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일상이 여전히 재난인 이유

[코로나19 특별기획]

코로나19 보고서: 멀고 낮은 곳부터 파괴했다

차례

① 코로나 재택 치료 72시간,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② 코로나19의 정부, 차별과 배제를 더 넓게 더 깊게
③ 코로나19 이후, 국민은 ‘의료 인력·공공병원 확충’ 원한다
④ 간호사들은 왜 ‘사람 잡을까’ 공포에 떠나
⑤ 의료민영화 흐름 속 공공의료 확대 가능한가<1>
⑥ 의료민영화 흐름 속 공공의료 확대 가능한가<2>
⑦ 돌봄 노동자에게 감염병이 특히 버거웠던 이유
⑧ 이주민이 많은 도시, 차별은 같았다
⑨ 장애인의 일상이 여전히 재난인 이유
⑩ 전염병과 봉기, 혐오와 차별의 역사
⑪ 감염병은 ‘혐오’를 먹고 자랐다
⑫ 10명 중 6명 “코로나19 이후 혐오 표현 늘어”...‘사회적 양극화’ 때문
⑬ 감염병 시대, 처벌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⑭ 코로나19 대응, 시장 솔루션의 한계
⑮ 코로나19 2년,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들



확진 소식이 무더기로 들려온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은 무너진 지 오래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아프고, 두렵다. 코로나가 발발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이제 세상은 AC(After Corona)와 BC(BeforeCorona)로 나뉠 거라는 얘기1)가 무색하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 바뀐 것 하나. 국가는 방역을 포기했다.2)

메르스 때와도 달라진 것은 없다. 국가는 그때도 감염병에 대응하지 못했고, 지금도 못 하고 있다. 그때도 국가는 장애를 고려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메르스 당시,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대응 지침으로 장애인은 자가격리 상황에서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때는 반년 만에 매뉴얼이 나왔지만, 장애인 특성과 용어를 설명하는 수준이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대구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매뉴얼을 작성하고 1년 반이 지난 지난해 4월, 비로소 매뉴얼이 개정됐다.3) 하지만 지침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다.4)

2016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자가격리 상황에서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일과 관련해 ‘메르스 감염병 대응 관리에 대한 장애인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기자회견과 면담 요청도 20번 넘게 진행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작년 에야 복지부 담당자들이 법정에 참석했다. 2016년에 시작한 소송은 작년 9월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화해권고결정에서 법정이 제시한 내용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는 2016년 10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재판부를 통해 제기한 재발 방지 대책 즉, 장애인에게 적절한 감염병 예방 및 관리대책 수립 요구에 대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별다른 대안을 수립하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5)

코로나 첫 사망자는 장애인이었다. 42년 전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때도 첫 사망자는 장애인이었다. 4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에게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6) 여전히 국가는 국익이라는 이름 앞에서 장애인을 학살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T4 프로그램을 역사 속에서 꺼낸 이유다.7) 우린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운다. “소리 없이 죽어가기보다 차라리 욕의 무덤에 파묻히겠다”8)라며 지하철을 타는 이유다.

2020년 2월 청도대남병원의 사진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고, 자기가 본 소변을 스스로 치우는 모습.9) 게다가 좁은 방에서 침대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왔다는 사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너무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 모습은 장애인주거시설과 매우 닮아있었다.10)

“시설은 관리 효율이 극대화된 거주 공간”으로 “사회 표준에 불필요하다거나 미달한다고 여겨지는 동일한 특성을 보인 사람들을 한데 모아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관리 통제를 산출하는 운영 방식”이다.11) 정신병원에 의료급여 환자가 입원하면, 입원한 기간만큼 정해진 금액이 병원에 지급된다. 병원은 환자를 더 많이, 더 오래 받고, 서비스를 적게 제공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구조다. 실제로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정신질환자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정신질환자보다 의료서비스의 양도 적고 서비스의 질도 낮다.12)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지역사회에 정신보건센터를 짓고, 주거 공간이 마련되고,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신 병원을 폐쇄했다.13)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장애인 생존 예산을 비용의 문제로 외면하고 있다.14) 1939년에 시작된 T4프로그램을 선전하는 내용의 포스터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한 명의 장애인에게 매일 국가가 쓰는 돈 5.5RM”, “5.5RM으로 4인 가족이 살 수 있다.”15) 83년이 지난 한국에서는 여전히 T4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다.

