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3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조를 개정해 원청 사용자가 하청노동자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 노조법 3조를 개정해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금지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투쟁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투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원인에는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과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현행 노조법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용자들이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소)을 노조 탄압의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는 사망 사고가 발생한 설비를 멈춰 세운 노동자들에게도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있었다.
기자회견에서는 손배소를 당한 노동자들이 증언에 나섰다. 작업중지권을 발동했단 이유로 9천만 원의 손해배상액이 청구된 금속노조 대전충남지부 한국타이어지회의 정동호 수석부지회장은 해당 설비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2020년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것과 같은 설비가 평소보다 빠르게 돌고, 사람이 가까이 가면 멈추도록 설계된 센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면서 “언제라도 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지회 임원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하게 기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러한 정당한 노동조합의 노동안전 활동을 두고 황당하다는 소리를 하면서 노동자 개인에게 1년 치 연봉도 넘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운송비 정상화·해고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임금 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대우조선 사내 하청노동자에겐 각각 55억 원, 470억 원의 손배소가 제기됐다. 불법파견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인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5억8천만 원이 청구된 바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 반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청구된 90억 원의 손해배상 문제는 13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수백 번 죽었다 살아나도 못 갚을 돈”
고용승계와 관련한 노사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14일째 단식농성 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회사가 470억 원이라는 죽었다 살아나기를 수백 번을 해도 갚을 수 없는 돈을 청구했다”면서 이는 “민법 조항을 갖고 법의 기본인 헌법을 유명무실하게 하는 법의 쿠데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진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대전지역본부 하이트진로지부 부지부장은 “화물노동자들에게 파업 투쟁은 정말 마지막 수단이다. 파업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빚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지금의 노조법은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막대한 손해배상을 합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다가 손배소 확정판결을 받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제 개인 계좌는 모두 압류돼 있다. 개인의 삶이 철저히 파괴되는 것을 느꼈다”면서 “어떤 방법으로도 갚을 수 없는 돈이다. 그래서 사용자가 손배소를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투쟁을 손배로 족쇄 채우는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손해배상제도의 개선 방안에 대해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 원장은 “악질적인 손배·가압류의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는 단체교섭 대상과 쟁의행위 대상 및 목적을 확대하고 직접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 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도 법적 쟁송 없이 노조법상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해 노조법의 보호 범위 내로 포섭하는 방향의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이것이 헌법 정신과 ILO 기준에 맞게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확대하고,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는 입법의 첫 출발이자 필수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이 광고탑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강남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원청 사용자성 인정! 손배가압류 철회! 노조법 개정! 하이트진로 투쟁 승리!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