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 관점에서 COP27 돌아보기

[녹색 스트라이크] COP27 최대 승리자: 화석연료 산업, 정부와 금융자본


예정보다 이틀을 연장하며 폐막한 제27차기후변화당사자국총회(COP27) 결과를 놓고 평가가 분분하다. 2011년 이집트 민중의 항쟁을 통해 이룬 정치변화를 군홧발로 짓밟고 집권한 씨씨 군부독재의 인권탄압에 항의해 참가 보이콧을 주장하는 흐름도 있었지만, 샴 엘-셰이크에서 열리는 COP27을 앞두고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글래스고우 COP26의 실망스러운 합의를 보완하는 COP, 1.5도 기온상승을 지키기 위한 실행에 초점을 맞춘 COP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남반구와 국제 기후정의운동은 COP27에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등 기후정의 의제들을 중심에 놓고 한판 싸울 것을 벼르고 있었다.

CNN이나 뉴욕타임스, 가디언을 비롯한 해외 주류 언론은 진전된 온실가스 완화 혹은 감축 계획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국제사회가 남반구 국가들과 기후정의운동이 30년 넘게 주장해왔던 ‘손실과 피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치켜세우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성과는 더 있다.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최소 30% 줄이기로 한 협약 참가국이 150개로 늘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화석연료 퇴출을 위해 2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사실이다. 농업과 식량 체제의 전환을 도모하자는 문제의식이 공유됐고, 개최국 이집트가 가장 먼저 재정 지원의 수혜국이 됐다.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된 룰라는 아마존 밀림과 선주민 권리를 지키겠다고 선언하며 스타급 환영을 받았고, 내년부터는 처음으로 COP 기간 ‘사회적 대화’에 기반한 ‘정의로운 전환 작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온실가스 감축의 과제는 진전되지 못했지만, 국제사회가 남반구와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인 모양새다. 실제 로이터 통신은 “COP27이 배출 감축의 진전을 포기한 대가로 ‘손실과 피해’ 기후 재정의 돌파구 제공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독일 기후 사절 등의 말을 인용하며 “많은 나라들이 손실과 피해 기금을 통과시키기 위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더 강력한 계획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마치 기후정의 실현의 과제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의 과제가 뒤로 밀렸다는 논조다.


그러나 기후정의 진영 안에서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 합의가 작은 성과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COP27은 완벽히 실패한 회담이었다는 비판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오미 클라인, 제레미 코빈, 썬라이즈무브먼트 등이 참여하는 ‘프로그레시브 인터내셔널(PI)’은 성장주의 산업경제로 인한 지구의 급속한 황폐화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한 결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27번째 실패를 경험했다” 선언했고, COP27에 참여한 60여 개 기후정의운동 단체들의 국제 연대체인 ‘뿌리 동맹(It Takes Roots Coalition)’은 “화석연료 기업과 거짓 해법에 모든 걸 내주면서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건드리지도 못한” COP27을 힐난했다. 이 온도 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COP의 역사는 그레타 툰베리가 말하듯 휘황찬란한 말만 난무하는 ‘블라블라블라’의 역사였다. COP27 기간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이미지 중 하나는 1979년 첫 세계기후회담과 1995년 시작된 COP 이후 대기 중 탄소량과 지구 기온이 끊임없이 상승해왔다는 도표였다. 실제 많은 연구들은 산업혁명 이전 시기부터 1990년까지의 탄소 배출량보다 1990년 이후의 탄소 배출량이 더 많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제사회가 모이기 시작한 후부터 탄소배출이 급격히 많아지고 지구 기온이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시작된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이 기업과 시장을 절대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안에서 진행돼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그리고 이런 신자유주의적 기조는 COP27에서도 그대로 관철됐다.