정부의 기준은 예산이었고, 이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가 시설이었기에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시설이 있다. 코로나19 기간 취약계층 대응도 항상 시설이 기준이었다. 노인은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장애인은 장애인 주거시설을 중심으로. 예방접종에선 입소자들을 항상 우선순위로 올렸지만, 막상 확진되면 별도 공간 마련을 위한 긴급분산도 하지 않았다.


지자체가 선도적으로 주도한 대응은 코호트 격리뿐이었다. 코호트 격리는 시설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사회와 단절되어 있기에 손쉽게 격리 조처를 내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예방적’ 코호트 격리라는 명목으로 출입과 면회를 금지했다. 하지만, 100인 이상 대규모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장애인 2명 중 1명이 확진됐고, 전체 장애인 거주시설의 확진율은 전체 확진자 비율을 웃돌았다.16) 출입을 금지당한 입소자의 감염률이 종사자보다 1.5배에서 2배가량 높았다.17) 이 조치는 시설 안에 있는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조치가 아니다. 사회를 보호하는 조치다. 국가가 시행한 거리두기의 대상은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의 치명률은 전체 인구의 열 배 이상이었다. 위중증 환자·사망자 4명 중 1명이 장애인임에도18) 장애인은 고위험군, 집중관리군, PCR 우선순위 대상 그 어느 것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유일한 장애인 전담 병상은 국립재활원에 16개뿐이었다.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에 대한 ‘방문 접종 등 대상자 특성에 따른 계획’을 발표했으나19) 실제로 방문접종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20) 긴급돌봄을 시행한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공적 돌봄 체계가 작동되지 않아 장애인들은 돌봄 공백 속에 방치됐다.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인력을 동원해 차량 목적지까지 이동 지원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2월 22일 오전 10시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쓰러진 한 중증 시각장애인은 사망하고 나서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중앙정부에 비해 적극적으로 코로나19 방역에 대처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있다. 대구시는 올해 2월 정부에 앞서 장애인에게 자가진단키트를 배부하고, 자가격리·확진 장애인 24시간 활동 지원과 함께 위험보상비를 10만 원으로 인상했다. 광주시는 핫라인을 구축하고, 민관 TF팀 구성, 코로나 관련 장애인 전담 상담 창구 마련, 이동지원 확대, 중증장애인 입원 병상 확보, 중증장애인 자가진단키트 구입비 지원 등 장애인에 대해 집중관리군에 준하는 관리 조치를 했다. 이 과정에는 공공의 역량 부족에 따른 돌봄·의료 공백으로 고통 속에 놓인 수많은 장애인이 있었다. 방역복을 입고 투입된 수많은 활동가가 있었다.21) 그 사이 보건소·의원·병원 그 어느 곳에서도 지원받지 못하고 죽은 장애인이 있었다. 그리고 울분과 분노로 지자체와 싸운 지역 장애인 단체들의 투쟁이 있었다. 전장연이 코로나가 잠시 멈추는 동안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를 살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를 살려주는 것은 국가도, 의사도 아니었다. 우리의 투쟁 뿐이었다.

우리는 지난 5월 4일 열린 제약산업육성지원위원회에 복지부 장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22) 앞서 기자회견도 열고, 성명도 내고, 공문도 보내고 면담요청도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보낸 공문과 함께 요구안을 전달했다. 장관은 일단 회의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회의가 끝나고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중앙사고수습본부(중대본) 차원에서 복지부 관련 부서와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이 함께 협의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동안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의료자원가동의 권한이 없는 장애인정책과로 이관됐다. 장애인정책과에서 세운 모든 대책은 현장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광주시와 같이 장애인 돌봄·의료 인프라를 전국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했다.

2개월이 지난 7월 5일에야 정부세종청사에서 면담을 진행했다. 세종시까지 힘들게 찾아갔지만, 들을 수 있는 답변은 복지부와 질병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도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뿐이었다. 현행 제도 브리핑에 불과했다. 복지부는 방역이 완화되고 일상 의료체계로 전환됐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팬데믹이 다시 도래했을 때,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복지부는 장애인 확진자는 증상 악화 시 입원할 수 있으며, 차별 없이 병상을 배정하고 있고, PCR, 신속항원검사 등 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접근성이 많이 향상됐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죽음은 왜 일어났는가. 얼마나 현실을 모르는지를 스스로 드러냈다.

