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 기후정의행진은 어떻게 기억될까?

[녹색 스트라이크]


이 글이 읽힐 시점에는 924 기후정의행진(이하 행진)이 끝났을 것이다. 그때 가서야 몇 명이 모였고 집회와 행진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그 사회적 여파는 어떨지(혹은 어땠는지) 보다 충분히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석 달여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관찰된 흐름과 경험만으로도 평가할 지점들은 존재한다. 또한 행진이 일회성 사건으로만 남지 않기 위한 전망과 계획을 미리 고민해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9월 24일 보이게 될 참여와 열기의 정도와 무관하게 행진은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무엇보다 올해의 행진은 역대 가장 많은 참여와 가장 큰 규모의 기후행동으로 남게 될 것이다. 9월 19일 현재 조직위원회에는 400여 개에 이르는 단체들이 참여했고, 2,400명이 넘는 추진위원들이 조직됐으며, 조직위에서 제안한 ‘카카오같이가치’ 모금에도 1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현재 조직위 참여 단체를 통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조직위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소모임이나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제외해도 최소 만 명 이상은 넘게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2019년 서울 혜화동에서 열렸던 대규모 기후행동 참여자 수의 두 배가 넘어가는 셈이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출처: 은혜진 기자]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출처: 은혜진 기자]

또한 조직위 참여 단체 중 많은 수는 수동적 참여를 넘어 각자의 공간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조직했다. 서울 지하철역 대부분에 홍보 포스터가 붙었고, 서울 도심에서부터 소도시 공용터미널과 시골 마을 책방에 이르기까지 포스터와 현수막이 내걸렸다. 전국 곳곳에서 행진을 독려하는 선전전과 기자회견, 강연, 간담회 등이 열렸고 기존 집회와는 달리 개인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를 기후정의의 렌즈를 통해 나누는 ‘오픈마이크’ 행사도 곳곳에서 개최됐다. 9월 24일 행진을 앞둔 기후정의 주간에만 100여 개가 넘는 각종 행사와 행동 계획이 제출됐고, 집회와 행진을 도울 자원봉사자 수십 명이 모였다.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 지자체를 포함한 전국 26개 지역에서 버스를 대절하거나 기차 한 량을 다 예약하는 방식으로 참가단이 조직됐고, 본 행진에 참여하지 못하는 지역 시민들을 위한 지역 차원의 기후정의행진도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다.

참여 규모의 확대와 참여 단체들의 강화된 행동력은 상당 부분 기후운동 외연의 확장을 반영했다. 3년 전 기후행동이 전통적인 기후·에너지나 환경단체의 주도 아래 조직됐다면, 924 행진은 이들뿐만 아니라 조직 노동, 정치, 인권, 문화예술, 지역 공동체들의 적극적 참여가 도드라졌다. 행사 당일 세워질 24개의 부스만 봐도 기후나 환경단체, 진보정당 외에도 노동조합, 교육 노동자, 재생산 정의, 성소수자 인권, 동물권, 사회주의 단체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권력에 기댔던 과거 운동과 작별하다

이와 같은 기후운동의 외연 확대는 과거 운동방식의 실패에 대한 성찰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두된 ‘기후정의’ 문제의식의 확장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 2019년 ‘기후위기 비상행동’ 때 기후운동은 정부를 향해 기후위기 인정과 비상선언 실시, 온실가스 배출제로 계획과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 방안 마련,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범국가기구 구성을 요구로 내걸었다. 실제 2020년 여름 226개 지자체와 국회가 기후 비상을 선포하고 이후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위원회라는 범국가기구를 구성하는 등 명목상으로 당시의 요구들은 다 받아들여진 것 같았으나 기후위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924 기후정의행진 요구안 초입에도 평가되듯,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허구적인 녹색성장과 기업과 자본의 새로운 이윤 추구와 그린워싱의 계기를 제공하는 데 활용”됐기 때문이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출처: 은혜진 기자]

