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에게 우리의 노후를 맡길 수 없는 이유

[요즘 경제] 국민연금 개혁의 쟁점과 모두를 보장하는 방향

“경제력이 전혀 없는 노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부각시킬 수단이 없다. 착취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과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 관계를 끊어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이 그 누구에 의해서도 변호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부아르, 『노년. 나이 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p.11-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외면

비정한 사회일수록 ‘시장에서 교환되는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동등하게 부여된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햇수로 3년째인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에 대해 언론이 다루는 방식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을 위해 설계되고 운영되는 대중교통체계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사회 참여는 사실상 배제돼 왔다. 이러한 사회적 배제가 장애를 만드는 것이므로, 사회가 먼저 반성하고 개선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결국 당사자들이 스스로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직접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책임을 진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고 방치하면서, 장애가 없는 시민과 장애가 있는 시민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켜 왔다. 문제의 원인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과 차별이지만, 결국 생산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내세워 이들을 무참히 두들겨 패는 형상이다.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시민들은 정해진 출근 시간을 지키기 위해 수도권 전역에서 직장을 향해 멈출 수 없는 전쟁과도 같은 출근길에 몸을 맡기면서 다른 시민들을 위한 연대와 배려를 갖기 어렵다. 그 결과 원인 제공자들은 뒷짐 지고, 주어진 환경에서 태엽같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전시되고 방치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생애 과정에서 겪게 되는 노년은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애가 있는 시민들과 공통점이 있다. 생산에서 배제된 이들을 대하는 착취자들의 비정한 태도는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거듭되고 있다. 다만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는 장애 유무로 갈라쳐지고 있다면, 국민연금에서는 ‘노인세대(현세대)와 후세대(미래세대)’로 구분해 갈라쳐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퇴직 이후 노후소득보장을 위해서 만 18세 이상 사회구성원 모두가 관련된 사회 제도다. 생산에 종사하는 대다수 노동자와 시민들은 보험료 기여로, 그리고 퇴직 이후 연금수급 연령에 도달하게 되면, 급여를 받게 되는 수급자로서 관련을 맺는다. 이처럼 18세 이상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관계된 제도지만, 그동안 국민연금 개혁을 좌우했던 주체들은 소수의 전문가와 정치세력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정확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거의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1998년 1차 연금개혁 이후 가입자들에게 강조돼 온 하나의 정보는 ‘적립금 고갈’뿐이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재정안정을 목표로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후세대(90년대생 이후)는 빚더미에 앉게 된다는 공포가 추가됐다.

필자가 분노하는 지점은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노령층에 대한 소득보장을 축소하는 것을 마치 미래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개혁인 양 호도하는 일부 전문가의 목소리가 꾸준히 또 여과 없이 보도되고, 이들이 반복적으로 국민연금 관련 개혁위원회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냉정을 되찾고 아무리 살펴봐도 이들이 지키고 싶은 것은 ‘돈’ 자체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몫을 지켜내기 어렵고, 변호조차 받기 어려운 현재와 미래의 노령층을 위한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목표와 운영원리

공적연금이란 노동자들이 노령, 장애, 사망 등 사회적 위험으로 소득이 중단되거나 상실될 때, 이전 소득 수준을 일정 부분 보장해 주기 위한 사회보장의 주된 제도로서, 국민연금은 1988년부터 시행된 한국의 대표적인 공적연금이다. 국민연금법 제1조에 의하면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다. 즉 한국은 국민의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을 운영하겠다고 천명했고, 이를 위해 국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국민연금 운영은 이처럼 노후의 빈곤 예방과 소득보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적립금 자체가 본질이 될 수 없다.

