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어디에나 존재하는, 어디서든 부정되는 노동자

[여성, 노동의 기록] “여성이 하기 편한 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문을 여는 남자 고객도 있고, 아침부터 잠을 깨우냐며 큰소리를 치며 달려드는 고객들도 만납니다. 매일 위협을 느끼며 일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스안전점검원들은 어떤 방비도 없이, 도와줄 사람도 없이, 혼자 일합니다.”

3.8 세계여성의 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김윤숙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장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발언했다. 그녀는 고객을 방문해 생긴 일도 집회의 주제인 여성 노동과 관련이 있는지 주저했으나 집회 참가자들의 호응은 매우 컸다. 함께 분노하고 함께 한숨을 쉬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가스안전점검원, 혹은 검침원이라고도 불리는 가스안전점검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홀로 일한다. 오랫동안 노조는 2인 1조를 요구했으나, 인건비 문제로 철저히 외면당했다. 여성 노동자에게 상시적인 성폭력과 성희롱 위험은 노동안전의 문제지만, 돈의 논리와 남성중심적 사고 속에서 무시된다. 성적 괴롭힘 문제는 가스안전점검 노동자만이 아니라 대면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회사는 고객의 갑질과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지만, 이 일은 언제나 뒷전이다.

공공기관에 가려진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우…
임금까지 떼였다



한국의 도시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가스로 난방을 하니, 가스안전점검 노동자들은 도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어디서든 그녀들의 노동은 부정된다. 가스가 누출되면 대형 참사가 일어나니 그들의 노동은 생명과 직결된 노동, 이른바 생명안전업무인데도 하찮게 취급된다. 그녀들은 서울도시가스의 민간 위탁업체인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라, 안전은커녕 적절한 임금도, 노동조건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1983년 도시가스를 민영화했다. 현재 서울 지역은 도시가스 5개 공급사(서울도시가스, 코원, 예스코, 귀뚜라미, 대륜)가 64개 고객센터 업체에 가스 안전 점검과 검침, 송달 업무 등을 위탁하고 있다. 언제부터 안전 점검일을 했냐고 물으니 김 분회장은 분식집을 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직영으로 입사했어요. 일한 지는 17년 됐고요. 지인이 도시가스 점검원은 자기가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서 아이들도 키우고 집안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2년 정도 지나서 회사는 직영을 없애고 외주화를 시켰어요. 지역 관리소 네다섯 개를 모아서 센터를 만들더니 거기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98만 원 받는 센터로 갈래, 안 갈래 묻더라고요.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직영업체에서) 120만 원 받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갔지요.”

이제는 노조도 만들었고 노동자의 권리도 안다고 했다. 회사가 서울시민들로부터 받은 돈을 중간에 가로챘다는 것도 알았다. 도시가스 회사에 대한 인·허가권은 서울시에 있어서, 서울시는 해마다 도시가스 사용요금과 고객센터 지급수수료 산정 기준을 발표한다. 서울시가 산정한 2021년도 안전점검원 평균 기본급 기준은 210만 3,800원인데, 서울도시가스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받은 기본급은 7만 1,800원 더 적다. 노조는 고객센터 호주머니에 증발한 임금이 있으리라 추측했다.

그래서 노조는 지난 5월 24일 서울시청 담당자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김 분회장은 주무부처인 녹색에너지과의 담당자들이 자주 바뀌어서 사안에 대한 이해도, 업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니 만나서 설명도 자세히 해야 한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폭력이었다. 시청 공무원과 청원경찰은 여성 노동자들의 사지를 들어 내동댕이쳤다. 경찰도 이에 합세했다. 김 분회장은 경찰이 뒤에서 잡아당겨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팔이 꺾여 인대가 손상되고, 뇌진탕으로 119에 실려 병원에 이송됐다. 나도 그날 경찰 폭력 소식을 듣고 달려 나갔다. 여기저기 비명이 들리고, 노동자들은 시청 별관 로비에 갇혀 있었다. 그녀들은 시청 별관 로비 안팎에서 원치 않는 1박을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언론사가 경찰과 서울시청의 폭력을 조명했다. 면담하자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시는 “노조가 요청한 사항에 대해 27일까지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라며 분회의 면담 요청에 응답했다. 분회는 농성을 풀었다.

