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모범 단협안’이 세상에 나왔다

[여성, 노동의 기록]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은 노동자들의 일터를 바꾸고 권리를 향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권리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서 비제조업,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지난 2019년 25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내 성평등지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노동조합의 사업 의제를 확정하는 중요한 의결기구일수록 여성 대표성이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의원은 여성할당제 30%를 맞추고 있으나 중앙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로 갈수록 여성 대표성은 축소됐다. 특히 교섭위원에서 여성의 비율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성평등, 여성 의제가 단체협약의 주된 의제로 선정되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여성할당제에 따른 여성 임원의 비율은 성평등 조직문화와 성평등 의제를 포괄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었다.

각 산별 조직들의 상황도 다를 바 없었다. 남성 육아휴직은 공기업을 제외하고 민간 기업까지 확대되지 않았다. 성차별적 고용 관행은 교섭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성별 임금이 공지돼야 노동조합이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낼 수 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자료 접근이 어려워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비정규직 사업장에선 여성이 직접 교섭위원이 됐지만, 정규직 사업장일수록 여성이 교섭위원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눈앞에서 현실이 숫자로 펼쳐지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차별받는 여성 노동자를 위한 단협안이 필요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성평등 단협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연구·조사와 토론을 했고, 드디어 올해 3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성평등 모범단협안을 확정했다. 아직은 많이 비어있고, 어설플지 모르지만 변화와 발전을 위한 단단한 첫걸음을 내디딘 민주노총의 성평등 모범 단협안은 이렇다.

1.

보편적인 돌봄권 확보를 위해 출산 12개월 이내 모든 노동자의 육아휴직 1~3개월 사용보장과 통상임금 보장을 요구했다. 전체 노동자의 육아휴직이 늘어나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도 2020년 기준 24.5%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은 여성이 압도적이다.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아이의 생후 6개월 이내와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월등히 높다. 이는 여성이 출산 및 양육으로 겪는 경력 단절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에 아동돌봄계획을 다양하게 지원하면 여성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의견이 모였다. 추후 육아휴직 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육아기 단축 근로, 직장어린이집 설치 등 종합적인 돌봄 환경 개선 또한 요구된다.

2.

여성 노동자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협약을 요구했다. 임신기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 강화, 동일 노동 과정에서 특정 성에 무리한 노동환경인지를 따지는 성별영향평가 실시, 재생산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물질에 대한 노사 공동 영향 평가 실시, 정기 건강검진 시 여성 질환을 검진 항목으로 포함하고 업무 연관성을 확인, 성별 화장실 환경 개선 및 휴게실 설치개선, 기타 노동안전보건 환경 조사 시 여성 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실태를 알 수 있는 조사항목 포함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협약들은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 노동자의 몸과 안전에 대한 의제를 개발하고 대응하는 힘이 커질 수 있을 것이다.

3.

성평등 고용환경 개선을 위해 전체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합격자의 성별을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사유 없이 특정 성의 합격률이 상대 성의 합격률과 비교해 40%에 미치지 못하면, 그 원인을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또 교육, 훈련, 승진, 배치, 전환 전 과정에서 성별 통계를 내고 이를 노조와 공유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금융권과 제약회사, 제조업 등이 채용에서부터 성차별과 임금차별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과정의 성별 효과를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은폐된 성차별적 관행을 드러낼 수 있고, 성차별을 없애는 과정을 통해 일터 내 성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

4.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해당 제도 보고 과정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했다. 동시에 사업주가 보고 결과를 노동자에게 알리며 시행계획 작성 시 노동조합과 협의하고 추후 경과를 노동자에게 알리도록 요구했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여성 관리자 비율, 여성임원 비율이 최하위이고, 이에 따른 성별 임금 격차 역시 가장 크다. 특히 공공기관은 민간기업보다 여성 임원 비율이 낮아, 노동시장의 성평등 견인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민주노총 가맹사업장 대부분은 3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으로, 2022년 현재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적용대상이다.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발판인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다.

5.

성평등 임금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성평등 임금 모니터링’이란 사업주가 일정한 시일에 사업장 내 성별, 고용 형태별, 직무별 임금 현황을 공시하고 노동자가 임금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요청할 시 이에 응해야 하는 제도다. 성별 임금 격차는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 사업과 사업장의 성별, 고용 형태, 직무, 직급, 인종에 따른 임금 격차를 드러내 노동시장의 차별 원인이자 결과를 시정해나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연봉체결 과정에서 임금 비공개 관행이 있는 사업장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 아울러 임금 공시를 단체협상 조항으로 삽입해 임금에 따른 차별 기제를 드러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과정을 통해 성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차별 기제를 없애고자 했다.

6.

성평등감사위원회, 성평등본부 등 사업장 현황에 맞는 성평등 추진 기구를 구성하도록 했다. 기구 설치가 어려운 사업장은 이미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명예고용평등감독관을 임명하고 활동시간 보장, 명예고용평등감독관 운영 규정 등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현재 민주노총 사업장 내에선 성평등 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고충처리위원회와 인사위원회를 통해 각종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업장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련 법률(고평법)’에서 권고하는 명예고용평등감독관도 임명하지 않아 직장 내 성희롱 대응조차 미흡한 경우가 많다. 사업장 내 성평등고용위원회가 설치되는 것만으로도 성차별을 가시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제도화된 기구에서 여성과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되면 성평등의 실효성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6개에 불과한 항이지만 성평등 모범단협안을 실제 단협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우선, 교섭위원 구성 시 한 성이 6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인사위원회나 고충처리위원회 등 전 영역의 여성 조합원 참여 비율을 일정 이상 보장하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3년여의 준비 끝에 성평등 모범 단협안이 나왔지만, 여전히 산별의 단협 속 여성 조합원에 대한 내용은 ‘성폭력 예방 및 금지’, ‘남녀평등과 모성보호’ 등에 갇혀있다. 하지만 이제 민주노총 내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 주인이 돼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야, 일수도 있지만 드디어, 일수도 있다. 이제 자각한 여성 노동자가 대표로 나서 성평등 모범 단협안을 요구안으로 만들 것이고, 단협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걸음 또 나아갈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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