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숨구멍”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54) 총파업 중인 화물 운송노동자들의 이야기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을의 을의…을

“저는 게으르다고 소문이 났어요.”

12월 7일(화물연대 총파업 14일 차),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긴급 토론 및 발언대회'(정의당 심상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화물연대본부 공동주최)에 발언자로 참여한 시멘트 운송노동자 이성철 씨(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 소속)가 이야기한다. 화물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전혀 모르는 바가 아닌데, 그 당사자로서 대체 뭐가 게으르다는 걸까? 토론회장에 참석한 취재진도 화물연대 관계자들도 다들 의아한 눈빛이다.

“저는 15시간에서 20시간, 22시간까지 철야하는데, 저보다 독한 사람들은 자는 시간을 따로 두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에 밥을 두 끼 이상 챙겨 먹어요. 그 사람들은 밥을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어요. 밥 먹었다는 소리를 들어보질 못했어요. 김밥을 운전하면서 먹어요.”

벌크시멘트 트레일러(BCT) 운송노동자 이성철 씨가 들려준 안전운임제 적용 전 상황이다. 성철 씨가 운송하는 시멘트 품목은 2020년부터 안전운임제를 적용받고 있다. 성철 씨는 자신을 포함한 동료 화물노동자들은 자는 거에 도가 텄다고 했다.

“8초면 곯아떨어져요. 10분 자고 알람을 안 맞춰도 10분 만에 딱 일어납니다.”

그렇게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이고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짐을 실었는지 안 실었는지, 밤인지 낮인지 5~10초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들 노동자들이 또 한 가지 도가 튼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직감적으로 아는 ‘눈칫밥’이다.

“노동자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습니다. 일하다가 ‘야, 2시간만 자고 어디 좀 갔다 와’하면 ‘이거 얼마짜리입니까?’ 물어보질 못했어요. 물어보면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한 달 일하면 월 내역서가 나와야 되는데, 안 줘요. 달라고 하면 ‘너 일하기 싫으면 그만둬’ 그래요. 시멘트 상차하는 공장에 갔을 때, 먼지가 많이 나서 집진기를 고쳐서 먼지 좀 안 나게 해달라고 하면 운수회사에다가 얘기한다고 해요. 언제든지 ‘내일부터 일하지 마’ 이렇게 직접 말 할 수도 있고, 아무 말 안 해도 배차가 안 나와요.”

안전운임제 이전에는 극심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누가 일을 주는지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을의 을의 을에 다섯 단계가 되면 누가 (일을) 주는지 운수회사를 체크할 수가 없어요. 돈이 내려와요. 그러다가 돈이 안 와요. 중간에서 누가 어떻게 돌렸는지도 몰라요. 을의 을이다 보니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도 있고요.”

2020년, 3년 일몰로 시멘트와 컨테이너 품목에 안전운임제가 적용되었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된 이후, 성철 씨는 더 이상 내역서를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지급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 나오는지, 언제 나오는지, 어음으로 주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하지 않는다. 이 역시 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작게나마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도란 ‘화물 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의 보장을 통하여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법(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으로 규정해놓은 것을 말한다. 성철 씨는 안전운임제를 ‘화물노동자의 숨구멍’이라고 했다. ‘숨구멍’이란 답답한 상태를 조금이라도 터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Daum 사전)이다.

“최소한의 숨구멍이에요. 사람이 살려면 숨 쉬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긴급 토론 및 발언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화물노동자들 오른쪽부터 김윤진·이금상·이성철 씨 [출처: 연정 작가]

4시간 이상 자면 많이 잤다고 해요

비조합원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장거리 컨테이너 운송노동자 김윤진 씨의 증언도 다르지 않았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일주일 내내 경기도-부산 왕복을 뛰고 졸린 눈 비벼가면서 일해야 생계유지가 간신히 되는 정도였다.

“저희는 하루 2시간 자면 좀 적게 자고, 3시간 자면 평균적으로 자고, 4시간 이상 자면 많이 잤다고 얘기해요. 운송사에서 배차를 주는 대로 바로 움직여야 하거든요. 짐을 싣고 부산에 내려가서 짐을 내리고 곧장 짐을 싣고 다시 올라와요. 그리고 또다시 운송사에서 배차받고 바로 짐을 싣고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는 일을 반복합니다.”

