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상대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되다”

[르포] 하이트진로 소주 운송 화물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동지들을 지키는 것

9월 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건물에 ‘노조탄압 분쇄·손배 가압류 철회·해고철회 전원복직’이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하이트진로 소주를 운송하는 화물 노동자 130명이 가입한 노동조합 하이트진로지부(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소속, 이하 ‘하이트진로지부’)가 ▲운송료 30% 인상 ▲ 공차 회차 시 운임비 지급 ▲휴일 근무 운송료 150% 지급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지 114일 차가 되는 날이었다. 4명의 노동자가 본사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18일 차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저녁 문화제에 참석한 노동자들이 ‘화물연대진군가’를 부른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도 팔뚝질을 하며 문화제에 함께 한다. 이들은 밑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기도 한다. 상륙 시점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태풍 힌남노에 대비하기 위해 고공농성장 현수막 일부를 떼어냈다. 인근 구청과 주민센터 공무원도 상황을 살피러 나와 있다.

  지난 8월 31일, 하이트진로 본사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
[출처: 연정]

“오늘 밤에 바람도 불 텐데, 야간 조는 맞은편 현수막도 하나씩 점검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 있는) 우리 동지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모아주셔야 우리 동지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습니다.”

김경선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본부장이 백일이 넘는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버텨준 조합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3주째 농성이 진행되고 있는 하이트진로 본사 앞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담배꽁초, 낙엽까지 우리가 다 주워요. 누가 시키는 게 아니고 그냥 알아서 담배 피는 구역 정해서 피고, 쓰레기가 보이면 다 줍는 거죠. 잘못한 게 없어도, 우리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불편할 수 있잖아요.”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정승훈 씨(가명)는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낮은 운송료 문제로 화물연대에 가입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길게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고공농성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젠 위에 있는 동료들의 발언하는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식사는 매일 이천 공장 쪽에서 만들어 1톤 트럭에 실어 와요. 밥은 방앗간에서 쪄서 박스에 담고, 찌개나 국도 끓여 오고요. 그럼 그릇에다 밥 넣고 국 넣고 김치 넣고 그냥 먹는 거지.”

석 달 동안 매일 이렇게 밥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져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며 승훈 씨가 웃는다. 6월 2일 파업에 들어간 이후 먹는 것, 씻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게 없었다. 번 돈은 없는데, 고정 지출은 나간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심란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버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문제를 알리고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승훈 씨는 하이트진로가 100% 지분을 보유한 수양물류 소속으로, 하이트진로 소주 제품 운송 업무를 해왔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한 일이 어언 30년이 돼간다.

승훈 씨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공장에 5시쯤 도착해 순서를 기다려 하이트진로 소주를 상차하고, 전국 물류센터로 실어 나른다. 적은 운임 때문에 최대한 많이 실어야 했다. 차 끝까지 꽉꽉 채우면 792상자 정도가 실리는데, 그 무게가 17~18톤 정도다. 식사는 주로 도시락을 싸와서 해결했다. 차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 12시간 일했다.

  지난 8월 31일,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 [출처: 연정]

날아가는 운반비 30%

“원래는 하이트맥주라는 회사랑 진로라는 회사가 따로 있었어요. 저는 진로 소주를 수송했는데, 진로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서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했어요. 그래서 하이트진로가 된 거예요.”

1997년 부도난 진로그룹은 부도유예협약 대상 기업에 선정돼 회생의 길을 모색했으나, 끝내 법정관리가 개시돼 기업 인수 절차를 밟게 된다. 회사는 부도났지만, 승훈 씨는 이전보다 더 바쁘게 일했다. 1998년 참이슬의 출시로 (주)진로의 소주 시장점유율이 무섭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50% 이상, 수도권에선 90% 이상에 달했다. 매각 공고가 나기 전부터 뜨거웠던 진로 인수 입찰에 하이트맥주컨소시엄이 타 경쟁사보다 월등히 많은 3조 4천억 원을 제시하면서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하게 된다. 당시 주류시장 독과점 논란과 미국 금융자본 골드만삭스의 먹튀 논란 등도 있었지만, 하이트맥주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 기업결합을 승인받는다.

