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노동시간이 당연하지 않은 까닭

[이슈] 불규칙한 노동과 압축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깨닫곤 했다. 압축 노동에 시달리던 시간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전일제가 아닌 이유에 의문을 품었다. 퇴근 시간이 불확실했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0분만 더 일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단 걸 알았던 초단시간 노동자도 사장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자는 노동자들에게 지시한 시간만큼 일하라고 했고, 임금을 줬으니 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주고, 짧은 노동시간은 낮은 소득으로 이어졌다. 사용자가 정한 길고 또 짧은 노동시간은 노동 과정뿐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빼앗고, 삶을 흔들고 있었다.


퇴근할 권리

야근을 예측하지 못하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무너질까. 게다가 연차휴가조차 사용할 수 없다면, 퇴근 후 막차를 탈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할 것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인 종로에 있는 주얼리 제조노동자들의 모습이 이렇다. 이들의 퇴근 시간은 그날의 주문량에 따라 정해진다. 주문이 들어오고 4일 안에 물건을 완성해야 하는 이 ‘초단기 납품구조’는 오랫동안 불규칙·장시간 노동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이게 했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아침 9시에 출근해 길게는 13~14시간까지도 일했다. 초단기 납품구조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빨리 물건을 완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건 10개 중 3~4개꼴로 이런 급한 주문이 들어온다. 24년째 주얼리 제조노동자로 일하는 김정봉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지회) 부지회장도 기자와 인터뷰하기로 했던 지난 9월 16일 저녁, 급한 물건으로 그날 야근이 잡혔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김 부지회장은 “주얼리 노동자들은 퇴근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지회는 주얼리 산업이 무법지대라고 했다. 30년씩 주얼리를 만들어온 노동자들에 따르면, 주얼리 업체 사장들은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했고, 거래처 간엔 금이 왔다 갔다 하며 장부에 남지 않는 거래가 이뤄졌다. 주얼리 업종은 장기존속률도 높은데, 이 덕에 업체 사장들이 수십 년동안 소득을 적게 신고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챙긴다고 알려져 있다. 2018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종로·중구 귀금속 사업장 노동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에는 이러한 700여 개의 작은 주얼리 제조업체가 밀집돼 있다. 지회는 이들 중 70%가 5~9인 사업장, 나머지는 30%는 1~4인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을 것으로 파악했다. 사회적 안전망 없이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노동시간 때문에 오죽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녀 졸업식을 한 번도 못 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김 부지회장도 돌이켜보면 운전면허 취득, 병원 치료 모두 퇴사 후 공백 기간에 이뤄졌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사업주들은 코로나19를 시작으로 노동자들을 더욱 옥죄었다. 주문량 감소를 이유로 기존 주 5일 근무를 3~4일로 축소하는 동시에 출근일에는 잔업을 강요했다. 야근을 시키면서도 출근 날짜를 줄이는 방식으로 임금의 20%가량을 삭감했다. 포괄임금제이기 때문에 연장근무수당이 임금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 사업주의 주장이었다. 이 논리대로면 비용 부담 없이 노동자들을 얼마든지 연장근무에 투입할 수 있다. 주문량이 회복된 후에도 이 문제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포괄임금제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1) 주얼리 업계 비수기에 진행한 2019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얼리 제조업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89시간(1일 평균 9시간)(2)이었다. 월 평균임금은 282.53만 원이었는데, 같은 해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309만 원)보다 26만 원가량 적었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명확함에도,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어 시간당 임금 수준이 은폐돼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시간이 증가할수록 시간당 임금이 줄어드는 구조다.