국민연금제도는 18세 이상 국민의 의무가입을 통해 생애 전반 동안 사회보험료 납부라는 기여를 기반으로 노후에 수급권이 보장되는 사회보험제도다. 즉 기여를 기반으로 수급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보험료를 10년 이상 납부하지 못하면, 수급권이 발생하지 않고, 기여가 낮은 경우 급여 수준을 높이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제도적 특수성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이에 2007년 제2차 국민연금 개혁 당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무려 33.3%를 삭감하면서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2008년 시행)했다. 이후 박근혜의 대선공약으로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 기초연금’이 후퇴해 현재와 같이 일부 노령층에게 제공되고 있다. 이처럼 기초연금의 확대 배경에 국민연금의 보장성 삭감과 정치적 포퓰리즘이 영향을 미치면서 제도의 정책적 목표가 불분명해졌다. 모든 노인에게 제공하는 진짜 보편적 기초연금이 되든, 특정 빈곤을 해소할 목표로 범주적 공공부조로 재편될지, 그도 아니면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공적 소득보장의 목표치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방식의 보충적 소득보장(Guaranteed income supplement)으로 전환할지에 대한 대중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사회보험제도에 절대로 유리하지 않다. 고용주가 사회보험료의 책임을 명확하게 지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유지는 고용 기간만큼 유지된다. 반면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자성이 불명확한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와 최근 플랫폼노동자 등은 원청 및 하청 사용주의 의지에 따라 직장가입 여부가 갈린다. 또한 이들 노동자가 지역가입으로 편입될 경우, 건강보험과 다르게 기여에 대한 강제성이 떨어지면서 보험료 납부에 예외가 발생하고 수급권이 약화한다. 바로 이러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내세워 국민연금이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유리하므로 기능을 축소하고, 기초연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국민연금은 저소득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됐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급여 계산식= 1.29(A+B)(1+0.05n/12)
- A값: 연금급여 수급 직전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3년 평균 소득액
- B값: 가입자 본인의 국민연금으로 가입기간 중 평균 소득액
- n: 20년 초과 가입 월수
*1.29는 2008년 1.5에서 매년 0.015씩 감소해 2028년 1.2로 축소

가입 기간 중 평균 소득액이 400만 원인 워 씨, 200만 원인 커 씨, 100만 원인 스 씨가 있다. 국민연금 완령노령연금 기간인 40년을 모두 채웠고, A값이 200만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1.29를 계산상 편의를 위해 1.2로 적용). 국민연금으로 받게 되는 급여는 워 씨는 월 120만 원, 커 씨는 월 80만 원, 스 씨는 월 60만 원이 된다. 워, 커, 스 씨의 평균 소득액 대비 소득대체율을 보면 각각 30%, 40%, 60%로 A값보다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매우 유리하다. 노동시장의 문제로 저소득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면, 소득대체율을 목표로 설정된 급여 산식의 기준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안은 없고, 중위소득자 이상을 위한 제도로 바꾸자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저임금 노동자나 저소득 계층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노후소득보장제도는 기초연금이 아닌, 가입 기간을 다 채운 국민연금이다. 그러므로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가입 기간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공단과 국가의 노력이 절실하다. 노동시장의 문제를 내세워 국민연금을 축소하자는 주장은 결코, 저연금자들을 위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소득에 완전 비례한 국민연금으로 바꾸는 것이 재정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주장까지 제시되고 있다. 기초연금으로 무연금자나 저연금자를 지원하고 있으니, 국민연금에서 A값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A값을 제거하고, B값만 남기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A값 미만의 소득자들을 위한 적정 노후소후소득보장의 이정표를 뽑아내고, 그저 최저수준의 생계비로 만족하라는 위험한 선민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약자 복지’가 반복지적인 이유는 국가의 재분배 활동의 준거가 ‘사회적 필요’에서 정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약자’ 여부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동등한 시민권은 약자와 강자로 구분되고, 보편적 권리가 선별적으로 취급되는 전근대적 선민의식이 인권을 짓밟고 있다. 정권과 정권이 정의라고 믿는 시장, 개인의 자유에 이로운 연금은 공적연금이 아닌 개인연금이다. 이에 이 시기 연금개혁의 논쟁에서 ‘돈’에 대한 얘기가 절정을 치닫고 있다.

