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재난이다”…폭우참사에 대한 정부 규탄 쏟아져

168개 단체, 주거취약계층·장애인·노동자 등 희생자 위한 추모주간 시작


지난주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피해가 주거취약계층에 집중되며, 이를 ‘사회적 참사’로 명명하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는 기초생활수급자, 발달장애인, 저임금 노동자 및 그 가족들이 목숨을 잃는 와중에도 실효성 없고 근시안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16일부터 23일까지 폭우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위한 일주일간의 추모주간행동을 선포하고 기후재난 근본대응과 불평등사회 대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너머서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168개 단체는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폭우참사는 재난 예방책도, 취약 계층에 대한 구조 의지도 없는 정부와 서울시의 무책임 속에 벌어진 사회적 참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폭우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사과, 재발방지, 사회적 대책을 촉구한다”라고 추모 주간의 목적을 밝혔다.

지난 8일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서 참변을 당한 일가족의 이야기는 발달장애인과 빈곤층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였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 간부였던 홍 모 씨와 그의 10대 딸, 발달장애인 자매가 사망한 이 사건을 두고 “재난의 위험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따라 아래로 흘러 약한 곳을 덮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조합원이자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홍 모 씨 가족의 참사를 설명하며 정부의 무능을 규탄했다. 강 위원장은 “함께 활동했던 네 명의 노조 전임자가 신림동 집으로 쫓아갔을 땐 이미 천장 밑 한 뼘 남짓한 곳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다. 동료들은 절규하면서 소중한 생명을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시각 대통령은 뭘 했나. 최고 비싼 고층 아파트에 머물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낮부터 폭우가 예고돼 있어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밤 12시가 지나서야 첫 번째 메시지를 발표했을 뿐이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다음날 신림동에 직접 찾아와선 딱 두 마디를 했다. ‘주무시다 돌아가셨구나’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왜 미리 대피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침수된 신림동 주택을 배경으로 카드뉴스를 제작해 대통령이 열심히 뛰고 있다고 알렸다. 무책임하고 무지하고 무논리하다. 현재의 대한민국 민낯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무정부 상태다”라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된 장례에도 대통령실, 서울시, 국민의힘 관계자 누구 하나 문상하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정치인들은 오로지 언론 앞에서 보여주기식의 대책을 발표하고, 사진만 잘 나오면 된다는 식의 망발을 일삼는 일밖에 하지 않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지난 8일, 또 다른 50대 장애인 여성이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목숨을 잃은 일도 주거취약계층의 실태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재앙 때마다 대한민국의 최약체들이 희생되고, 희생자 중엔 늘 중증 장애인들이 있다”라며 “정부는 장애인들을 보살피지 않고 가족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고 있고, 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대표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지하로,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장애인 주거권 보장을 미루고 있는 정부를 규탄했다. 권 대표는 “장애인들은 21년 동안 권리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정부자 권력자들은 ‘검토하겠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돈이 없다고 하는데 지난 5년 동안 40조 원의 부자감세가 이뤄졌다”라고 꼬집었다.

정록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은 “불평등이 기후위기의 원인”이라며 “기후재난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과도한 자원 착취로 인한 생태계 파괴”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록 집행위원장은 “기업은 끊임없는 이윤 추구로 자본을 축적해 성장하고, 권력까지 손에 쥐려 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새로운 돈벌이가 생겼다고 반색하는 기업에 기후위기는 기회이지만, 일터에서 쫓겨나는 노동자와 농어민에게 기후위기는 재난이 된다”라며 오는 9월 24일 광화문에서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직접 행동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기후정의동맹이 제안하는 ‘9.24 기후정의행진’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녹색성장이나 시장주의적 대응책으로는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나아가 개인이 겪는 수많은 위기와 문제들을 체제의 문제로 인식하고, 체제 전환을 주장한다.

“지하가구 없애겠다? 미봉책에 불과”

이날 기자회견에선 주거취약계층 전반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충이라는 큰 방향의 과제가 제시됐다.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거주가구에 대한 주거 상향을 확대하겠다고 나섰지만,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물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서울시는 15일 노후 임대주택 재건축 등을 통해 약 23만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물량면에서도, 기존 임대주택 거주자들의 주거권 보장 측면에서도 적절한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한계도 예상된다. 서울시는 기존 주거용 지하·반지하에 대해 10~20년의 장기 유예기간을 설정해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하지만 강행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현재 주택 정책을 유지하면서 지하 주택을 없앤다면 도심의 저렴한 주택을 찾아 지하·반지하 거주자들이 더욱 열악한 주거로 내몰릴 위험도 있다.

주거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이강훈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는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지하주택 거주자들만을 위한 대책은 있을 수 없다”라며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합심해서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대책을 내놔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지하·반지하에 사는 가구수가 32만 가구에 달하고, 또 많은 가구가 주택이 아닌 집에서 살고 있다. 지하 가구를 지상으로 옮기면 지상에 있는 일반주택에 거주하고 있지 못한 가구들에 연쇄적으로 피해가 갈 수 있다”라며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대책인데 정부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대책을 남발하고 있다. 우선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출처: 비마이너]

김윤영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활동가 역시 “정부가 문제에 대한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대책을 내놓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윤영 활동가는 “이번 수해 참사를 보며 가장 황망함을 느낀 부분은 사망자가 발생한 가구 안에 모두 기초생활 수급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라며 “현행 주거급여법상 기초생활수급가구를 대상으로 주택 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주택의 안전성, 방수, 단열 등의 사항, 비주택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같은 정보를 활용해 주택 상향 의무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제 와서 갑자기 주거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어떤 실효성이 있을까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출처: 비마이너]

한편, 이날 기자회견엔 발달장애인, 빈곤층 노동자 등 당사자와 활동가, 연대 시민 등 100여 명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시의회 앞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해 추모 행동이 대중적으로 확대되도록 했다. 오는 19일 저녁엔 분향소 앞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추모주간이 끝나는 23일엔 정부와 서울시를 상대로 구체적인 정책들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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