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질’이란 없다

[미디어택] 최악의 ‘기사’를 보았다

언론보도를 보며 때로는 ‘최악의 기사’를 꼽아보기도 한다. 그 최악이라는 타이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옮겨가는 게 보통이지만, 출근길에 본 보도가 그날 ‘최악의 기사’로 남기도 한다. 지난 8월 19일 중앙일보 〈다짜고짜 “싸장님 얼마 줄거야”…불법체류자 ‘을질’ 시작됐다〉 기사 역시 그랬다. 한국말이 서툰 이주노동자들의 발음을 희화화한 “싸장님”이라는 문구부터 눈살이 찌푸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2018)는 이주노동자에 편견 및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바꾸도록 권고했지만, 기자는 굳이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여기에 ‘을질’이라는 용어까지, 그야말로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가 ‘응축’돼 있는 기사가 아닌가.

중앙일보 기사 훑어보기

중앙일보 기사는 전북 고창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한 농부가 계절근로자의 이탈로 인해 큰 손해를 본 사연으로 시작된다.

“지난 5월 네팔에서 들어온 외국인 계절근로자 2명이 야반도주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 4950m²(1500평)에 심어 놓은 감자 수확을 앞두고 있었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 출하를 하지 못했다. 당시 감자 한 상자(20kg) 가격은 7만8000원으로 330m²(100평)당 감자 45상자가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675상자의 출하가 늦어진 셈이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최 씨를 더 화나게 한 건 불법체류 외국인 전화였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선 외국인이 다짜고짜 ‘싸장님 일 있어? 싸장님 얼마 줄 거야’라고 물었다. 최 씨가 ‘일당 12만 원을 주겠다’고 답하자 그는 ‘안 돼~’라고 말했다. 최 씨가 다시 ‘13만 원으로 1만 원 올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안 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급한 마음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 최 씨는 ‘출하 시기가 일주일 늦어져 1400만 원이나 손해를 봤다’며 ‘요즘은 불법체류자가 농가를 고르는 이상한 상황이 되면서 일당이 15만 원까지 올라 이래저래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_중앙일보 기사 중

농촌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농사지은 돈으로 학교에 다닌 입장에서 농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진 않는다. 그런 입장에서 중앙일보 기사에 소개된 일손을 구하지 못해 감자를 제때 출하하지 못한 농민의 사연 또한 매우 안타깝게 봤다. 그러나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은 따로 있다. ‘4,950m²(1,500평)의 감자 수확은 노동자 두 명이 해치울 수 있는 노동의 양인가?’, ‘두 명이 1,500평의 감자를 제때 수확하기 위해서는 하루 몇 시간의 노동을 해야 할까?’ 이 같은 의문들은 기사를 읽을수록 더욱 쌓여갔다.

땡볕 아래 밭에서 감자를 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처음 농부가 제시한 금액은 일당 12만 원이다. 감자를 캐는 노동강도와 시간, 계절노동이라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2022년 최저시급(9,160원)에 비춰 결코 높은 수준이라 볼 수 없다. 실제 KBS 〈시사기획창〉 ‘[급구] 이주노동자 불법을 삽니다’ 편(2021년 11월 방영분)에 의하면, 지난해 9월 고구마밭에서 일한 이주노동자의 일당은 13~15만 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그 일당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주노동자만 ‘나쁘게’ 그린다.

중앙일보는 농민들의 말을 빌려 “불법체류자들이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 임금을 올린다”라며 그 같은 행위를 “횡포”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강원 양구군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11~12만 원으로 정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 안에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노동을 행하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중앙일보는 ‘자유시장 경제’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그런 중앙일보의 논리에 따르면, 노동력이 부족한 곳에서 임금이 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노동자들이 유리한 상황이 되니 왜 딴소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중앙일보는 “(이주노동자의)횡포”, “불법체류자가 농가를 고르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썼지만,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협상력의 우위”에 따른 결과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을질’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해 왔다. 2020년 12월, 경기도 포천 한 농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속헹 씨의 사건을 우린 기억한다.


캄보디아 출생의 이주노동자 속헹 씨는 영하 20℃라는 한파 속에서도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난방조차 할 수 없었던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부검 결과, ‘간경화로 인한 혈관 파열과 합병증’이 사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는 ‘개인 질병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단했다. 사업주한테도 고작 3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을 뿐이다. 그러나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라는 열악한 주거환경과 건강보험 미가입 등이 속헹 씨의 사망 원인과 관련성이 있다는 대책위의 끈질긴 투쟁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또한 속헹 씨가 사망한 지 1년이 넘은 시점의 일이다. 과연, ‘속헹’ 씨만이 겪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발간된 책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은 한국 사회 내 이주노동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저자 우춘희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전한 이주노동 현장은 참혹했다”라며 “장시간 고된 노동을 강요하며 법으로 정한 최저 시급도 주지 않았다. 몇 달 치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도 많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밭 바로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그들의 기숙사였다. 그 안에는 화장실도 없어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했다. 사업주의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라고 기록했다.

개인적으로 우춘희 작가의 글 중에서 ‘뜨끔’했던 대목은 이어진 문구였다. “이 모든 일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수년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이야기와 삶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라는 영역에서 비껴 있기에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던 이주노동자들의 삶. 중앙일보의 행보 또한 정확하게 이 대목에 부합한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 또한 같은 사고를 공유하진 않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중앙일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행동을 ‘을질(乙질)’이라고 했다. 어느덧 한국 사회에 자주 인용되지만, 용어 자체가 성립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성립된다고 한들, 사용하면서 신중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자칫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원인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앙일보에 묻고 싶다. 조건을 따져 보고 일을 선택하는 노동자의 행보를 ‘을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리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사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력 구도 속에서 이 기사는 어떻게 읽힐 수 있을지도 한번 따져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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