현실을 모른다면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전장연은 방역 당국에 ▵장애인 감염병 대응 민관 테스크포스(TF) 구성 ▵‘일반 의료체계’에서 지원받을 수 없는 장애인에 대한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 ▵법적 근거가 있는 단계별 장애인 감염병 대응 지침 마련 ▵코로나19 고위험군 인정 등의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추가로 전달했다.23) 복지부는 지난 7월 8일 재유행을 공식 선언했다.24) 재유행 이전 여유가 있었을 때, 복지부와 질병청은 의료자원 현황을 파악해 부족하면 늘리고,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대응체계를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다시 재난을 일상으로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재난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전장연은 중증장애인에 대한 포괄적 재난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요구안 외에도 장애인 의료접근성 보장을 위한 정책요구안을 전달했다. 그 이유는 재난지원체계가 마련되지 못하는 것은 기존의 불평등이 심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률은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낮으며, 중증장애인은 그 격차가 훨씬 크다.25) 장애인의 의료 미충족률은 32.4%다.26)

선별진료소인 보건소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낮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화 대상인 의원은 2018년 기준 전체의 6.3%에 해당한다.27) 장애계의 오랜 요구 끝에 늦게나마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대한 편의시설 정보가 공개됐지만, 619곳 중 160곳만이 표기돼 있었다. 거의 모든 선별진료소가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임에도 편의시설이 없다고 표기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장애인은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웠고, 진단받고 치료받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된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은 실패했다. 사업 대상인 중증장애인의 이용률은 0.1%. 애초에 의료기관들이 주치의로 참여하지 않을뿐더러, 장애인 주치의마저 장애인 진료를 거부한 결과다. 지난해 4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함께 장애인당사자 신청 운동을 펼친 결과,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곳 중 무려 70%(62개소)가 장애인의 건강주치의 사업 내원 상담을 거부하거나 사업을 중단했다.28)

장애인과 관련한 문제가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고 장애인정책과로 이관되듯, 장애인의 건강에 대한 정책은 재활 의료 중심으로 이뤄진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건강권법)은 ‘장애 친화 의료’ 및 ‘인권 의료’ 대신 ‘재활 의료’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국립중앙의료원이 아닌, 국립재활원이다.29) 그동안 장애인에게 의료는 재활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었다.

의료는 장애라는 정체성의 병리화를 통해 차별·배제하는 방식으로 본인들의 의료 권력을 작동해왔다. 의료는 장애 자체를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본다. 비장애인 환자가 아플 때 일정 정도의 사회참여 제한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장애인은 장애를 ‘앓기’ 때문에 사회참여를 제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특히 중증 장애 자체를 심한 불건강, 질병으로 보고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중증 장애인이 시설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애계는 장애를 손상이나 질병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는 의료(재활) 모델을 거부하고, 장애는 사회에 의해 발생한다며 사회 모델에 따라 변화를 요구해 왔다.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보조기기가 충분히 지원되지 않고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는 이유는 일할 수 없는 몸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를 하나의 정상 규범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30)

건강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의 불건강은 장애를 유발한 ‘손상’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이 손상을 ‘재활’시켜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에서의 장애인 건강 서사였다. 하지만 “건강관리에 대한 의료의 독점은 한 번도 점검되지 않고 확대됐고, 우리들의 몸에 관한 자유를 침해”했다. 그리고 “사회는 무엇이 질병을 구성하고 있는가, 누가 환자이고 환자일 수 있는가, 환자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배타적인 권리를 의사에게 양도하고 말았다.”31)

특히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크고 작은 폭력은 식민주의·전쟁·냉전 체제·신자유주의 속에서 국가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큰 전제하에 구성원의 근대적 표준과 수월성을 상정하고 그에 맞춰 통치 구조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정당화”됐으며,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발전하는 민족과 국가의 예외적인 존재가 됐고, 재활과 치유를 위해 구획된 공간 속에서만 머물러야 했다.”32)

