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소개한 친구는 사실 내 애인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어김없이 올해도 추석이 지났다. 긴 연휴가 반갑지만, 명절은 저마다의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기이기에 썩 달갑지만은 않다. 특히, 많은 사람이 연애와 결혼에 대한 친척들의 오지랖에 시달린다. 그나마 여느 사람들은 비연애·비혼을 지향하지 않는 한, 연애하거나 결혼하면 굴레에서 벗어나겠으나 (물론, 그렇다고 친척들의 오지랖은 멈추지 않겠지만) 성소수자들은 연애하고 있어도, 심지어 결혼했어도 추석과 같은 명절은 참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추석 연휴에 자기들끼리 모여 추석을 보내거나 고향에 다녀온 뒤, 한데 모여 속풀이 잔치를 벌이고는 한다. 이번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5년 차 커플인 빌리와 현이 소소부부를 찾아왔다.

  소소부부와 빌리, 현. [출처: 소소부부]

소주 “어서 와, 둘은 이번 추석 때 어디 다녀왔어?”

현 “각자 친척 집에 갔다 왔지.”

오소리 “추석을 맞이한 성소수자들의 스트레스, 없었어?”

빌리 “이번엔 없었어.”

서른을 넘어선, 오지랖 적령기임에도 이번에는 둘 다 오지랖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둘 다 손위 친척 사촌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소리 “잠재적 앨라이(Ally·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네.”(웃음)

그 외에도 웃어른들 사이의 잦은 이혼이나 비혼이 생소하지만은 않은, 예전과는 달라진 시대상이나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결혼이냐’ 하는 생각도 한몫하는 것 같다. 분명 10년 전과는 또 달라졌다며 서로 신기해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가족을 주제로 흘러갔다.

오소리 “둘은 만난 다음에 가족들에게 서로를 소개해 준 적 있어?”

빌리 “각자 집에 놀러 갔다가 부모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냥 친구라고 소개했지.”

오지랖에서 해방됐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닌 게, 성소수자들에게는 서로의 존재를 속이거나 숨겨야만 하는 원초적인 스트레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빌리와 현은 가족에게 ‘제대로’ 커밍아웃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가족에게 서로를 친구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현은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온 뒤 엄마에게 퀴어 굿즈를 들킨 적이 있는데, 전공이 사회복지학과라 여러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녀왔다고 둘러대면서 어물쩍 넘어간 적이 있다. 한 번은 TV에 나오는 성소수자를 본 동생의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그러면 안 되지 않나”라는 말에 엄마 앞에서 동생과 논쟁을 벌인 적도 있는데, 그때도 본인이 성소수자임은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빌리와 현. [출처: 소소부부]

빌리는 현재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10년 전 떨어져 살 때쯤 부모에게 얼떨결에 커밍아웃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빌리의 부모는 애써 못 들은 척하는 상황이다. 몇 년 전 한 번 더 얘기해봤지만, 부모의 반응은 여전했고, 이에 빌리도 딱히 더 이상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정체성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오소리 “둘은 가족한테 서로를 애인이라고 소개해주고 싶지는 않아?”

빌리 “부모님이 우리 관계에 간섭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기도 해서 지금은 생각 없는데, 나중에 얘기할 거 생각하고 밑밥 깔아놓은 게 있기도 하지.”

서로를 친구라고 소개해줄지언정 그냥 친구이지만은 않다. 빌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현은 장례식에서 운구를 맡기도 했다. 남자친구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애인으로 소개할 때 빌리의 가족이 현을 미워할 수는 없게끔 만드는 어느 정도의 밑밥이 되길 바라면서.

빌리 “그런데 나중에 우리 둘이 동거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결혼이란 선택지를 상상하기 힘든 성소수자 커플들에게 동거란, 서로가 인생의 반려자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연차가 오래된 성소수자 커플들이 동거를 시작한다고 하면 비성소수자 커플들의 ‘우리 결혼할 거야’라는 뉘앙스로 들리기도 한다.

오소리 “그래서, 둘이 결혼식은 할 거야?”

소주 “그러게. 현이는 우리 결혼식 때 부케도 받았잖아!”

그렇다. 소소부부의 소소한 결혼식 때 두 신랑은 각자 부케를 들고 있었는데, 신랑 오소리가 던진 부케를 현이 멋지게 받아냈었다.

현 “예전에는 미국처럼 외국인의 혼인신고도 받아주는 곳에 가서 혼인신고라도 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지금은 아무 혜택도 없는데 굳이 미국까지 가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고….”

빌리 “동거를 하게 되면 한번 생각해볼 것 같아. 지금은 둘이 같이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결혼식하고 나서 각자 집으로 가면 너무 웃기잖아.”(웃음)

소주 “결혼식 때 가족들은 초대할 거야?”

대부분 사람에게 결혼식은 ‘가족 행사’이기에 가족을 초대하는 게 당연하지만, 성소수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다.

현 “고민이 좀 되네.”

빌리 “초대는 하고 싶은데 그 전에 어떤 것들을 먼저 해야 할지 아직 생각을 못 해봤어.”

오소리 “우리도 초대는 다 했는데 소주 어머님만 오셨거든.”

사실 초대하면서도 별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알리기는 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안 오니까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소주 “가족이 별건가 싶지만, 별거긴 하더라고.”

가족은 여전히 어렵다. 사랑하는 둘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가족의 간섭이 싫으면서도, 지지받고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가족에게 가장 커밍아웃하고 싶지만, 동시에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기가 가장 어렵다.

누군가는 빌리와 현처럼 밑밥도 깔고 논쟁도 벌이며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내고, 누군가는 소소부부처럼 설득과 기쁨, 혹은 좌절의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고, 누군가는 철저하게 숨긴 채 살아가고, 누군가는 아예 절연을 택한다.

성소수자들은 그렇게,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오늘도 가족을 향한 커밍아웃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