왕복 ‘한 탕’에 15시간 이상 걸리는 일을 4~5건 정도 하고 나면 한주가 간다. 계속 배차를 기다리고 움직여야 하다 보니 집에 들를 잠깐의 시간도 없어 먹고 자는 모든 것을 차 안에서 해결한다. 일 년 내내 거의 고속도로에서 살다시피 하는 삶이었다.

“씻는 거는 휴게소나 주유소를 이용해요. 조금 잘 되어 있거나 화물차가 많이 가는 주유소는 샤워장이 구비가 되어 있어서 그런 곳을 종종 이용하는 편입니다. 월요일 날 짐 싸 들고 나와서 토요일 날 빨래하러 집에 가죠.”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수면 부족으로 인한 졸음운전이었다. 밤늦게 잠깐이라도 자려고 휴게소에 들르면 화물차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다음 휴게소까지 또다시 졸음을 참고 가야 한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

윤진 씨는 해소할 길 없는 수면 부족과 피로에 대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다른 업종에서 일하기도 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되고 최근에 다시 컨테이너 업무로 돌아온 윤진 씨는 한 주에 한 건 정도 일이 줄어 몸 상태를 고려하여 휴식을 취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했다. 윤진 씨는 안전운임제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제도이기에 비조합원이지만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하며 파업에 동참했다고 했다.

과적·과속을 안 할 수가 없는 ‘탕벌이’

“저 같은 경우는 저녁 8시에 자요. 여름에는 해가 덜 졌는데, 자야 되니까 정말 돌아버립니다. 집에 아이랑 와이프는 제가 자고 있으니까 저녁밥 한번 제대로 소리 내서 못 먹습니다.”

오일 탱크로리(유조차) 운행노동자 이금상(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 소속) 씨는 새벽 1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2시쯤 적재 장소에 도착하는 생활을 14년째 하고 있다고 했다. 한두 시간 기다려 적재를 하고 서울 시내권으로 들어간다. 출근 시간에 걸리지 않도록 가능한, 아니 무조건 빨리 이동해야 한다. 서울 시내 정유 운송이 끝나면 다시 적재소에 가서 배차를 받아 이번에는 서울 근교 외곽 지역으로 나간다. 그러고 나면 오전이 거의 다 간다. 다시 두세 시간 기다려서 오후에 배차를 받아 이번에도 무조건 빨리 달린다. 퇴근 시간에 걸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저희는 탕벌이기 때문에 뛰는 만큼 벌잖아요. 과속이나 과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구조가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는 심야나 야간에 운행을 많이 하는데, 평일 주간에 일하는 거하고 똑같아요. 공휴일이나 주말, 밤샘도 마찬가지예요.”

안전운임제 강제적용 명령 내려야

2020년 안전운임제 대상 품목에서 제외된 정유 업종에서 일하는 금상 씨는 이성철 씨가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화물노동자 숨구멍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금상 씨 역시 그 숨구멍을 찾기 위해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동참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 8일간의 파업으로 국토교통부와 합의했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질, 곡물 및 사료, 택배 지·간선’ 5개 대상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지난 11월 24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정유 업계는 올해 4월 말에 시작해서 5개월 만에 900명이 화물연대에 가입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동안 화주 원청에 갑질 당하고, 강제 노역처럼 밤샘 일하고, 유가는 오르는데 운송료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업계 특성상 365일 24시간 계속 출하를 해요. 사실상, 24시간 동안 한순간도 쉴 틈이 없습니다.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온 감정이 북받쳐서 순식간에 900명이 가입한 겁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저희가 운송료 수입이 괜찮고, 근로조건이 좋다고 해요. 진짜 어이가 없습니다.”

유가나 환율 변동이 있을 때는 물량이 극심하게 요동쳐 며칠씩 집에도 못 가고 밤샘 운전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럴 때, 대형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금상 씨는 심야·주말·공휴일 수송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더라도 제대로 된 수당 지급이 이루어져 화주들이 주말·공휴일·심야 수송을 심사숙고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10일 단위로 평균가 적용을 하면 정유사의 물량 조달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수송 압박을 줄일 수가 있는데, 이를 먼저 하겠다고 하는 업체가 없다.

금상 씨는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함께 안전 문제를 이야기한다. 정유 수송 차량은 사고 즉시 화재나 폭발로 이어져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위험물 누출로 토양이나 수질 대기 오염을 야기한다.

“화물 노동자가 안전해야 도로가 안전하고, 도로가 안전해야 국민이 안전하지 않습니까? 위험물을 운송하는 노동자가 안전운행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재난과 위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윤석열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게 아니라, 안전운임제 강제적용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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