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질문들]

연말이면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처럼 다이어리를 준비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다이어리를 1월부터 들춰본다. 거의 모든 날짜에 일정이 적혀있다. 4월부터 달력이 빽빽해지기 시작하더니 뒤로 갈수록 하루에 하나 이상의 일정이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열심히 살았다는 뿌듯함보다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뭐 이렇게 많은 일정이 있었나…. 활동가의 달력은 때론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스스로 즐겁게 벌인 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정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2023년의 달력은 어떤 일정으로 채워질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회의를 마치고 동료들과 식사하는데 모두 한숨을 쉬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파업이 정부의 지독한 공격을 버텨낼 수 없었고, 지지부진한 국회의 논의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는 단식은 찬바람 속에 길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이제 막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식사 내내 우리는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을 나누다 답답함과 걱정을 토로했다. 그러다 “그런데 윤 정부는 이제 1년도 안 됐어”라는 말에 짧은 침묵과 긴 한숨이 이어졌다. 밥을 먹었는지 한숨을 먹었는지 맛이 좋았던 반찬은 많이 남았고 밥을 다 먹고도 무겁게 앉아있었다.

그날 우리가 이야기 나누었던 올해의 일들은 각각 중요한 문제를 던졌는데, 개별적인 사건들이 연결돼 우리를 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싸움들은 우리를 어디로 끌어낼까? 2023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우리, ‘안전’할 수 있을까?

10월 29일 밤 ‘압사’라는 단어를 듣고 뉴스를 찾았다. 새벽까지 TV를 끌 수 없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장면이 보였다.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왜, 어떻게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정부는 수사를 지시할 뿐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사과는 없었다. 유가족들이 스스로 서로를 찾아 나서고 비통한 호소를 한 후에야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참사 54일 만이었다. 무참히 스러진 생명들 앞에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는 권력이 구축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국민 100명과 함께 한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여성 대상 강력범죄 대책에 대해 “여성이 불안한 사회는 우리 사회 전체가 불안한 국가가 되는 것”이라며 “아주 신속하게 여성이 불안해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는 선포를 한 대통령의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용어를 뺐고,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는 ‘섹슈얼리티’까지 지웠다. 무엇이 폭력이고 차별인지 성별 권력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상을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적 주체로 타인과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없는 세상이 여성에게 안전할 수 있을까? 성 착취물 유통 웹하드 사이트 운영으로 약 350억 원의 수익을 낸 양진호나 n번방 운영자 몇 사람을 처벌한다고 여성이 안전해질까? 괴물 같은 범죄자가 돌연변이처럼 세상에 등장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불안한 사회’를 만든다. 범죄 대응, 교육, 전담 부처와 정책, 예산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이 연결돼 있으므로 각각을 분리하고 범죄 대응만 하겠다는 것일까? 여성을 그저 범죄로부터 보호받는 대상으로 고정하는 것은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 안전하고 평등한 삶을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스토킹에 용감하게 맞섰던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 신당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직장 안 젠더 폭력은 일터의 약자인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 구조적 원인을 보지 않는 대통령이 ‘신속’하게 만들려는 환경이 안전한 삶의 기반이 되리란 기대는 생기지 않는다.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지난 9월까지만 510명이다. 매일 한 명 이상이 세상을 떠났고 다친 사람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노동자가 미래를 일구던 일터에서 미래를 잃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규정이 산업재해를 줄이지 못했다며 자율규제로의 전환을 말한다. 여당은 기업 대표 등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게 해 경영위축을 가져오니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내놓은 주 52시간 근로 시간 상한제 폐지 정책은 또 어떤가. 장시간 노동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이다. 질병이 생기는 것뿐만 아니라 피로 누적이 집중력을 떨어뜨려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자살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최근 3년간 자살 산재 승인 사유 중 가장 높은 비율이 과로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이 사람이 살아가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현실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선 기업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그것이 사람의 생명일지라도.

정부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노사 간 자율 합의를 통해 정한다고 하는데, 자율 합의를 하려면 노동자(노동조합)와 기업이 동등한 위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최소한 이 전제는 만들고 개정을 주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쪽에서 노사 자율을 얘기면서 저쪽에서는 노동 개혁이라며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바쁘다. 대통령은 노조부패 척결을 외치고, 국무총리는 노조 재정을 들여다보겠다 하고, 경찰청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지 따질 새도 없이 노동조합은 불법 비리의 온상, 부정부패 집단으로 보일 정도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불문 불법행위를 엄정 대응하겠다”지만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흐름은 화물연대 파업에서부터 이어져 왔다. 안전 운임을 요구하는 파업에 대해 행안부 장관은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해 중대본을 구성했다. 과거 ‘불법’ 프레임으로 파업을 압박했던 것과 달리 ‘재난’이나 ‘북핵 위협’을 빗대어 파업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게 만든 것은 충격이었다. 이태원참사에 어떤 책임도 보이지 않았던, 오히려 변명과 뻔뻔함으로 일관하던 행안부 장관이 참사 발생 한 달째에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참사 33일째에 이태원참사 중대본을 해산했다. 이태원참사의 피해자들은 이 상황을 어떤 심경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참사에 비유된 화물노동자들은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었을까?

“도로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화물노동자의 절규였다.” 단식 농성 중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일터에서, 지하철 역사에서 죽고 다친다. ‘이대로 살 수 없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며 자기 몸을 가두고, 죽고 싶지 않아서 생존을 건 단식을 하고, 장애인도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요구하려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이들이 온몸으로 전하는 구조 신호다. 나를 살려달라는 것만이 아니라 ‘같이 살자’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긴급 타전이다. 구조 신호를 외면하는 정부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유와 연대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에 비위가 상한다. ‘자유와 연대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자유와 연대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만 ‘법과 원칙’이 온전한 의미로 바로 서는 나라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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