자부심을 갖고 진로 소주 운송을 해왔던 승훈 씨는 원래 있던 회사에 ‘차 넘버값’ 수백만 원을 지불하고 하이트 제품 운송을 하던 수양물류에 들어온다. 거액의 입찰 금액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진로 인수에 욕심을 냈던 하이트맥주는 인수가 성사되자, 진로 소주를 운송하는 화물 기사들을 홀대했다. 지난 15년간 하이트진로 소주 운송 노동자들의 운임 인상률은 마이너스 1.1%다. 하이트진로가 2009년 유가 하락을 이유로 운임을 8.8% 삭감한 뒤로, 2013년(1.2%)·2016년(3%)·2019년(3.5%) 단 세 차례만 운임이 인상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주 운송 노동자와 하이트맥주 운송 노동자들 사이엔 운임 차별도 있었다.

“하이트진로로 통합됐으면 운반비도 통합돼야 하는데, 안 해준 거예요. 공장이 마산, 홍천, 전주, 청주, 이천까지 다섯 군데가 있어요. 이 중에 청주, 이천이 소주 공장이에요. 근데 맥주 운임하고 소주 운임이 달라요. 하이트맥주 기사들은 같은 거리를 가도 운반비를 우리보다 30% 더 받아요. 같은 일을 하니까 차별 아니에요? 회사가 어려웠던 시기를 아니까, 우리도 처음에는 그냥 기다렸어요.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근데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거지. 어렵다고 해서 참아줬는데, 1700억 수익1)을 냈으면 조금은 올려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승훈 씨는 회사가 앞으로 2~3년 안에라도 하이트맥주 화물기사들과 운송비를 맞춰주겠다는 약속만 했어도 파업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회사는 맥주 화물기사들과 똑같이 5% 인상만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하이트진로가 소주 출고가를 8.8% 인상했을 때였다.

앙상해지는 운임…운송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메꾸다

“우리가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하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지요. 계속 어렵다, 이번만 넘어가 주면 다음에는 인상해주겠다 하고 우리는 또 ‘아, 회사가 어려운가 보다’ 믿고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회사가 힘들다고 수수료 더 떼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고. 그렇게 20년이 흘렀는데, 운송료는 안 오르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계속 올랐어요.”


20년간 진로 소주 운송을 해왔다는 박경호 씨(가명)는 바리익스프레스라는 하이트진로의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바리익스프레스는 승훈 씨가 소속된 수양물류의 하청업체이기도 하다. 경호 씨의 운임 수수료는 수양물류와 바리익스프레스에서 두 번 떼인다. 대략 건당 6~8% 내외로 추측되는 수수료 금액과 정확한 운임 단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우리는 탕 수로 먹고산다고 말해요. 우리는 남들 한 탕 할 때, 두 탕은 해야 최소한의 생활이 되거든요. 청주공장에서 인천까지 90km로 과속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어요. 제품 운송비 28만 원 받고, 돌아올 때 공병까지 실으면 9만 원 정도 더 받아요. 37만 원이 많아 보이지만 기름값, 수수료, 톨비, 보험료 떼면 잘해야 4~5만 원 남아요. 지금은 기름값이 조금 내려갔지만, 리터당 2,200원까지 올라갔을 때는, 남는 건 고사하고 지출이 더 나갔어요. 여름엔 맥주를 더 많이 마시니까 계절별로 운송할 수 있는 양도 다르고요. 요즘은 술이 워낙 다양해져서 소주를 덜 마셔요. 1년 평균으로 따지면 하루에 한 탕을 채 못 뛰어요.”

  지난 8월 31일,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진행된 하이트진로 투쟁 승리 민주노총 결의대회. [출처: 연정]

차량 유지비 또한 운송 노동자에게 큰 부담이다. 차량 타이어가 14개인데, 1개 교체에 드는 비용만 35~50만 원이다. 다른 부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류비 상승 시기엔, 한번 주유할 때마다 최소 70만 원이 나가기 때문에 가계가 휘청인다.

공병 운임에도 서러운 사연이 얽혀있다. 올해 초 노동자들은 하루 1회전 운행하며, 돌아올 때 공병을 싣지 않는 준법 운행을 시작했다. 공병 운반비를 인상하고, 빈 차로 오는 경우 기름값이라도 하게 회차비를 조금이라도 지급해달라는 취지였다. 하이트맥주 운송 기사들은 이미 적용받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랬더니 회사는 기존 소주 운송 화물노동자들이 받던 운임의 10배를 주고 용차(대체 운송차량)를 불러 공병을 운송했다.

