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불매운동 때문에 가맹점들 다 죽는다(?)

[미디어택]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를 다루는 언론의 차이

  10월 20일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SPL 산재 사망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은 SPC 그룹을 규탄하는 한편, 추모의 벽을 만들어 메시지를 남겼다. [출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SPC의 만행에도 한국 사회는 너무나도 조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매운동은 아직 불이 붙지 않았을 뿐, 이미 시작됐다. 부디 SPC가 몰락의 길로 걷지 않기를….”

불과 5개월 전,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의 53일간의 단식에 대한 칼럼1 마지막 단락은 이랬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SPC그룹 전 계열사 브랜드를 향한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SNS에는 “사지도 먹지도 않겠습니다”라며 #SPC불매 해시태그와 SPC 브랜드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SPC 불매운동 이야기를 하게 됐다.

불매운동에 불을 붙인 건 SPC 그룹의 몰상식한 태도 때문이었다

지난 10월 15일, SPC 그룹의 계열사인 SPL의 평택 소재의 제빵공장에서 20대 청년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평택 공장은 주간 조와 야간 조로 나눠 12시간 맞교대로 운영해왔고, 사망한 노동자는 당일 야간 조로 새벽에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SPC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민들은 분노했다. SPL 평택공장에서는 2017년부터 지난 9월까지 37명이 끼임을 비롯한 다양한 사고들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배합기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4월에만 두 차례의 끼임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한 노동자는 회전하는 기계에 손이 끼어 골절상을 입었고, 또 다른 노동자는 청소하다가 인대가 늘어났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회사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2인 1조’ 원칙만 지켜졌더라도 최소한 사망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포켓몬빵이 편의점에 남을 만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SPC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이유다.

SPC의 미흡한 사망사고 대응은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늦장 신고’ 논란부터 문제였다. 평택공장은 사고가 발생한 기계에 흰 천을 씌워둔 채 곧바로 기계를 가동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노동자들도 출근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윤리 기업’이라는 비난이 거세졌다. ‘매뉴얼’이라는 이유로 숨진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자사 땅콩 크림빵과 단팥빵 두 박스를 조문 답례품으로 두고 간 사실이 드러나 유족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SPC 불매운동은 그렇게 더욱 뜨겁게 번졌다.

불매운동이 뜨거워지면 어김없이 ‘죄 없는 가맹점주’ 논리가 등장한다

SPC 불매운동이 점점 커지자, ‘죄 없는 가맹점주’ 논리가 어김없이 언론에 등장했다. 경제지를 중심으로 가맹점 피해 상황과 우려가 담긴 기사들이 ‘가슴앓이’, ‘전전긍긍’, ‘직격탄’, ‘한숨’, ‘울상’, ‘가슴 철렁’ 등의 수식과 함께 작성됐다.

한국경제는 <포켓몬빵마저 시들하다니…‘SPC 불매’에 가맹점주 가슴앓이> 기사에서 “현장에선 없어서 못 판다던 ‘포켓몬빵’까지 판매가 시들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라 SPC 가맹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불매운동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언급했다. 논리는 이렇다. 시중에 유통되는 제과·제빵 베이커리 제품의 90% 이상이 SPC가 납품하고 있으니, 불매운동은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애꿎은 자영업자들만 피해를 본다는 얘기다.

‘불매운동으로 SPC 브랜드 가맹점이 피해를 본다면, 그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가 제출됐다고 하자. 과연, ‘시민’이라고 답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 가맹점주의 피해의 원인을 시민들의 ‘불매운동’에서 찾는 건, 진짜 책임자를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 언론이 저울의 중심에 불매운동을 두고 좌와 우에 시민과 가맹점주를 놓는다면, 그 안에 SPC는 위치할 곳이 사라진다. 결국, SPC를 지워버리는 형태의 기사라는 얘기다. 그 프레임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미 그 프레임은 작동되고 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주)파리크라상, 배스킨라빈스와 던킨을 운영하는 비알코리아(주)가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을 상대로 영업방해 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는데, 여기에 130여 명의 해당 브랜드 프랜차이즈 매장 가맹점주가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시민들은 해당 가맹점 100m 이내에서 59가지 문구를 구호로 외치거나 유인물로 만들어 배포하는 집회·시위가 금지됐다.

  지난 10월 17일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난 평택 SPL 공장 앞에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가맹점의 피해를 모르는 게 아니다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를 모르지 않는다. SPC 가맹점의 피해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일 수 있다. 다만, 그때에도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가맹점 피해의 원인과 책임을 분명히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SPC 평택공장 사망사고의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론이 근본적인 역할이라는 얘기다.

한겨레 또한 <“손님이 SPC 계열사냐 물을 땐 가슴 철렁…매출 15% 줄어”>, <“SPC호빵 대신 찐빵” 대체재 찾는 소비자들…편의점도 고심> 기사를 통해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주의 목소리를 담기도 했다. 하지만 “불매운동 걱정되죠. 근데 저도 딸이 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는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는 가맹점주의 복잡한 심경에 주목했다. 불매운동을 탓하진 않았다. 한국경제와 한겨레 모두 ‘가맹점의 2차 피해’ 기사를 작성했지만 차이는 분명하다. 그 차이는 SPC 사망사고를 두고 발생한 불매운동을 누구의 책임으로 보느냐의 관점에서 비롯됐다.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의 원인을 SPC의 비윤리적 경영으로 봤을 때, 다음 대응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건 시민들의 불매운동을 금지하는 방향이 아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가 “회사에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안전 경영강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힌 것을 함께 본다면 어떤가. 결국, 가맹점이 입는 피해의 원인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SPC 경영진의 사과를 향한 시민들의 의심…그 또한 SPC의 책임이다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과 평택공장 사망사고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나쁜 기업은 한 명의 노동자에게만 나쁘지 않다는 게 이번에도 확인됐다. SPC가 노동자들을 함께 기업을 성장시키는 존재로 존중해줬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들 역시 SPC의 천박한 노동관을 꼬집을 뿐, 가맹점이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불매운동은 SPC에 ‘정신차리라’는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의 목소리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 가운데,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10월 21일 평택공장 사망사고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1천억 원을 투자해 안전 경영 시스템의 대폭 강화와 직원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SPC는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의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물거품으로 만들며 노동조합을 탄압한 전사가 있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이 돼버린 SPC의 앞날이 한동안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또한 SPC 그룹이 전적으로 안고 가야 할 책임이다.

  10월 20일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SPL 산재 사망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은 SPC 그룹을 규탄하는 한편, 추모의 벽을 만들어 메시지를 남겼다. [출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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