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 참사 시민사회 여론동향 문건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의 시민사회단체 사찰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해당 문서의 작성 경위와 목적, 어떤 과정을 거쳐 작성됐는지 등을 밝히고, 이미 거짓으로 드러난 내용들에 대해 날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경질을 요구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문건에 나온 내용으로 회의를 한 바도 없고, 이런 종류의 입장을 밝힌 적도 없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없다”라며 “경찰당국이 새빨간 거짓말을 날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청은 해당 문건에서 전국민중행동이 이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정부 대응상 미비점을 적극 발굴하고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썼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정부는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한 책임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진정성 있는 사과는 하지 않고 엉뚱한 말들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굉장히 신중하게 처신해왔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라며 이번 주말부터 정부 규탄 투쟁에 나설 것을 밝혔다.
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도 “경찰의 정치적 선동, 날조와 위법한 정보 수집으로 마련한 이번 문건에 대해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참사 발생 후 경찰이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것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수습,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었지만 경찰은 그 시간에 정치적 선동과 날조 보고서를 작성했다”라며 “여성연합이 이번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악의적 프레임을 씌웠다. 단체 내부 구성원과 소통한 것처럼 써놨지만, 여성연합 그 누구도 경찰과 접촉한 사실이 없고 이와 같은 내용을 검토한 적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문건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동향에 대해 “당장은 여성안전 문제를 본격 꺼내들긴 어렵지만, 추후 여가부 폐지 등 정부의 반여성정책 비판에 활용할 것을 검토 중이라 함”이라고 써,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 정책국장은 “이번 참사와 여성가족부 폐지 대응 활동을 연결 짓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라며 “올해 초부터 이미 여성연합은 여가부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는 활동을 지속했고, 지난달에 발표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막아내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전종덕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윤석열 정부의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다. 전 사무총장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이 정부의 안전 관리 대응 미비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책임을 축소하고 사태를 왜곡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라며 “총체적 무능과 경악할 만한 인식을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형사처벌까지 포함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사의 책임을 함께 묻겠다고도 했다. 전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중대재해기업법의 범위를 확대하고 법을 강화하는 등 법적, 제도적 마련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며 “11월 12일 10만 총궐기를 통해 노동자, 시민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투쟁에 적극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는 “416연대가 발표한 성명의 핵심은 딱 하나였다. 피해자들에 대해 위로하고, 이 사태를 올바르게 수습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라며 “그런데 마치 정권에 대해 위협을 가한 것처럼 왜곡해 놨다. 이번처럼 잘못된 정보를 모으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만드는 그런 관료들에 대해선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경찰청 문건에 대해 “언론 통제의 더러운 의도가 이 문건에 그대로 다 묻어있다”라며 “시민의 안전을 지키라고 권력을 줬더니 그저 5년짜리 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데 경찰공권력이 사용됐다”라고 비통함을 전했다. 윤 위원장은 “이번 경찰의 시민사회 동향 문건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박근혜 퇴진을 이끈 촛불시위를 떠올리게 된다”라며 “광우병 촛불시위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앞에선 사과하고 그 뒤로는 국정원, 경찰, 검찰을 동원해 권력을 비판한 언론을 때려잡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정수석이었던 김영한 비망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 권력 기관들이 모조리 언론을 장악하는 데 동원됐다. 박근혜 탄핵 후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6개월 만에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문제가 된 경찰청 문건은 정부의 안전관리 미흡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보도를 주시하며 과거 대형 재난 사고 시 언론의 논조 변화 추이와 시사점을 분석했다. 문건에서 경찰은 “MBC PD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들도 심층 보도를 준비 중이어서 ‘정부 책임론’ 부각 소지”가 있다며 이를 대응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체로 사고 발생 2~4일 ‘정부 대처, 사고 원인’ 등에 관심이 고조되다, 정부의 중간수사결과 또는 재발 방지대책 발표 등을 계기로 보도가 감소”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정부의 대응 단계에 따라 관련 보도들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후 정부 및 경찰의 대응이 진상 규명보다 정부 책임론을 벗어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를 애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저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지난 2일 저녁 6시 34분부터 한 시간 동안 이태원역에 모여 참사의 진상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 책임자들의 제대로 된 사과와 처벌을 요구했다. 6시 34분은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에 관련 신고가 최초로 접수됐던 시간이다. 청년이 주최가 된 추모행동은 우선 이번 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대표는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다고 하는데 왜 자꾸 이런 참사가 일어나냐는 질문을 받았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일상을 버틸 수는 있지만 참사의 순간을 막지는 못한다. 참사의 순간에는 징조가 있다. 그 징조가 보이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하고, 참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는 정치와 책임자들의 문제인데, 그런 역할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란 참사가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참사가 중단되는 그날까지 청년들은 끝까지 함께 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