이에 반해 924 행진 조직위의 3대 요구안은 우리가 힘이 없는 상태에서 권력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탁하는 과거 운동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후위기를 야기한 현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정부와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확대에 기반한 실질적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불평등 타파를 요구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가장 먼저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 종식을 요구하면서 화석연료 생산, 유통, 소비를 가능한 빨리 중단할 것과 이들 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지원 중단 및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민주적이고 공공적 통제를 주장했고, 이어 “불평등은 기후위기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원인”이라는 인식 하에 모든 불평등 종식 없이는 기후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천명했다. 또한 국내적 불평등의 문제를 넘어 북반구 국가로서 전 지구적 불평등 심화에 일조한 한국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는 기후정책 논의에서 지금껏 기후위기와 부정의를 심화해왔던 기업과 금융자본, 정치인, 이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축소하고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가장 큰 부담과 피해를 떠안게 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이 “기후위기 해결과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논의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최일성 당사자들의 수평적 연대 모색을 위해 남미와 동남아시아, 인도 등의 기후정의활동가들이 참여하는 포럼과 간담회를 준비했다. 기후 의제를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수치적 문제의 차원으로 다소 협소하게 접근했던 과거의 ‘탄소환원주의’적 경향과 기후운동의 대중적 힘보다는 민주당 정부나 지자체, 국회에 기대어 정책 변화를 도모했던 과거의 운동방식과는 사뭇 다른 결을 보인 것이다.

사회운동의 작동방식…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규모의 확대, 외연의 확장, 참여 행동의 적극성, 그리고 기후정의 원칙에 보다 충실한 요구와 사업들은 분명 이후 기후정의운동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은 긍정적인 변화에 못지않은 숙제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행진이 처음 기획됐을 당시 야심찬 목표로 삼았던 5만 명을 조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가 드러났다. 조직위는 석 달 동안의 활동을 벌이며 참여 단체를 늘려왔고 대중적 접촉면을 넓히려는 시도를 벌이며 흔히 이야기되는 ‘시민사회’ 안에서는 어느 정도 ‘들썩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더 넓은 사회적 공간에까지 확장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924 기후정의행진이 남긴 숙제는 이런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고민 지점과 맞닿아 있다.

먼저 한국 사회운동의 작동방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운동은 소수 활동가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단체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개별 단체들은 논평, 기자회견, 연구, 강연이나 토론회, 후원회원들을 위한 정기 소식지 등을 주된 일상적 활동으로 삼고 있다. 쟁점이 되는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연대체가 구성되는데, 이런 연대체 구성에는 단체 혹은 활동가 간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운동의 연대 방식은 종종 ‘품앗이 연대’라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는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연대방식을 말한다. 이런 연대방식은 어려움을 겪는 투쟁 현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시기 상호지원 체제를 구축하거나 최소치의 운동 동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개별 단체의 활동이든 연대체 활동이든 대체로 서로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다 기자회견을 비롯한 주된 활동도 언론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토양에서 대중 조직화, 즉 모르는 이들을 운동으로 끌어들여 운동의 대중적 확장을 꾀하는 일은 옆으로 밀리기 일쑤다.

924 행진이 남긴 숙제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출처: 은혜진 기자]

