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보 씨가 ‘마약 배우’ 혐의를 벗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미디어택] 타임라인을 통해 본 ‘언론의 무책임’…‘A씨’ 보도는 반복된다

명절은 민심의 바로미터라고들 한다. 연일 치솟는 환율과 고공행진 중인 물가, 폭우·태풍 피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종부세 완화 등 추석 밥상에 오를 얘기는 많았지만, 언론의 감시망은 쉽게 피해 갈 수 있었다. 지난 추석 언론이 주목한 뉴스는 ‘40대 마약 배우’였기 때문이다. 피하려야 피할 수조차 없이 쏟아진 기사들만 수백 건에 달했다. 그런데, 뒤늦게 마약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제까지 언론의 ‘알고 봤더니 아니었네’라는 행태를 지켜봐야 할까.


타임라인으로 본 ‘40대 마약배우’ 언론보도 양상

시작은 채널A가 끊었다. 9월 10일, 채널A는 〈[단독]“강남 주택가에 취한 듯 뛰어다녀”…‘마약 양성 반응’ 40대 배우 체포〉 기사를 통해 “40대 남성배우 A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라고 전했다. 한 남성이 뭔가에 취한 듯 거리를 활보한다는 시민제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여러 정보를 통해 자택에 있던 A씨를 찾아가 간이 마약 검사를 했더니 ‘양성’ 반응이 나와 체포했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채널A 기사가 나간 후, ‘40대 마약 배우’ 기사들이 빠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1. A씨를 찾으라는 언론의 속삭임

채널A 기사에서 ‘40대’ 수식을 굳이 붙였어야 했나 싶지만, “A씨는 지난 2006년 지상파 드라마에 조연으로 데뷔해 이후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했다”는 문장은 문제가 있다. A씨와 관련한 단순 정보 값이라 보이지만, 이는 ‘누군지 찾아봐’라고 속삭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는 데뷔 때부터 주연이었기에 아니고, 누구는 지상파에서 데뷔한 게 아니고, 또 다른 누구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말들이 퍼져나갔다. ‘2006년 데뷔 40대 남자배우 명단’을 제목에 쓰는 낚시성 기사들도 이 시기에 집중됐다.

A씨를 추정하는 이니셜이 좁혀지면서, 애꿎은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몇몇 매체들은 그 피해 배우들의 ‘최근 근황’ 기사들을 작성해 클릭 수를 올리는 모습도 보여줬다. 결국, 배우들이 나서 SNS와 소속사를 통해 해명해야 했다. 과연, 자발적인 해명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A씨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들이 추가됐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디스패치는 〈[단독] ‘마약투약’ A씨, 40대 조연배우…2021년 일일극 주연으로 활약〉 기사를 통해 ‘2021년 한 일일극에서 비중 있는 역할 담당’, ‘지금까지 약 10여 작품에 출연’, ‘2022년에는 활동 없음’, ‘현재 인스타 계정 비공개 전환’ 등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쏟아내며 ‘A씨 찾기’를 부채질했다.

#2. ‘A가 혐의를 인정했다’는 언론과 공개된 실명

JTBC는 〈40대 남자배우 마약 투약 A씨, 혐의 인정 병원 치료中〉 기사를 썼다. 대부분은 기존에 나온 정보들을 짜깁기했고, 새로운 내용은 정보 출처가 불분명한 ‘혐의 인정’, ‘병원 치료 중’이 전부였지만, 언론사 입장에서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조회수를 높여주는 떡밥이 던져진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실과 다른 기사들이 제목만 달리해 또 퍼져나갔다.

그 사이 언론들은 마치 범인을 잡듯 용의자의 범위를 점점 좁혀갔다. 스포츠경향은 〈40대 마약배우 목격담 “토한 채로 강남거리 뛰어다녀”〉 기사에 A씨의 프로필 사진을 배치했다.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누구인지 가늠할 정도의 사진이었다. ‘아직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우리는 누군지 알지’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기사다.

‘이상보’라는 배우 실명이 등장한 건 관련 보도가 처음 나가고 하루가 지난 11일 오후의 일이다. 텐아시아는 〈[단독] ‘마약 투약’한 40대 남자 배우, OOO·OOO도 아닌 이상보〉 기사를 게재했다. 그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 언론사 입장에서는 이제 기사에 실명을 적어도 무방하다고 보는 시점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언론에는 ‘이상보, 누구길래’ 식의 기사들이 뒤덮기 시작했다. MBC연예는 〈‘마약+민폐’ 이상보 누구길래…OOO·OOO ‘날벼락’〉을 통해 ‘민폐’라는 낙인을 찍었다. 마약 투약도 모자라, 타 배우들한테 피해를 줬다는 대표적인 책임 전가 식 보도다. 과연, 누가 누구한테 피해를 줬는지 궁금해진다.


#3. CCTV 공개로 망신 주기…뒤늦게 삭제하면 끝?

CCTV 영상까지 언론에 의해 노출되며 상황은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시작은 SBS였다. 11일, SBS는 〈8뉴스〉를 통해 “한 남성이 골목 안 거리를 배회합니다”, “뭔가에 발이 걸린 듯 넘어질 뻔하다가도 휘청거리며 계속 걸어갑니다”라는 CCTV 영상 속 상황을 설명하는 리포트를 배치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형태의 전형적인 망신 주기 기사였다. SBS는 뒤늦게 뉴스 동영상을 내렸지만, 이미 다수 언론사에 의해 퍼진 후였다.

그렇게 이상보 씨는 마약사범으로 굳어졌다. KBC광주방송 〈이번에는 카페서 마약…강남 도심서 버젓이 마약 투약〉, 공감뉴스 〈마약 40대 남성 검거…서울 강남 카페서 ‘흰 가루’ 흡입해〉 기사에서 이 씨의 사례를 인용했다. 아시아경제 또한 〈“취한 듯 뛰어다녀” SNS 타고 젊은층에 번지는 마약〉 기사를 썼다. 이 씨 측의 해명 후, “다만 A씨는 13일 YTN과 인터뷰를 통해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없으며 우울증을 앓아 관련 약물을 복용한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마약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라는 내용만 뒤늦게 추가됐다.

이상보 씨 사건, 언론이 하지 않은 것…‘취재’ 그리고 ‘사과’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13일, 이상보 씨가 직접 해명하면서부터다. YTN은 〈[단독] 마약 혐의 배우 이상보, YTN에 “마약 아닌 우울증약 복용”…진단서 제출〉 기사를 통해 이 씨가 2019년부터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왔다고 밝혔다. 이 씨는 경찰의 마약 검사 발표에 대해 “우울증 약물에 포함된 소량의 마약 성분 때문”이라며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과 같이) 혐의를 인정한 적은 없다”라고 호소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연이어 드러났다. 이 씨가 체포 직후 병원에서 실시한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자 언론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제 언론은 이 씨의 가정사를 ‘불행을 전시하듯’ 보도하고 있다.

이상보 씨의 사건은 언론 보도를 살펴볼수록 당황스럽게 만든다. 가장 놀라운 건, 수백 개의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를 직접 취재한 기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이 완벽히 보장되긴 어렵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선은 필요하다.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누군지 찾으라’고 부추기고,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실명을 공개하거나 CCTV를 유포하는 건, 도를 넘어선 행보다. 그렇게 ‘40대 마약 배우’ 사건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돼 버렸다. 사실 가해자가 없는 게 아니란 건 누구도 알고 있다. 단지 사과하지 않을 뿐. 더욱 고약한 건, 언론은 이제 ‘50대 여성 배우’로 다시 A씨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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