원청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시아나항공은 지상조업 전문 자회사 아시아나에어포트를 설립했고, 1차 하청 지위에 있는 아시아나에어포트는 지상조업 업무를 세분해 케이오, 케이알, 케이에이 등 2차 하청사에 또 다시 외주를 맡겼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케이오를 비롯한 이들 지상조업 2차 하청사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총수였던 박삼구 전 회장이 공익법인 금호문화재단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렇듯 오너 일가의 전횡을 통해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공항‧항공산업은 외주화의 온상이 되었다.

다단계 고용구조는 케이오 같은 2차 하청사들이 마른 걸레 쥐어짜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토대로 기능했다. 일감이 많을 땐 저임금‧장시간으로 노동자들을 실컷 부려먹다가,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들자 인력 구조조정 카드를 약삭빠르게 빼 든 것도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때 500여 명에 달했던 케이오의 현장직 인원은 현재 200명 남짓에 불과하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사업공간 및 장비를 턱없이 낮은 단가로 임대해 쓰는 케이오 등 지상조업 2차 하청사들은 사실상 인력파견업체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원청인 아시아나항공의 노무대행 역할을 한 것일 뿐, 도급업무 수행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기술이라든지 독립적인 업무 수행 역량을 전혀 갖추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계월 지부장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자.

“케이오 관리자 중에 ‘감독관’이라는 직책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 예를 들어 몇 번 게이트에 대기 중인 항공기 청소를 어느 조가 갈지 워키토키로 지시를 해요. 그러면 해당 조가 항공기 스케줄대로 정해진 시간 안에 기내 청소를 해야 하는 거예요. 업무를 마치고 나면 이제 ‘체커’라고 청소 상태를 점검하는 노동자가 승선해서 아시아나항공 기장이나 승무원한테 확인 서명을 받아서 서면 보고하는 시스템이에요.”


내용증명으로 복직 통보한 회사 속내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투쟁이 무려 80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세 명의 해고자들이 길 위에서 정년을 맞이했고, 일부 해고자들은 투쟁 장기화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복직 투쟁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단계 고용구조를 양산한 장본인 박삼구, 박세창 일가의 금호아시아나는 여전히 이 상황을 본체만체 하고 있고, ‘바지사장’ 선종록의 케이오는 시종일관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케이오 사측은 앞으로 1년이 더 소요될지 모를 기나긴 소송전을 포기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거듭 표명해 왔다. 지난 6월 9일에도 사측은 김계월 지부장 자택 주소로 내용증명을 송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당사자에게 전달했다.

1. 당사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회사의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로 인해 노사합의로 무급휴직, 희망퇴직 및 정리해고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2. 귀하가 2020년 5월 11일자로 정리해고 된 이후 회사는 노사합의문에 따라 무급휴직 및 희망퇴직 직원들을 복직시키고 있으며 귀하도 이번에 복직순서가 되어 통보드립니다.
3. 2022년 7월 18일에 원직복직하시기 바라며 공항출입증 발급에는 15일 이상 소요되오니 제반 복직절차 진행을 위하여 조속한 시일내로 회사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4. 그리고 해고기간 동안의 금전문제는 현재 진행중인 관련소송의 최종결론에 따라 해결할 예정입니다.

7월 13일 어렵사리 케이오 사측과의 교섭 자리가 성사됐지만, 이 같은 사측 입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해고기간 당사자들이 겪어 온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 요구, 정년이 지난 해고자의 명예회복 요구 등을 일언지하에 거부한 것이다.

해고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소박한 요구이다.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실상 법적 판단이 끝난 정리해고 사안에 대한 시간 끌기 식 항소를 이제라도 당장 취소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당해고로 인해 손상된 해고 노동자들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원상회복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 당연한 요구를 줄곧 외면해 온 원‧하청 자본과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 때문에 해고 노동자들은 장장 2년 2개월 동안 거리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투쟁 2라운드 돌입하는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비록 소수의 동지들이지만 아시아나케이오지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 왔다. 감염병 재난 상황을 앞세워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우선해고와 노동개악 압력에 맞서는 싸움이 바로 아시아나케이오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증진하는 유력한 토대인 민주노조를 지키는 싸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22.7.12.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진행된 투쟁문화제에서 해고자들이 '부당해고', '불법재고용', '노조탄압'이 적힌 상징물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이제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7월 18일 김계월 지부장의 원직복직은 민주노조를 재건하기 위해 현장투쟁으로 국면을 전환하는 제2라운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정년을 훌쩍 넘긴 기노진, 김하경 동지의 법적 투쟁 또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온전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자본의 소모품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 자랑스러운 민주노조의 이름을 되찾을 때까지 앞으로도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동지들의 선택이 후회로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끝까지 함께한다면 이 싸움은 이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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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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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하경

    자랑스런 민주노총 공항항만운송본부 KO지부해고자 김하경입니다. 멈추어 있는 것에 두려워 해야 한다. 역사는 천천히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에 누구나 두려워 한다. 법적인 문제가 아직은 남아있어서 물러설 수 없다. 승리할 그날까지 투쟁!

  • 임복석

    모든 일들은 순리와 법리에 맞아야하고 이를 어겨 타인에게 아픔을 준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하고 신속하게 조치하여 더 이상의 악행이 반복되지 않고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하는것이 국가의 책무입니다.

  • 힘내세요

    긴시간 악덕기업 케이오와 투쟁하시느라 고생이많으십니다 꼭 좋은결과 얻기를 기원드립니다 물방울로도 바위를 쪼개듯이 승리하리라! 화이팅!

  • 김도연

    긴긴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가족들까지 얼마나힘들었을까요?
    갑질이 무척 심하지요? 복지가 우선
    고객이우선 직원이 우선 부하직원 우선 인격이 살아있는기업 인권이 살아있는 기업이 되기를 희망하며..복직되는 그날위해
    해고자님들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셔요 정의는 살아있다 화이팅하셔요

  • 박한의

    부도덕한 기업과 긴시간 투쟁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꼭 좋은결과 얻기를 기원합니다.
    승리의 그 날이 오기를 화이팅 해요~

  • 헛짓거리

    무슨 찿을명예가 있다느건지..? 참 먹고사는길도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