여기에 924 기후정의행진과 같은 대규모 집회의 중요성이 있다.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이 아니면서 이런 규모의 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중 조직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활동들이 단체 소속 활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924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최근에 보기 드물게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외치는 것이 아닌, 시민들과 상호작용하는 활동들이 많았다. 활동가들은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말을 건네기도 했고 각종 지역 행사에 참여해 지역민들을 상대로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오픈마이크라는 형식을 통해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기후행동에 참여해보지 못했던 시민들이 이야기해볼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고 어떤 단체는 ‘집회 처음 가는 사람을 위한 모임’을 준비하면서 행진 참여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조직위는 수십 명의 인플루엔서들을 섭외해 전례 없는 규모로 온라인 홍보물을 생산해냈고 이것들은 SNS를 통해 기존 단체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가 닿았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연결되지 못했던 소모임이나 지역 단체, 대안 커뮤니티, 그리고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는 성과도 이뤄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924 행진이 남긴 첫 번째 숙제는 행진의 준비 과정에서 형성된 대중 조직화와 새로운 연결의 흐름을 어떻게 유지, 아니 더 나아가 확대할 것인가에 있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출처: 은혜진 기자]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운동 주체의 내적 확대가 있다고 해도 운동이 가지는 정치적 영향력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참여가 많은 대규모 집회는 그 자체로 일정 정도 정치적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된 나라에서 집회는 그 자체로 ‘체제 내적’ 행위이기에 아무리 많은 수가 모여도 그것이 반드시 ‘정치적 압력’ 혹은 변화의 힘으로 전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일회성에 그칠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사회운동론은 집합행동을 통해 긴장을 조성하고 세상의 일상적 흐름에 파열구를 일으켜 권력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운동이 가진 가장 효과적인 힘의 원천이라 가르친다. 일상에 파열을 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집회라도 연속성을 띠어야 할 뿐만 아니라-불복종 행동에서부터 거버넌스 개입을 위한 계획에 이르기까지-다른 행동 혹은 전술들과 결합돼야 한다. 지금껏 짧은 기후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집회로 기록될 924 기후정의행진은 일회성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이후 지속된 행동의 조직화를 통해 일상적 정치 흐름의 변화를 일으키는 촉진제가 될 것인가? 행진이 남긴 두 번째 숙제다.

지난해 여름 출간된 〈기후정의선언 2021〉, 곧이어 출범한 탄중위 해체 공대위와 그 뒤를 이은 기후정의동맹은 반자본주의적 기후정의를 기치로 내걸었고 기후운동에서는 이런 급진적 경향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그러나 기후운동 내에서 ‘탄소중립’이니 ‘녹색성장’이니 하는 주류 개념들에 대해 비판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에 대한 수용성도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진의 준비과정을 통해 확인된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체제전환이나 기후정의가 결코 대중적으로 호응을 받지 못할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행진에 참여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기후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타남에 따라 개념의 추상성 혹은 엄밀성 부족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즉각적 거부감이 비판의 모양새를 띠고 나타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이와 같은 비판이 있다는 것조차 반길 일이다. 그만큼 기후정의-체제전환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 개념들을 보다 일상화,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행진이 남긴 세 번째 숙제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기한 숙제를 충실히 해낸다면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은 힘을 가진 사회세력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힘을 정치적 힘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제도를 뒤집어엎든 활용하든 결국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일은 정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거짓 기후위기 대응과 지난 대선에서 ‘기후대선’을 외쳤으나 좌절했던 경험은 기후운동이 더이상 주류 정당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절절하게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924 행진 조직위는 기업과 더불어 국민의힘과 민주당, 정부기관, 그리고 정부나 지자체의 직접 지원을 받는 단체들의 조직위 참여를 불허했다. 그만큼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2024년 총선, 2026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7년 대선 등 향후 몇 년 이어질 선거 일정에 대해 기후정의운동은 아무런 계획이 없고 조직위에 참여한 4개 진보정당들도 제 역할을 못 찾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라 호소한 공동 성명이 무색하게 선거 한두 달을 앞두고 서둘러 계획을 마련하려다 아무것도 못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다가오는 선거 일정에 어떤 전략을 가지고 대처할 것인가? 행진이 던지는 네 번째 질문이자 숙제다.

역사가들은 파리지엥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사건을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바스티유 감옥을 치러 가던 파리지엥들은 자신들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 프랑스 혁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924 기후정의행진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이것은 9월 24일 벌어질 일이 아닌, 그 이후 전개될 양상에 924 기후정의행진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숙제를 얼마나 잘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