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대기하는 일은 노동이다

[워커스 상담소] 감시·단속 노동자의 빼앗긴 휴게와 휴일을 되찾기 위한 법

직업의 종류에 따른 또 다른 차별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의 규정이 무색하게도, 최소한의 노동기준이 되는 근로기준법은 법 자체에서도 수많은 차별을 용인하고 있다. 조금 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노동자를 차별하거나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을 적용 제외하는 것을 허가해주고 있다.1)


이 글은 근로시간·휴게·휴일에 대한 규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감시·단속 노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관련한 이야기다. 근로기준법 제63조(적용의 제외)는 근로시간과 휴게·휴일 등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예외 근로자’를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 수나 노동시간의 차별을 피하더라도, 법 제63조는 농어촌 지역 노동자와 감시·단속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차별을 가한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제한(주 최대 52시간) 규정과 연장·휴일근로 가산 수당, 주휴수당을 적용받지 못해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노출돼 버린다. 이 적용 제외 규정과 함께 경비노동자를 슬프게 만드는 것이 ‘가짜 휴게시간’이다. 임금을 축소하고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고자 근로계약서에 휴게시간을 기재해 놓고, 실제로는 대기시간이나 노동시간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대기시간2)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사이 어딘가가 아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이 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 선택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말을 빌려서 대기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노동시간 제한과 저임금 문제의 쟁점이 되는 대기시간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본적으로 휴게시간이 아닌 시간은 모두 노동시간으로 봐야 하며, 장소적 구분 없이 노동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만을 휴게시간으로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외 모든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본 뒤 그러한 원칙하에 법 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그것이 근로기준법에서 휴게시간을 정한 취지에 부합하고,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이 작업을 위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보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용자는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을 실제로는 대기 시간 내지 노동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휴게시간이라고 적혀있지만, 업무를 수행하거나, 장소를 이탈할 수 없어 의자에서 선잠을 자기도 한다. 이러한 대기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산정해 진정을 제기하더라도 사용자가 휴게시간이라고 주장하면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은 노동자가 부담한다.

노동시간에 대한 입증 책임 완화의 필요성

노동청에서 근로계약서에 적시된 휴게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거나, 시간 외 노동으로 인정받는다하더라도 연장근로수당 등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모두 입증해야만 한다. ①휴게시간 또는 근로시간 외의 시간에 사업장에 체류했다는 것에 대한 증명 ②노동자가 해당 시간에 업무를 수행한 사실에 대한 증명 ③그 업무가 사업주의 명시적 지시로 행해지거나, 최소한 사업주가 그 시간에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 게다가 휴게시간의 노동 또는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입증은 전반적인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입증하는 것이 원칙이다.

  휴게시간을 9시간으로 기재한 근로계약서

업무기록을 통해 ①번과 ②번을 입증하더라도, ③번에서 많은 벽에 부딪힌다. 사업주는 “그 시간에 일한다는 것을 몰랐다”라거나, “그 시간에 일하라고 시킨 적이 없는데 자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까지 돈을 줘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필자는 다시 한번 반문하고 싶다. 자발적으로 휴게시간에, 또는 퇴근 시간 이후에 사업장에서 업무를 하는 노동자가 몇이나 되는가. 일의 총량이 너무 많아서든, 마감 기한이 촉박해서든,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조직을 위해 일했다면 그것이 노동시간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저임금 노동의 굴레를 끊어내자 :
‘감시·단속’ 업무로 차별·낙인은 그만


다시 감시·단속 문제로 돌아와 보자. 노동시간 제한에서 자유로운 사용자는 경비업무를 12시간 3교대 내지 24시간 맞교대 근무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건비 절감을 위해 노동시간 중 상당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근로계약서에 기재하는 편법을 사용한다. 문제는 감시·단속직 근로로 승인된 경우, 노동부가 휴게시간을 형식적으로 두더라도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휴게시간의 노동시간 인정이 비단 감시·단속 노동자나 경비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경비노동자 사건에서 뗄 수 없는 쟁점이 된다.

  휴게시간으로 구분된 21시와 2시에도 순찰 업무가 명시돼 있다.

이처럼 감시·단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경우 휴게시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정을 감안해 노동부는 노동부와 법원의 휴게·근로시간과 관련한 여러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휴게·근로시간 구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 ‘가이드라인’은 규범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 진정을 제기하지 않으면 조사에 들어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해 퇴사한 노동자가 진정을 제기하더라도, 빼앗긴 임금과 권리를 되찾을 뿐, 사업장의 노동조건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시·단속적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 등에서 적용 제외되지 않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 법으로 차별을 허용하고, 심지어 ‘적용 제외 승인’을 신청하면 인건비 절감과 노무관리 편의성이 대폭 올라가도록 설계해놓고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직업의 종류, 계약의 형식, 사업장 규모, 노동시간, 업무의 형태 등으로 노동권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은 최소한의 노동기준을 설정한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다.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감시·단속 노동자의 빼앗긴 휴게와 휴일을 돌려줄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1) 대표적으로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계약의 형식에 따른 차별(사업소득 노동자),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초단시간 노동자) 등이 있다.
2) 노동자가 작업시간 중에 현실적으로 작업하지 않고 다음 작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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