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규모 철도 파업, “노동계급이 돌아왔다”

[이슈] ‘노조 혐오’를 넘어 대규모 공공부문 파업 물결로


[출처: RMT]

2022년 6월 15일, 철도 파업 관련 영국 의회 회의록

그랜트 샵스(교통부 장관)
3일간 파업을 벌이기로 한 철도노조의 결정을 규탄합니다. 이 파업은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과 노동자, 그리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이 늘었습니다. 철도는 승객과 수입의 약 5분의 1을 잃었습니다. 대부분의 승객이 집에 머무를 때도 정부는 계속 철도를 운행했습니다. 코로나19 기간 160억 파운드를 투입해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열차를 관리하고, 철도 노동자를 보호했습니다. 그 결과 열차는 계속 운행했고, 산업은 살아남았으며, 한 명의 철도 노동자도 해고되거나 실직하지 않았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160억 파운드가 납세자의 돈이라는 것입니다. 철도노조에 파업 조치를 재고하고, 업계와 논의를 이어갈 것을 촉구합니다.

제레미 코빈(노동당)
장관의 말처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투입된 돈으로 철도 시스템이 유지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가 이를 위해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왜 철도 시스템 유지를 위해 어려운 일을 해온 노동자들을 일자리 축소와 불충분한 임금 등으로 처벌합니까? 오히려 철도의 상황에 대해 노조 대표와 이야기하고, 미래를 위해 효율적이고 안전한 철도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노조와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랜트 샵스(교통부 장관)
팬데믹 기간 납세자의 돈으로 일해온 철도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저는 그들의 부적절한 급여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열차 운전사의 평균 임금은 59,000파운드이며, 철도 부문의 평균 임금은 44,000파운드입니다. 저는 여기서 간호사의 평균 임금이 31,000파운드, 간병인은 21,000파운드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철도 부문의 평균 임금은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훨씬 높습니다. 철도 부문의 임금은 지난 10년간 다른 국가보다 훨씬 빠르게 인상됐습니다. 열차 운전사의 임금은 39% 인상됐지만, 경찰관은 7%, 간호사는 16%가 인상됐습니다.

스티브 해먼드(보수당)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번 파업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복되고 있는 자신감이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상황을 봤을 때 파업이 일어나선 안 되는 시기입니다.

그랜트 샵스(교통부 장관)
맞습니다. 관련 논의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파업하면 임금 동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부추기며 파업 투표를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공공부문에서 임금 동결이 이뤄졌지만, 지금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노동당은 이번 파업이 무의미하고 역효과만 낸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릴리안 그린우드(노동당)
이러한 혼란 때문에 장관은 오늘 토론을 소집하기 전에 분쟁 해결을 위한 조치를 먼저 취했어야 합니다. 장관이 이를 위해 노동조합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ACAS(자문·알선·중재위원회)를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지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까?

그랜트 샵스(교통부 장관)
노동당 대표는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중요할 때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해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RMT(National Union of Rail, Maritime and Transport Workers, 영국 철도해운노조)의 믹 린치 사무총장은 지난달에 “나는 보수당 정부와 협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펠리시티 뷰찬(보수당)
사디크 칸(노동당) 런던 시장은 무파업 공약으로 당선됐습니다. 선거 기간 “파업은 궁극적으로 실패의 신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런던에선 52일째 지하철 파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랜트 샵스(교통부 장관)
맞습니다. 우리는 런던 교통국에 50억 파운드를 지원했지만 필요한 수준의 절감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TfL(Transport for London, 런던교통공사)는 그런 것에 뒤처져 있습니다. 우리는 간호사, 교사, 경찰관 및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훨씬 초과하는 철도 부문의 임금을 계속 인상할 수 없습니다.