그 공간이 바로 장애인 주거시설과 병원이다. 장애인에게 이 시설들은 재활을 위해 존재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의학의 한 하위 분과로서 재활의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재활의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은 하워드 A. 러스크 박사다. 미 공군 군의관이었던 그가 상이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회복 프로그램에 기초해 뉴욕대학병원에 최초의 재활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 1948년의 일이다. (…) 이러한 역사는 손상된 노동력 상품의 복원이라는 재활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33)

지난 7월 6일 전장연이 공유한 만평이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사회는 우영우의 대사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라는 말에는 “장애인도 함께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장애인의 몸이 구획된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로 나왔을 때는 “불편해”한다. 예외적인 존재가 사회에 드러난 순간, 그 사회는 그 존재를 다시 비가시화한다. 직접행동에 대한 폴리스라인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둘러싸지만, 사실은 그 존재를 보이지 않게 하고 일상을 ‘원래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병원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코호트 격리는 재난의 상황에서 일어난 특수한 일이 아니라, 장애인의 일상이다.

“푸코는 근대 이전의 군주가 지닌 고전적 주권이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었다면, 근대 국가가 인민에게 행사하는 생사여탈권은 반대로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으로 그 성격이 변모해 왔다고 말하면서 이를 생명권력(biopower)이라 지칭했다.”34) 국가는 살릴 생명과 그렇지 않아도 될 생명을 선별했고, 의료는 항상 그 선별의 도구였다. 한센인을 치료하고 재활시킨다는 명목으로 격리수용한 애양원, 그리고 그들을 가둔 섬 소록도는 근대 의료가 생명을 선별하는 도구로 작동하며 그들의 권력을 쟁취해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 소록도를 안내해준 한센병 환자인 강선봉 선생은 “우리나라 세종대왕이 얼마나 한글을 잘 만들어도 그렇지 ‘한센인’이 뭐냐”고 했다. ‘한센’은 한센병균을 발견한 의사 이름이다. 한의학 용어인 ‘나병(癩病)’, 순우리말 ‘문둥병’은 그동안 두려움과 혐오의 표현이었다. 그렇기에 인권운동의 결과로 ‘한센인’이라는 용어로 이들의 인권증진을 도모하는 법을 제정했다.35) 하지만 단어가 드러내듯, 여전히 사회는 한센인들의 삶을 얘기하기보다는 질병의 치료과정과 선도사의 선의만을 조명한다. 애양원에도 치료와 선교만 남고 ‘한센인’의 삶은 없었다.

원래 조선시대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천형’이라는 한센병의 이미지는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고, 일제가 강화했다.36) 이러한 과정은 세균설이 가장 강력한 의료 패러다임으로 등극한 근대 의료체계가 자리 잡으면서다. 의료의 목표는 증상이 아니라, 세균의 유무로 옮겨갔고 몸은 돌볼 대상에서 통제해야 할 매개체로 격하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격리 증상을 경감시키거나 초점을 맞춘 치료는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초기 환자의 경우에는 완치하기도 했으나, 세균의 유무를 완치 기준으로 삼았던 소록도에서는 완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퇴원자도 극히 드물었다.37) 1916년 강제격리제도의 도입, 소록도 자혜의원의 설립과 함께 식민지 조선에는 부랑 한센병환자들이 급증하게 됐다.38) 소록도나 애양원에 격리된 이들은 단종 및 낙태 수술, 인공 관절 수술을 강요받았다.

소록도 수용 사례는 근대 의학이 어떻게 특정 정체성을 병리화함으로써 본인의 권력을 갖추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기 격리와 선별은 더욱 극명하게 이뤄졌다. 그 결과, 장애인은 시설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의원, 병원, 보건소 그 어디에서도 의료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39)

“미셸 푸코가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라고 불렀던 곳, 마치 좌우를 바꿔 보여주는 거울처럼 사회의 여러 공간과 배치를 비춰주면서 동시에 뒤집혀 있는 공간.”40) 병원이 바로 헤테로토피아다.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없고, 병원에 갈 수 없어 진료 받지 못하고, 가더라도 병원의 경영에 따라 진료가 결정되는 현실이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patient’는 ‘참고 기다리는’을 의미하는 형용사이자, ‘수동자’를 의미하는 명사이기도 하다. 즉 근대 의학은 환자를 의사의 판단과 결정을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 자로 만들었다.”41) 장애인은 장애를 등록하는 과정에서부터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을 받는 과정까지 모두 의사의 판단과 결정을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따라야 하는 계층이다. 우린 이제 의료권력에 박탈당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장애인의 일상이 여전히 재난인 이유, 그것은 의료가 우리의 정체성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각주]