[출처: NASA 과학자이자 과학자반란 활동가인 피터 칼머스(Peter Kalmus)의 트위터(@ClimateHuman)]

주류 언론은 COP27에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진전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된 본질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많은 이들은 COP27이 지난해 글래스고에서 재확인된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파리협약 합의를 대신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길 원했다. 5년마다 감축 이행을 점검하는 파리협약 대신 매년 점검을 통해 이행 수준을 확인하자는 취지다. 더불어 역시 글래스고에서 합의된 석탄의 ‘점진적 감축’을 대신해 모든 화석연료의 ‘점진적 퇴출’을 합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진전은커녕 COP27 합의문에는 지난해 합의됐던 ‘2025년 배출 피크’ 조항도 빠졌고 화석가스1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재생에너지가 아닌) ‘저배출 에너지’를 지원한다는 조항이 마지막 순간 추가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발생한 세계 에너지 위기라는 맥락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긴 화석연료 산업은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636명의 로비스트를 총회에 보내 논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는데, 이들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우디 같은 화석연료 생산국이나 화석가스 개발에 따른 수익을 염두에 둔 많은 정부와 기업들도 이해를 같이했다. 이런 점에서 COP27의 최대 승리자는 화석연료 기업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정부와 금융자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개별 국가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는 금융자본의 역할은 특히 중요한데, 이들의 발자국은 COP27의 긍정적 성과로 평가되는 지점마다 어김없이 확인된다.

국제 기후체제와 금융자본의 지배

남반구의 ‘역사적 승리’라 떠들썩한 손실과 피해도 마찬가지다. 1~2미터의 해발고도로 인해 해수면 상승의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 작은 도서 국가들에서 처음 시작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요구는 2002년 ‘발리 기후정의 원칙’ 이래 기후위기를 야기한 북반구 선발 산업국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의 문제로 인식돼왔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올해 글로벌 기후파업을 앞두고 ‘기후배상’을 주된 요구로 삼으면서 ‘배상은 자선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민중에게 되돌려주는 변혁적 정의의 과정’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이런 관점은 COP27 총회에 참가한 기후정의 활동가들에 의해 강하게 주장됐다. 총회에서 앞장서 손실과 피해에 대책을 요구했던 파키스탄의 경우 ‘배상’ 대신 ‘보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책임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인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COP27 기간 내내 온갖 핑계를 대며 보상/배상의 책임을 회피했다. 기후정의 요구의 압력에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에는 합의했지만, 북반구 국가들은 보상이나 배상이라는 용어 대신 ‘손실과 피해 재원(loss and damage resources)’이란 용어를 고집했고 공공재정 투입 대신 민간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기금을 제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직 누가 재원을 제공하고 누가 받을 것인지, 어떤 기구나 거버넌스 구조를 통해 이것이 논의될 것인지 확정되지 않은 채 24개국이 참가하는 테이블에 모든 결정이 떠넘겨졌다. 또한 북반구 선발 산업국들이 2009년 약속한 매년 1000조 달러의 기금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손실과 피해에 관한 합의는 상징적 의미 이상을 가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민간 금융기관들이 손실과 피해 ‘재원’을 제공하는 경우 발생한다. 유엔과 옥스팜 등에서 발간한 많은 보고서는 지금까지 ‘기후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남반구 국가들에 대한 ‘지원’이 이들 나라들, 특히 파키스탄이나 에티오피아와 같이 기후재난으로 가장 심대한 타격을 받는 나라들을 극심한 빚의 늪에 빠져들게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반구 국가들에 대한 기후재정 지원은 무상 지원이 아니었고, 이윤을 목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 대출의 형태를 더 강하게 띠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출이 아닌 공적 자금에 의한 무상 지원이 증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손실과 피해 재원 마련에 금융기관이 참여할 기회를 열어준 것이니, 북반구 책임성과 보상/배상이라는 손실과 피해 기금의 애초 취지가 얼마나 지켜질지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기후금융이 공적금융이 아닌 민간 금융사들에 의해 주도돼 발생하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전통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완화(mitigation)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적응(adaptation)을 기후위기 대응의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오랫동안 ‘완화’에는 투자가 몰렸는데, ‘적응’에는 자금 조달이 어려운 문제가 지적돼 왔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완화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민간 기업의 이윤 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에 투자가 많았던 반면 기후재난 대비 인프라 구축과 같은 적응 과제는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COP27을 앞두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적응 관련 투자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개최국인 이집트의 농업과 식량체제 전환을 위한 재정지원 양해각서(MOU)를 맺었는데, 이 돈도 무상 지원이 아니라 세계은행을 통한 대출의 형태를 띤다. 이집트의 소농을 강화하는 대신 북반구 농업 대기업이 진출해 이집트 농업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COP27은 ‘정의로운 전환 작업 프로그램’을 설립해 내년부터 총회 기간 장관급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 ‘사회적 대화’ 노선을 취하는 국제노련(ITUC)은 이 결정을 크게 환영했지만, 국제 기후체제에서 진행되는 ‘정의로운 전환’의 현실은 무척이나 암담하다. 정의로운 전환 사업조차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의 이해에 의해 휘둘리면서 남반구 국가들의 공공성과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 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다. COP27 기간에 개최된 G20회담에서 JETP 사업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의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기 위해 2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는데, 겉만 보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루겠다는 JETP의 취지는 너무도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도 민간 금융이 핵심적 역할을 맡는 것으로 설정된다. 북반구 나라들로 이루어진 ‘국제 파트너 그룹(IPG)’의 성명에 따르면 넷제로(혹은 탄소중립)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은 “넷제로 전환을 위해 좌초자산의 가능성을 방지하고 민간 금융을 촉진하기 위한 필요성”에 기반한다.