임금 회복은커녕 징계와 마주한 여성 노동자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그렇게 해결된 줄 알았으나 끝이 아니었다. 가을로 접어든 9월 14일, 나는 서울시청 후문 앞에서 퇴근선전전을 하는 가스안전점검 노동자들을 만났다. 김윤숙 분회장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김 분회장에 따르면 이후 서울시는 고객센터 업체의 중간 착취를 조사하기는커녕 오히려 2022년도 산정임금을 삭감했다고 토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기 위해 그림자시위를 하니 더 큰 탄압이 이어졌다. 민주노조가 있는 센터의 조합원들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고객)센터는 격월로 검침을 한 것은 업무 지시 불이행이라고, 점검 실적이 낮아서라며 징계를 내렸어요. 4센터에 10명, 5센터에 13명이나 돼요. 정직 기간이 10일에서 100일까지 있어요. 아시다시피 2020년도에 코로나가 엄청 심했잖아요. 대면하면 서로 감염될까 우려해서 서울시에서 대면 점검을 뒤로 미루라는 가이드라인도 나왔고요. 그게 올해 상반기까지 계속됐잖아요. 사전 문자를 넣고 방문을 요청한 세대만 방문하니까 당연히 (방문점검) 실적이 떨어지잖아요. 서울시 방역지침대로 일하면 방문 실적이 줄어드는데 우리 탓인가요? 명절인데 정직이라 월급을 못 받아서 학비나 쌀값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른 것이 징계사유라니 비상식적이다. 게다가 서울시 도시가스 공급규정에 따르면 주택용의 경우 여름(6월~9월)에 격월 검침을 허용하고 있다. 여름에는 도시가스 사용량도 적은 데다,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 건강과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북도시가스서비스와 은평도시가스이엔지는 서울시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적을 문제 삼아 징계를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회사는 지난 8월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도 검침을 재촉했다. 우비를 입어도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였지만 회사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실적만 따지는 회사는 재난관리지침이나 노동자의 안전은 철저히 무시했다. 언뜻 이들의 일터는 크게 위험할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가스 안전점검노동자들의 일은 험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여성이 하기 편한 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집 안에 있는 가스레인지와 보일러만 보고 가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밖에 있는 계량기도 보고, 고지서도 우리가 보내요. 하루에 2~3만 보를 걸어요. 계량기 보려고 좁은 틈에 갔다가 동물시체도 보고 후미진 곳에서 넘어지기도 해요. 이동노동자라서 쉴 곳도 화장실도 없어요. 온갖 희롱과 욕설에 노출되고요. 우리의 노동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인지 아마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거예요.”

한편,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노동자들은 사장의 태도에 더 기가 막혔다. 사장은 본사나 서울시에 가서 얘기해도 소용없다며, 당연한 징계임을 강조했다. 기본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듯했다. 그래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다음부턴 달라진 것들이 많다.

“계량기를 검침하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져서 다리를 다쳤어요. 아마 노동조합이 있기 전이라면 그냥 조용히 해고됐을 거예요. 너 말고도 일할 사람도 많다는 식이었으니까요.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이제 그런 일로 해고는 못 해요.”

가스안전점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는 동안, 원청인 서울도시가스는 67억 원이라는 배당금을 나눠 가졌다. 가스안전점검 노동자의 땀으로 만들어진 배당금은, 그녀들이 도둑맞은 임금이기도 하다.
김 분회장과 조합원들은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내신 가스요금이 서울시 규정대로 노동자에게 가지 않고 기업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감독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아, 저희가 급여를 제대로 못 받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가만히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이 서울시의 무책임에 대해 함께 질타해달라는 그녀의 발언은 노동자의 인권과 풀뿌리민주주의가 연결돼 있다는 직관에 따른 호소다. 발언을 들으며 상상한다. 풀뿌리민주주의가 더 튼튼해지고, 가스안전점검원들이 중간착취 당하는 일이 사라지는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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