30년 만에 일어난 영국의 대규모 철도 파업

“납세자의 돈으로 보수당의 반노조 의제를 충족시키고 노조파괴를 노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노조의 쟁의행위로 철도회사는 한 푼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철도회사는 분쟁을 해결할 동기가 없습니다. 이는 분쟁이 무기한 장기화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믹 린치(Mick Lynch) 영국 철도해운노조(RMT) 사무총장은 8월 18일 철도 파업을 앞두고 보수당 정부를 향해 이처럼 경고했다. 그는 철도 노동자들이 납세자의 돈으로 파업을 벌인다고 선전하는 그랜트 샵스 교통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1억 2천만 파운드 이상의 납세자의 돈이 파업에 따른 민간 열차 회사의 손실을 구제하는 데 사용됐다”라며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은 정부가 철도 노동자들과 이념 전쟁을 벌이는 대신, 협상을 통해 공정하게 해결하길 바라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RMT는 1990년 전국 철도노조와 전국 선원노조가 합병해 결성된 노조다. 철도와 해상을 비롯해 운송 산업 부문 전반의 약 8만 3,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가입해 있다. 영국 최대의 운송 노동조합 중 하나로, 영국 전역에 200개 지부와 11개 지역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RMT]

RMT 소속 철도 노동자들은 지난 5월, 파업 찬반 투표에서 8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했다. 이들은 파업 찬반투표에 앞서 회사와 급여 인상 및 인력 감축과 강제 해고 금지에 대해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믹 린치 사무총장은 “철도 노동자들은 끔찍한 대우를 받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협상하려고 노력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은 철도 산업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라며 “노조는 이제 철도 시스템을 멈출 지속적인 쟁의행위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조는 지난 6월 21일과 23일, 25일 3일간의 파업에 돌입했다. 영국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과 런던 지하철(London Underground)을 비롯한 영국 13개 열차 운영 회사에서 약 5만 명의 철도 노동자가 24시간 파업에 참여하면서 영국 철도의 80%가 멈춰 섰다. 이는 1989년 6주간 이어졌던 전국 철도노조 파업 이후 30년 만에 단행된 대규모 파업이었다. 6월에 치러진 3일간의 파업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철도기관사노조(ASLEF)가 7월 30일 24시간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에도 RMT 등의 노조가 8월 18일과 19일, 20일에 걸쳐 24시간 파업을 이어갔다. 이날 파업으로 철도의 75%가 운행을 멈췄으며, 노선 절반이 폐쇄됐다.

영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철도파업은 공공부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19일에는 런던 철도노조와 함께 런던 유나이티드 버스 노동자 1,600명도 연대 파업에 돌입했다. 영국 최대 컨테이너 항구인 펠릭스스토우 노동자들도 21일부터 8일간 파업을 벌였다. 영국 로열메일의 우편 노동자들도 8월 26일 파업을 시작으로 31일과 9월 8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믹 린치 사무총장은 17일 밤 런던에서 열린 집회에서 “노동 계급이 돌아왔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기를 거부한다”라며 “우리가 함께 싸우면 이 사회에서 막을 수 없는 힘이 된다”라고 밝혔다. 철도 파업 날인 18일에는 “영국이 경제의 모든 부분을 강타하는 파업의 물결로 멈출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영국 철도 노동자, 혐오 선동과의 싸움

영국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경제 위기와 살인적 물가 인상에도 노동자 임금은 삭감되는 반면, 자본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기준, 영국의 소비자 물가는 9%가 상승했다. 영국 은행들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올해 말까지 소비자 물가가 11% 이상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노동자의 임금은 지난 2년간 동결 상태였다. 노조는 올해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7%의 임금 인상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철도 회사는 정부의 허가 없이 2% 이상의 임금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와 언론은 ‘귀족 노조’ 프레임으로 철도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영국의 교통부 장관 그랜트 샵스는 의회와 언론 등에 철도 노동자의 임금이 지난 10년간 40%가량 인상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철도 부문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44,000파운드로, 영국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높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정부가 발표한 수치는 현재 임금 인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청소노동자 등 저임금 노동자를 포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조합원 평균 임금은 약 33,000파운드가량이다.