이런 정책이 어떤 결과를 수반하는지는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남아공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 사업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지난해 COP26을 앞두고 에너지의 80% 가까이 석탄에 의존하는 남아공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85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관들은 남아공의 공공 에너지기업을 해체한 후 분할 판매하려는 계획을 드러냈다. 효율적 에너지 전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수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했음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위협받는 남아공 노동자들은 이 정책을 ‘녹색 구조조정’이라 비판하면서 반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기후정의가 아닌 이윤이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이 돼버린 신자유주의 시대, ‘정의로운’이 가장 부정의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꿰뚫어 볼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기후정의운동의 성과와 이후 과제

그렇다고 COP27을 기후정의운동의 실패로 볼 필요는 없다. 아무리 제한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 지난해만 하더라도 공식 의제에도 오르지 못한 손실과 피해 기금 건립이 합의된 것이나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그만큼 국제 기후정의운동이 특정 시기에 수용가능한 정책의 범위를 말하는 ‘오버튼의 창(Overton Window)’을 옮긴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디언이 사설에서 밝혔듯 이는 “남반구 나라들과 시민사회의 본질적인 승리”이자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인 것이다. 동시에 이와 같은 변화가 국제사회의 지배계급이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를 포획하려는 시도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나 활동가 나키얏 드라마니 쌈(Nakeeyat Dramani Sam)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각국 대표자들이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표자들이 청년세대에 기후위기 해결을 떠넘기고 있다며 다음 COP 회의에선 청소년들만 대표로 참석하는 게 낫겠다고도 했다. [출처: UNIC Tokyo]

COP27은 또한 기후정의운동이 ‘당사자주의’를 보다 확고하게 실현한 계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기후총회에선 그레타 툰베리와 같이 이전까지 국제 기후회담의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던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 활동가들의 모습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는 우간다의 바네사 나카테나 파키스탄의 아이샤 시디카 등 남반구 출신의 젊은 활동가들이 채웠다. 총회장 안에서는 잔잔한 목소리로 선발 산업국들을 향해 “우리에게 진 빚은 언제 갚을 것인가”를 물은 10세의 가나 활동가 나키얏 드라마니 쌈이 청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COP27 기간 중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발언으로 기억됐다.

갈 길은 멀지만 지난 20년간 국제 기후정의운동은 이처럼 국제 기후체제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북반구 국가들의 기후위기 유발 책임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배상 요구, 시장주의적 ‘거짓 해법’에 대한 맹렬한 반대와 공공적 경로 주장, 남반구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끝없이 증폭하려는 노력 덕분이었다. 이들은 COP에 참여하면서도 권력을 가진 자들의 논리나 규칙에 굴종하지 않았고 제도권 밖에서 풀뿌리 권력을 키워왔다. 소수 활동가/단체 중심의 활동과 이들을 정부와 기업의 하위 파트너로 삼는 거버넌스 체제에 익숙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COP27을 통해 확인된 국제 기후정의운동을 보며 토론할 것이 많을 것 같다.

<각주>
1. 천연가스가 화석연료임에도 불구하고 ‘청정’하다는 이미지를 준다는 문제의식에서 최근 천연가스 대신 ‘화석가스’를 사용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이 글에서도 ‘화석가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