더 이상 부조리를 참을 수 없기에 3월에 노조 설립을 했지만, 사측은 교섭 해태로 일관한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측은 132명의 노동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자신들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했던 원청 하이트진로는 두 차례에 걸쳐 26명의 노동자에게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28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수양물류의 하도급 운송사인 명미인터내셔널과 운송 계약을 해지했다. 투쟁 과정에서 총 75명의 노동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하이트진로지부 지부장 등 3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파업 신고를 다 했는데도 이천, 청주, 홍천공장 그 어디에서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8월에 홍천공장에서 경찰에 밀려 강에 추락한 조합원은 아직도 병원에서 퇴원을 못 하고 있어요. 여기 드러누워서 옆에 동료들 뒤척거리는 거 보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서글픈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우리는 다른 길이 없어 최후 수단으로 이 선택을 한 거예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올라간 거잖아요. 어느 정도 협상이 돼서 고공농성 하는 인원들만 구조해서 같이 돌아갈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다친 데는 없냐’ 말 한마디면 될 텐데

승훈 씨는 하이트진로를 “우리 회사”라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늘 “우리 회사” 제품을 먹으라고 했고, 경조사 때도 늘 “우리 회사” 물건을 이용했다.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이트진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행되는 요즘, 주변 지인들이 힘내라며 하이트진로 불매 인증샷을 보내주는 게 고맙지만 마음 한편은 씁쓸하고 불편하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잘 타결되길 바라죠. 돌아가면 이젠 정말 대화로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회사를 위해 어렵게 일해온 거 회사도 다 알아요. 우리는 사고가 나면 전적으로 다 우리 책임이에요. 회사가 책임은 안 져줘도, ‘다친 데는 없냐’ 말 한마디만 해주면 고마운데 그런 건 하나 없고 회사 이미지 실추했다고 ‘배차정지’나 한단 말이에요.”

  지난 9월 2일, 투쟁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 [출처: 연정]

노동자들은 하이트진로가 정한 요일과 시간에 근무하고, 하이트진로가 정한 운임을 받는다. 차량에 하이트진로 광고를 붙이고 다니며, 하이트진로 제품을 실을 수 있는 차량을 운전한다. 이 말은 하이트진로를 위한 일 외에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이트진로는 이 노동자들이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또 어떤 때는 하이트진로의 이미지를 실추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며, 관련 없다던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지금 노동조합의 주된 요구는 손배가압류 철회와 해고자 전원복직이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은 파업을 끝내고 현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본전치기’ 아니냐고, 성과가 그것밖에 안 되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훈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00일이 넘는 파업 동안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사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전에는 각자 일하느라 바빠서 동료들끼리 술 한잔을 할 시간도 없었어요. 순번이 빨라야 2만 원짜리 공병이라도 싣고 올 확률이 있으니까 다 경쟁 상대였던 거죠. 파업 들어가고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자면서 같이 얘기도 하고 친해지기도 하고, 동지애라고 그러나요? 예전에는 ‘좀 세 보인다, 고지식해 보인다’고 선입견을 가졌던 사람인데, 대화해보니까 참 좋은 사람인 거죠. 다 고마운 분들이에요. 서로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고. 말 그대로 동지예요. 뜻을 같이하는 동지.”

<덧붙이는 말>

9월 9일, 총파업 121일차,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광고탑 고공농성 25일 차에 하이트진로지부는 사측과 ▲손배가압류와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조합원 복직 ▲휴일 근무 운송료 150% 지급 등에 합의하고 총파업과 농성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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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견

    잘 해보시기를. 헌법에 나오는 집회결사, 표현의 자유 등은 윤석렬 대통령이 초등학생처럼 말하는(무감각적으로 말하는) 자유시장경제 가치와 부합합니다.

  • 윤정희

    고생 많으셨습니다. 국민들이 기사님들의 이런 사정까지 세세히 알까요? 저도 파업 한다고 욕 많이 했던 사람인데... 참 씁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