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단,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둔갑…자본동원해 소송 불사

권리찾기유니온, 스포츠산업 가짜 3.3 당사자 공동 기자회견 열어

프로스포츠 산업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전향적인 판정들이 나오고 있지만, 구단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여전히 사용자 책임을 피하기 위한 위장 프리랜서 고용 문제를 시정하지 않고 있다. 구단들은 노동부 시정지시에 불응하는 한편, 진정에 나선 당사자들의 힘빼기를 위해 장기 법정 공방 전략을 취하고 있다. 노동자성을 다투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끌고 갈 경우, 길게는 5년 정도까지 소요되기에 짧은 전성기를 가진 선수나 코치 입장에선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행동에 선뜻 나서기 어렵게 된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4일 오전 용산역 ITX회의실에서 스포츠산업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당사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프로스포츠가 ‘가짜 3.3’ 위장 수법을 이용하고 있다”라며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대기업들의 행태는 갈수록 후안무치하다. 행정명령이나 중노위 판정 정도는 무시하고 버티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고 실태를 고발했다. ‘가짜 3.3’이란 프리랜서로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로 인정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쉬운 해고와 사용자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업은 노무를 제공하는 직원에게 근로소득세가 아닌 3.3%인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근로자성을 다투거나 인정받은 프로축구단 유소년지도자, 지원스태프들이 나와 ‘가짜 3.3’ 관련 문제들을 지적하는 한편,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전남드래곤즈 유소년지도자 현성빈 씨는 이날 오후에 진행될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한 중노위 심문회의를 앞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전남드래곤즈는 유소년지도자, 지원스태프를 프리랜서 계약 형식으로 고용하고, 이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이들은 업무 내용을 구단이 결정하고, 구단과 전속적이고 지속적인 계약을 유지했다며 노동자성을 주장하고 있다.

현 씨에 따르면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출근해 구단에서 지시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저녁 식사 이후에도 구단이 정한 스케줄을 따랐다. 이밖에 계약서에 적힌 업무 내용 외에도 많은 일들을 도맡았다. ‘유소년 선수 코칭’이 선수의 안전과 훈련, 돌봄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 씨는 “어린 선수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일, 다쳤을 때 응급처치, 구단 홍보를 위해 외부에 동원되는 일까지 마다치 않고 했다. 이런 일을 대신할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라며 “제가 근로자가 아니라 프리랜서였다면, 이런 일을 왜 맡아서 했겠나”라고 항변했다. 마지막으로 현 씨는 “축구계에서 일하고 있는 제 소중한 동료들, 그리고 제가 코치로 일하며 가르쳐 온 저의 제자들은 더 이상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해서 이 자리에 섰다”라며 “스포츠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권리를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프로축구단 부산아이파크에서 14년간 유소년 감독을 맡았던 최우정 씨도 발언에 나섰다. 최 씨는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을 통해 지난 6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확인받고, 사측인 HDC스포츠가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끌어냈으나 아직까지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 씨는 “8시간이 넘는 대질조사와 수백 페이지의 증빙자료를 제출하며 가짜 3.3 근로자지위 확인 진정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시정명령이 나왔을 때는 매우 기뻤다. 만약 늦게라도 구단이 잘못을 인정하고 퇴직금을 바로 지급했으면,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을지 모른다”라며 “그러나 구단은 노동청의 판단을 인정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는 대신 끝까지 가겠다고 하면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저는 민사소송을 해야만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이 스포츠산업의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최 씨는 “구단주 정몽규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다. 자그마치 3선 연임이다. 그러나 저와 같은 유소년지도자와 지원스태프의 처우와 고용조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라며 “프로축구연맹도 마찬가지다. 연맹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도급계약을 좀 더 잘하라며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대다수의 프로축구단에서 노동자성과 퇴직금 문제로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모범이 돼야 하는 프로구단이 지도자들의 처우개선과 고용불안 해결 대신 프로답지 못하게 거꾸로 역행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기 고비용 소송에 생계 걸 수 있는 노동자 없어”


권리찾기노동법률센터 하은성 노무사는 “75일째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HDC스포츠는 관할 고용노동청에 향후에도 이행하지 않을 것임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노위 판정 당시부터 ‘3년부터 5년 걸림’ 운운하며 당사자에게 굴복하라 협박했던 DRX도 중노위 판정 이후 장기 법정공방 전략을 굽히지 않고 있다”라며 “인맥과 파벌이 취업으로 연결되는 스포츠산업 노동시장에서 5년까지 걸리는 장기 고비용 소송에 생계를 걸 수 있는 노동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보인다. 가짜 3.3 노동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근본적 대책과 사회적 연대의 구축이 시급하게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DRX 감독 부당해고사건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강남의 이언 변호사는 사측의 법적 공방 전략이 선수나 스태프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5년이면 스포츠계에서는 선수 생명이나 코치 생명의 대부분이 지나가는 시간이고, 전성기가 2, 3년 정도로 짧은 E스포츠에선 사실상 사형선고”라며 “근로자들을 만나보면 회사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회사는 돈이 있고 지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노동사건은 5심제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이행강제금도 500만 원 남짓이어서 회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서 부당해고가 확정될 때까지는 5년이 걸린다는 보도자료를 낸 DRX 사측을 두고 “노동위원회의 전문성 있는 판정이 회사의 자금력 앞에 농락당한다는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이언 변호사는 또 구단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단주가 자신의 사비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회사의 돈으로 계속 소송을 끌어서 구단주에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나 코칭스태프를 소위 매장해 버릴 수 있다”라며 “DRX 사건에서도 대표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 감독에게 애새끼 발언을 한 것도 대표인데, 정작 대형 로펌을 선임해 사실상 5심제를 치르고 이미지에 손상을 입고 있는 것은 주식회사 DRX다. 외국이라면 당장 주주들이 들고일어나 배임죄로 고소할 사안이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권리찾기유니온은 프로스포츠의 가짜 3.3 위장 고용을 드러내기 위한 근로감독 청원운동과 프로스포츠 및 체육단체에서 일하는 가짜 프리랜서 노동자를 법률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등의 활동들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선 프로스포츠 기업 112개와 대한체육회 등록단체 69개에 대한 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가짜 3.3 위장 수법을 활용한 불법·탈법 사례가 스포츠 대기업과 체육단체를 비롯한 스포츠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라며 “당사자들의 직접행동과 사회적 연대운동을 통해 모든 스포츠산업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노동권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진정 등 법률 구제의 경우 전국네트워크 참여기관 외 법률기관 24개, 법률활동가 31명이 나서 가짜 3.3 노동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노동청, 노동위, 근로복지공단, 법원까지 대응이 가능하며, 동일 업종의 다수 당사자를 공개 모집해 집단적인 구제에 나서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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