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 해소는 정부 대화로만 가능"

화물연대 파업 관련 기자간담회…"ILO 협약 무시 때, 무역 분쟁 가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파업 15일째인 8일, 정부가 시멘트 분야에 이어 철강·석유화학 분야에 대해서도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지난달 30일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 간 2차 협상을 마지막으로 현재 물밑 협상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금 올랐다는 것을 근거로 정부의 (노동자 파업권에 대한) 헌법 부정행위, 재벌 편들기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화물연대 파업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정부가 대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아울러 양 위원장은 이날 업무개시명령이 확대된 것에 대해 "정부가 국민의 삶, 경제와 무관하게 재벌의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토부 장관이 철강 분야 얘기를 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방문했기 때문"이라며 "올해 (대기업의 영업이익 예상이) 현대차는 2조2300억원, 포스코 6조3046억원, SK이노베이션 5조7천억원, 에스오일 4조2600억원이다.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하는 재벌가들에 경제 위기라는 딱지를 붙여 그들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태도, 이것은 국민의 삶, 경제 위기와 무관하게 재벌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민주노총·건설산업연맹·공공운수노조의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어느 때보다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서민들과 노동자들"이라며 "이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 서민들을 공격하는 모양새"라고 개탄했다.

이어 "정부는 이런 문제에 민주노총이 개입하지 말라고 하지만, 민주노총이 이러한 정치 문제, 법률과 제도를 바꾸는 문제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민주노총) 110만 조합원의 문제를 현장에서 임금이나 조합원의 처우개선 문제에만 주목한다면 아주 이기적인 집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 서민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해외 흐름에 반하는 공정위 노조 개입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민주노총 산하 건설산업연맹,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 활동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입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노동조합법과 공정거래법이 양립하기 어려운데, 공정위가 노조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들에 대해 조사 등을 진행하며 매우 이례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두 법률이 배타적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우선 공정위가 개입 중인 화물연대의 화물차주와 레미콘, 굴삭기 등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의 건설기계 차주가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자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운송회사, 화주, 건설사 등 다른 사업의 사업을 위해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이 사업자로 등록돼 있지만, 이들도 노조법상의 노동자"가 되며, "이들이 노조를 만들어 단체 교섭하고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법상의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대법원 판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 변호사는 "2018년부터 학습지, 카마스터, 방송연기자(에 대해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특정 회사에 전속될 필요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노조법이 보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 공정거래법은 40조 1항 1·2호에서 △가격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 △상품 또는 용역의 거래조건이나, 그 대금 또는 대가의 지급조건을 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노조의 임금 등 노무 대가에 관련한 교섭과 협약 체결을 막게 된다. 같은 항 3호에서 '상품의 생산ㆍ출고ㆍ수송 또는 거래의 제한이나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를 막는 것은 화물연대의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권 행사를 금지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는 노조 활동에 대한 한국의 공정거래법과 같은 법 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 권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은 노조 활동을 '반트러스터법(미국 경쟁법)' 적용에서 제외하고 미국 연방대법원도 노동조합 활동·단체교섭·단체협약에 대해 이 법에서 적용 제외가 된다는 판결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해 9월 '플랫폼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과 '1인 자영인의 단체협약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프리랜서 번역가, 프랜차이즈 가맹업주, 영세낙농업자 등 특수형태 노무 제공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이들의 단체협약이 경쟁법(한국의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해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가이드라인은 노동법상 노동자라는 판단을 받지 못하더라도, 1인 자영인(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단체교섭·단체협약을 통해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그동안의 법적 제약을 해제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노동법제에 따른 단체교섭·협약·단체행동권 행사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독점금지법(한국의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해외 흐름에 대해 권두섭 변호사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 가고 있다"라며 "현재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있는데, 철강, 특수 시멘트, 석유화학 운송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탄압하면 제품을 EU에 수출 못하게 하겠다고 해도 (한국이) 할 말이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ILO 협약 무시 때, 무역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관련 국제노동기구(ILO)의 긴급 개입 공문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ILO 협약을 무시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고됐다.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은 "비준국 정부가 협약을 위반한 때에는 ILO 헌장 제24조 및 제26조에 따라 진정 또는 제소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실조사위원회를 거쳐 ILO 이사회가 당사국 정부에 권고를 내리게 된다"라며 "정부가 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총회 결의를 통해서 해당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무역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라며 "한국이 미국과 EU, 호주 등과 맺은 FTA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이번 사태와 직결된 ILO 핵심 협약과 같은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FTA가 정한 노동분쟁 해결 절차의 대상이 돼 이행 부과금 부과나 관세 불이익 등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여당의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 3년 연장안을 수용하고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위한 합의 기구를 제안한 것에 대해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민주당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고 품목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 구성이 되면 곧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해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이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여야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사전에) 노조와 논의했거나 수용한 적도 없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해서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화물연대의 투쟁 승리를 위해 지난 3일 전국노동자대회, 6일 1차 총파업·총력투쟁 대회에 이어 동조 파업 확산 등 가맹·산하 조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화물연대에 대한 탄압이 전체 노동 진영으로 향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9일까지 전국 동시다발로 국민의힘 광역시도당과 주요 의원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등 여당에 대한 압방 투쟁을 전개한다. 오는 10일에는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투쟁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가, 12일에는 '12.12 노조법 2·3조 개정! 화물연대 투쟁 승리! 서비스연맹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다.

14일에는 전국 16개 거점에서 민주노총 2차 총파업·총력투쟁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22일에는 '2.22 (가)개혁입법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농성과 단식도 국회 종료 때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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