이에 5년 전, 주얼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전체 주얼리 제조업체 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지만, 노조로 조직된 사업장은 단체협약을 통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퇴근할 권리를 쟁취하며 사용자들은 노동자에게 야근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날 처리할 수 없는 물량이라면, 사용자는 다음날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사용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예측 불가한 시간 노동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장시간 노동 국가의 단시간 노동자

한국은 대표적 ‘장시간 노동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해 기준 1,915시간으로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칠레(1,915시간)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한국 사람들은 OECD 회원국 평균(1,716시간)보다 199시간 더 일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단시간 노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취업자 가운데 주당 노동시간이 1~14시간에 그친 초단시간 노동자는 150만 명이다. 같은 해 전체 취업자 수(2,847만 명)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2002년 46만 명에서 20년 동안 3배 넘게 늘었다. 올해 초단시간 취업자 중 여성은 99만 명, 남성은 51만 명으로 여성이 전체의 65.9%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퇴직금, 유급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짧은 노동시간은 낮은 임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난 5~6월 사단법인 유니온센터와 청년유니온이 청년 초단시간 노동자가 많이 분포한 3개 업종(편의점·카페·음식점) 청년 노동자를 중심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87만 3천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비혼 단신 근로자의 월평균 실태 생계비 220만 5,432원의 39.6%에 불과한 수준이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0.2시간이었으나,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한다는 응답자는 48.6%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단시간 안에서도 5분 차이로 나뉜 노동자

그렇다면 이들이 주휴수당도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노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 노동자의 특성상 학업 등으로 전일제 노동을 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지만, 그렇다고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유니온센터·청년유니온이 실태조사 이후 초단시간 노동자와 그 이상을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벌인 면접 조사 내용을 살펴봤다.

면접 참여자들은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할 경우 주휴수당을 못 받는 것을 알았음에도, 구인 광고에서 초단시간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구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일할 수 없었다고 했다. “10시~13시, 10시~14시, 이렇게 4시간. 본인들이 결국 필요할 때만 찾는 경우들이죠. 알바들 사정까지는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점심시간 때 너무 바쁜데 일손이 달리고 (…).” “시간은 솔직히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사장님들이 보통은 주휴수당 안 주려고 (…) 안 걸리는 선에서만 시간을 정해놓고 그 타임의 알바를 구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죠.”

주 14.5시간 일한다는 노동자는 자신의 친구도 14시간 55분을 일한다고 했다. 5분~30분을 더 일하는 노동자와 달리, 이들은 딱 시급만을 받아 갈 수 있다. 대학교 아르바이트조차 15시간 이하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딱 14시간까지만 맞춰놨어요. 학교 자체적으로.”

사용자들의 유연한 노동시간 관리는 단시간 노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근로계약서는 안 썼지만 일할 때 조건이 3시부터 7시였나. 아무튼 그렇게 일을 하는 거였는데 갑자기 대표가 11시부터 일을 하라는 거예요.” 시간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이 노동자는 바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이밖에 당일에 시간을 당겨 출근하라거나, 쉬는 날 출근을 요구받는 사례도 있었다. “정말 친절하거나 친절한 어른이 아니면 솔직히 거절하기가 힘들잖아요.”

쪼개져 압축된 노동…
어떤 노동시간을 늘릴지도 중요하다


단시간 노동의 문제는 공공부문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20년 11월, 초등돌봄전담사 6천여 명은 상시 전일제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벌였다. 단시간 노동으로는 돌봄 업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는 돌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파업 참가 인원은 전체 돌봄전담사 1만 2천여 명의 절반에 달했다. 당시 이들은 주당 소정근로시간이 40시간인 노동자가 전체 돌봄전담사의 17.9%(2,206명)(3)에 불과한 단시간 노동 구조를 지적했다. 나머지 80% 이상(9,907명)의 노동자는 주당 10~30시간 미만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해 초등돌봄전담사들이 2차 파업까지 예고하자, 교육부는 돌봄전담사 처우개선 등을 위한 ‘학교 돌봄 운영개선대책’을 마련하기로 했고, 상황은 일단락됐다.