1) Our New Historical Divide: B.C. and A.C. — the World Before Corona and the World After, The new york times
2)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국가주도의 방역 포기’? 중세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2022.7.21
3) <더인디고>, “대구장차연, 민간 최초 코로나19 대응 매뉴얼 기초자료 발간” 2020.8.27
4) JTBC, “[밀착카메라] "집에 가고 싶어"...확진 장애인 아내의 '마지막 5일’” 2022.4.26
5) 국가인권위원회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애인 인권 피해사례 조사” (2021)
6) <비마이너> “광주항쟁 41주년 ‘장애인에게 민주주의는 없었다’ 금남로사거리 점거” 2021.5.18
7)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유튜브, “[선전] 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06.30-07.01)”
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 장애인권리예산 온라인 설명회 “기획재정부 한국판 T4 프로그램 고발한다!”
9) <시사인>, “청도대남병원이 이토록 방치되기까지” 2020.3.19
10) KBS, “‘한 방에 7명 ‘다닥다닥’...코로나 취약 장애인거주시설” 2022.5.17
11) 《나, 함께 산다》, (서중원, 오월의봄, 2018)
12) (재)한국병원경영연구원 건강증진사업지원단, “정신과 병·의원 의료급여 실태조사 - 수가체계 및 제도 개선방안” (2007)
13) <내일신문>, “정신질환자 치료, 지역이 더 효과” 2019.11.4
1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보도자료] 장애인권리예산 설명회 <기획재정부 한국판T4 프로그램 고발한다>” 2022.7.21
15)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유튜브, “[선전] 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 (06.30-07.01)”
16)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보도자료] 100인 이상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장애인 2명 중 1명 코로나 확진됐다” 2022.5.16
17) 보건복지부, “장애인거주시설 코로나19 관련 대응 방안” 2020.2.24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2021년 2월 25일 기준 거주시설 코로나19 확진 통계
18) 장혜영 의원실, “[보도자료]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사망자 4명 중 1명이 장애인” 2022.5.27
19)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7-9월 중 18세 이상 국민 1차접종 완료” 2021.6.17
20)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18-49세 예방접종, 8월 17일(우선접종), 26일(일반인구)부터 시행” 2021.7.30
21) 다큐멘터리 ‘감염병의무게’, (장호경, 2020)
22) <비마이너>, “전장연, ‘코로나19 장애인 전담 의료체계’ 요구하며 회의장 기습점거” 2022.5.4
2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명서] 우리의 일상은 재난이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은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장애인 감염병 원스톱지원체계 수립하라!” 2022.7.12
24)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 2022.7.8
25)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장애인 건강 이슈 통계로 말하다!” 2022.4.20
26) 보건복지부,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27) 보건복지부, “2018년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전수조사”
28) <비마이너>, “이용자 0.1%, 유명무실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개선방안은?” 2021.9.2
29)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30) <경향신문>, “‘언네서세리아트 시대’의 노동” 2021.1.2
31) 《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반 일리치. 미토, 2004)
32)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김은정. 후마니타스. 2022)
33)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2019)
34)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미류·서보경·고금숙·박정훈·최현숙·김도현·이길보라·이향규·김산하·채효정, 창비, 2021)
35)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
36) 정근식, “한국에서 근대적 나(癩)구료의 형성”, 《보건과 사회과학》(1997)
37) 김재형, “보건당국의 신체 및 사회에 대한 무균화 기획과 질병 낙인의 지속 ― 한센병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2022)
38) 정근식, “한센인의 격리와 낙인·차별에 관한 연구”(2019)
39) JTBC, “[밀착카메라] "집에 가고 싶어"...확진 장애인 아내의 '마지막 5일’” 2022.4.26
40)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미류·서보경·고금숙·박정훈·최현숙·김도현·이길보라·이향규·김산하·채효정, 창비, 2021)
41) <경향신문>, “장애와 질병이라는 ‘범주’” 20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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