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모인 청년들…"살릴 수 있었다. 국가책임 인정하라"

청년 200여 명, 이태원역서 추모 행진 개최

이태원 참사 이후 첫 주말인 5일 청년들이 서울 용산 이태원 및 대통령실 인근에서 추모 행진을 벌였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국가·행정안전부·지자체에 묻기 위해서다.


5일 '이태원참사 청년 추모행동(준) 연석회의(연석회의)' 주최로 진행된 '이태원 참사 추모 청년 국화행진'에는 200여 명의 청년이 모였다. 이날 오후 2시 이태원역 4번 출구에 모인 이들은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을 향해 묵념을 진행한 뒤 약 5분가량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어 "6:34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 "살릴 수 있었다. 국가책임 인정하라"라는 슬로건이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대통령 집무실까지 약 1.5km를 침묵 속에 행진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첫 주말, 시민들도 이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가득 쌓인 국화꽃 위로 묵념과 추모의 말을 전했다. 한 시민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앞에서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되뇌기도 했다.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

행진 참가자들은 오후 2시 40분경 대통령 집무실 앞에 도착해 30분가량 추모 집회를 진행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 국가가 없었다는 구호처럼, 안전에 대한 시스템이 부재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대체 세월호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세월호에 있던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래서 가만히 있었다. 안전에 대한 시스템을, 이 국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시스템은 없었다. 책임 있는 자들의 무책임만 자리 잡고 있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건수 노동당 학생위원회 위원장은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이기에, 한국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김용균, 이선호, 구의역 김군 등 죽음으로 알게 된 청년들의 이름이 너무 많다"면서 "안전은 비용이라는, 안전은 부수적인 물품이라는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관점이 바뀌고 있지 않다. 그래서 청년,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안전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활동가는 "강남역 등 수많은 사건 속에 우리는 여태 운이 좋았다. 앞으로도 우리 목숨을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정부가 일상생활 속의 안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 예방할 수는 없는 걸까"라며 "정부가 죄송하다는 사과에서 끝내지 않고 다시 체계를 잡고 세워 국민의 안전을 지키길 한 명의 국민으로서 요구한다"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나온 책임자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과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모였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는 "어제(4일) 희생자 유가족 중 한 분은 시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이 바친 근조화환을 바닥에 버리셨다. 왜 대통령이 참사 6일만에 희생자분들께 사과 드린다고 말하는 것인지, 희생자 유가족분들께 동의 한마디 없이 합동 분향소를 차리는지 우리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과가 말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라며 "경찰청장, 행안부 장관, 총리까지 모두 파면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서희 민달팽이유니온 사무국장은 "우리들은 정부가 국가 애도 기간만 선포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안하무인한 태도를 기억할 것"이라며 "국가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자들에게 징계와 처벌을 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추모의 방식을 고민해온 이날 행진 참가자들은 행동하기를 선택했다. 최수빈 평화나비네트워크 서울대표는 "이 일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곳에 경찰이 없었는지 끝까지 묻고, 당신의 책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도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어 은설 청년녹색당 운영위원은 "현재 우리들은 생존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건너 건너 듣게만 된다"라며 "정확하고 따뜻하게 추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류호정 청년정의당 국회의원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며 "언론은 8년 전 단원고 학생들과 얼마 전 희생된 우리 또래 젊은이들을 꽃다운 청춘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부르시는지는 알지만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라며 "지난 8년처럼 그게 전부여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우리 동료 시민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 관련 청년단체들의 공동 대응을 위해 결성된 연석회의는 이날로 1차 행동을 마쳤다며, 앞으로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있을 때까지 행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석회의엔 노동당 학생위원회,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청년위원회, 대학생기후행동, 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민달팽이유니온, 불꽃페미액션,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녹색당, 청년유니온,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청년하다, 페미니즘당 창당 준비모임,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등의 청년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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