초등돌봄교실은 2004년 초등 저학년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초등돌봄교실 공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시간제 노동으로 운영되다 보니, 이전 정부들이 초등돌봄교실 확대 정책을 내세울 때마다 (초)단시간제 노동자 확대 정책이라는 돌봄전담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앞서 초등돌봄교실은 박근혜 정부의 확대 정책에 따라 2010년 6,200실에서 2014년 10,966실로 폭증됐다. 당시 돌봄전담사들이 소속된 노동조합은 박근혜 정부가 돌봄교실을 양적으로만 확대하면서 초단시간 돌봄전담사들이 2013년~2014년 사이 무려 2.8배나 늘었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둘러싸고 더 커졌다. 돌봄전담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는 목적으로 ‘십분 계약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십분 계약서는 노동시간을 하루 2시간 50분(주 14시간 10분)이라고 명시하는 등 출퇴근 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는 꼼수를 뜻한다.(4) 7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수법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돌봄전담사들의 파업 끝에 상시 전일제 요구가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운영 개선 방안’에 포함됐다. 지난해 8월 발표된 개선 방안에는 초등돌봄교실 운영시간을 저녁 7까지로 2시간 확대하면서 돌봄전담사의 적정 근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후 7시까지 돌봄교실을 운영할 시 6시간 돌봄 업무를 보고, 나머지 1~2시간을 준비·정리 및 행정업무 시간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를 제외한 시도교육청들은 관련 노조와의 교섭을 통해 돌봄전담사의 전일제 전환을 합의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에 따르면, 근무 시간을 1시간만 연장하기로 한 경북과 초과근무만을 인정하기로 한 전북을 제외하고는 다수의 지역에서 돌봄전담사 노동시간 관련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충남과 강원의 경우는 아직 노동시간 확대와 관련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강원의 경우엔 늘어나는 2시간이 돌봄전담사의 행정업무 시간과 돌봄교실 운영시간 중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교육공무직본부 강원지부(지부)에 따르면, 현재 강원도의 초등돌봄전담사 386명 모두는 6시간제 노동자다.

이들의 노동과정을 살펴보면, 일상적으로 시간 외 노동과 압축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봄전담사들은 출근(오전 11시) 이전 학생들의 간식을 구매해왔고, 초등돌봄교실이 운영되는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도 마무리하지 못한 행정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초등돌봄교실 운영 전 2시간 안에 교육청 및 지자체 공문서 작성·관리, 일일 돌봄 활동일지(귀가 관리대장) 작성 등의 행정업무와 기본생활 습관 지도 관련 활동 준비, 점심 식사 등을 모두 수행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부는 출근 시간을 1시간 당기고 초등돌봄교실을 1시간 확대하는 식의 전일제 전환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강원도교육청이 초등돌봄교실 운영시간만 오후 7시로 2시간 확대해야 한다고 나서면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돌봄교실 운영시간만 늘려서는 기존처럼 학생들을 “보고만” 있게 돼, 돌봄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초등돌봄전담사의 근로시간제별 임금 수준을 조사한 자료(5)에 따르면, 전일제 노동자와 시간제(6시간)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52.97만 원 차이가 난다. 6시간제 노동자인 송인경 지부 지부장은 지난 9월 급여로 169만 4,450원을 받았다. 돌봄전담사들은 전일제 전환 요구를 하다 보면, ‘단시간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위치가 아니지 않냐’는 얘기를 종종 듣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송인경 지부장은 “돌봄전담사들도 가장인 경우가 많다”면서 “용돈벌이라는 시선은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기 위한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1) 서울노동권익센터(2019), “서울지역 주얼리 제조업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실태 연구”
(2) 지난 1주일간 점심시간을 제외한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을 물어본 결과. 조사 기간은 주얼리 업계 비수기 기간인 7월~8월 사이 진행됐다.
(3) 교육부, 2021년 교육공무직원 실태조사
(4)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2015년 2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책임지고 돌봄전담사 고용불안·임금차별 해결하라”라고 요구했다.
(5) 고용노동부·한국노동연구원(2020), “온종일 돌봄 정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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