10년간 40%의 임금 인상 주장도 왜곡된 수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에 따르면, 철도 노동자 임금은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24%가량 인상됐다. 해당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약 20%가 올랐다. 심지어 코로나19에 따른 승객 감소와 수익 저하로 노동자 임금은 동결됐지만, 철도 회사는 천문학적 이익을 벌어들였다. 노조는 지난해 승객 수가 사상 최저 수준이었을 당시, 철도 회사는 6억 4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출처: RMT]

철도 파업을 둘러싼 또 다른 최대 쟁점은 강제 해고와 인력 감축을 포함하는 ‘현대화 프로그램’이다. 영국 철도운영회사연합인 내셔널 레일(National Rail)이 제안한 해당 프로그램은, 향후 20억 파운드 절감을 목표로 약 2,500개의 철도 유지보수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노조는 이 같은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해고가 철도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한 강공책으로 노조의 파업을 저지하고 나섰다. 영국 정부는 파업 기간 대체 근로를 위한 임시 파견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 개정에 착수했다. 이전까지는 파업 기간 대체 근로에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해야 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상한액도 기존 25만 파운드에서 100만 파운드로 인상키로 했다. 그랜트 샵스 교통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철도 파업은) 시대에 뒤떨어진 계급 전쟁”이라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노조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공룡들”이라며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영국 국민은 정부의 철도 운영에 오랫동안 불신을 가져왔다. 영국의 철도는 1994년부터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 선로와 기반 시설, 여객 운영 등이 민간에 넘어가거나 경매에 부쳐졌다. 기업 간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요금은 낮추고, 정부 보조금을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독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주주 배당금을 높이고 비효율적인 운영을 이어가면서 철도 비용은 실질 기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수익을 보지 못한 회사들은 열차 운행을 줄이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등 비용 절감에 매달리며 서비스를 하락시켰다.

코로나19 이후 승객 수와 수익이 하락하면서 철도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놓이자, 영국 정부는 철도 통합 운영을 위한 새로운 공공기관인 GBR(Great British Railways)를 설립했다. 이로써 철도 재국유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정부는 철도 운영의 ‘국유화’가 아닌 ‘단순화’라며 이를 부인했다. 그랜트 샵스 교통부 장관은 “GBR은 전체 철도 네트워크를 조정하는 길잡이를 할 것이며, 우리는 더욱 많은 민간 부문의 참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영국 레거시 연구소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76%가 철도 국유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이 노조를 싫어한다는 신화

영국 철도 노동자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노동조합을 향한 정치권과 미디어의 비난 선동도 거세지고 있다. 이는 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으며, 결국 파업의 피해는 노동자와 시민에 전가된다는 내용들이다. 지난 6월 21일, 영국 〈로이터통신〉은 36세 변호사 레오 루돌프의 인터뷰를 통해, 철도 분쟁이 길어질수록 시민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번 파업은 영국 공항의 직원 부족으로 여행객들이 혼란스러운 지연과 막바지 결항 사태를 겪는 와중에 발생한 것으로, 보건 당국은 팬데믹 기간 축적된 긴 대기자 명단에 따른 압박감으로 휘청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겨냥해 “정부는 수백만 가구의 빈곤층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인플레이션 이상의 임금 인상은 경제를 해치고 문제를 장기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라고 보도했다.

[출처: RMT]

하지만 영국 시민 10명 중 6명은 철도 파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영국 시장 조사 컨설팅 기업 사반타 컴레스(Savanta ComRes)가 철도 파업 첫날인 6월 21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2,300명 중 과반 이상인 58%가 철도 파업이 정당하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응답은 34%였다. 응답자 3분의 2에 해당하는 66%는 정부가 파업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70%는 이후 추가 파업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반타 컴레스의 정치 연구 책임자 크리스 홉킨스는 “우리의 여론 조사는 철도 노동자 파업 결정에 대한 일반적인 지지를 보여준다”라면서도, 다만 “흥미로운 것은 일주일간 (파업에 대한) 보도가 나온 뒤 대중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변화하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014년, ‘노조가 영국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에 대한 6가지 신화’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영국 미디어와 정치권이 퍼트린 노조 혐오가 어떻게 사실과 다른지를 밝히며 “노동조합에 대해 읽은 모든 것을 읽지 말라”고 경고한다. 기사는 “노조에 대한 가장 큰 신화는 대중이 노조를 싫어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직장에서 노조와 교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 누구나 혜택을 볼 수 있다. 아마 그것이 2011년 여론조사에서 노조 지도자들이 은행가, 재계 지도자, 정치인, 언론인보다 대중의 신뢰를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난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