노후소득보장의 개인 책임 강화를 위한 숫자들의 향연

국민연금 개혁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된다. 하나는 한국의 노인빈곤이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주된 원인은 불충분한 공적노후소득보장제도 때문이므로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를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본다. 2021년 기준 한국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OECD 37개국 중 가장 낮은 43.4%로, OECD 평균 13.1%에 비해 3배 이상 높다.(1)

다른 하나의 입장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의 문제로 적립기금 고갈이 예상되므로 보험료는 올리고, 보장성을 축소하되, 국민연금 이외의 다양한 사적연금으로 보충하는 다층체제의 강화를 주장한다. 이에 지난 연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028년까지 21.89%나 2033년까지 22.63%까지 올리자는 주장까지 제시됐다. 이처럼 보험료 인상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대표 인사인 윤석명은 ‘공적연금 강화란 명목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겠다는 것은 공적연금의 재정적인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더욱 왜곡,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2) 윤석명의 이러한 주장은 개혁과정마다 반복됐고, 그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영국의 공공경제학자인 바르(N. Barr)의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이 떠오른다.

구성의 모순이란 어떤 것이 개인에게 진실이므로 전체에 대해서도 반드시 진실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즉 보장성 강화는 국민연금의 낮은 보장성 수준을 고려할 때, 당연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정불균형을 내세워 제도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했다. 국민연금의 제도적 지속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재정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이다. 단적으로 재정을 아무리 쌓아놓아도 살고 싶은 사회여야 출생률도 오르고, 내일이 기약되는 것이다.

두 입장은 국민연금의 재정운용 방식과 기금에 대한 이해가 다르므로 그 견해 차이가 좁혀지기 어렵다.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방식에서 재정운용을 적립방식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일정 기간만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지속되는 한 신규 가입자가 계속 발생하고, 만약 재정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국가가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보험료 인상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립방식에서 재분배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공적연금제도는 대다수 부과방식의 재정원리를 채택하고 있다.(3)

부과방식과 적립방식

·부과방식: 매년 연금 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해당 연도 가입자의 연금보험료 수입으로 충당하는 방식.
·적립방식: 장래에 소요될 급여비용의 부담액을 제도가입 기간의 평준화된 보험료로 적립해두는 방식. 주로 사적연금의 재정방식.

그러므로 시장에서 계약을 통해 가입한 사적연금의 경우 기여한 보험료에 상응하는 급여가 결정되지만(수지상등), 공적연금은 재분배 요소와 세대 간 연대를 전제로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을 적금과 같이 개인의 저금으로 이해하거나 다뤄서는 안 된다. 개인이 각자 해결해야만 했던 노후소득을 사회 전체가 사회적 부양제도인 국민연금 같은 집합적인 노력을 통해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으로 특정 세대가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고, 특정 집단이 더 많은 수익률을 본다는 식으로 접근해서 이 제도의 집합성과 공공성을 훼손하게 둘 순 없다.

국민연금기금은 2022년 10월 말 기준, 915조로 공·사를 망라한 세계 연기금 중 3위의 규모다. 그리고 주식시장에 42.6%, 채권시장에 40.7%, 대체시장에 16.7%의 비율로 국내외 금융시장에 모두 투자되고 있다. 이 비중을 GDP와 비교해 보면, 2020년 기준으로 45.1%, 즉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가까운 자금이 금융시장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기금 규모가 큰 노르웨이와 일본도 GDP 대비 8%, 33% 수준이라는 점을 볼 때, 현재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너무나 크다. 그런데 비약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GDP의 상당 부분을 금융시장으로 사장화하는 효과를 낸다. 더불어 가계의 소득 및 소비를 감소시키고, 기업의 고용 회피로 이어지면서 잠정적으로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재정안정화라기보다는 돈을 쌓아두기 위한 재정개혁이 될 수 있고, 쌓아 둔 돈은 현재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국민연금개혁의 우선 목표는 부족한 소득보장의 제고와 이에 필요한 보험료율 조정이 될 수 있다. 또한 현재 쌓여 있는 기금을 금융시장이 아닌 출생률 제고와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자해서 향후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국민연금과 사회를 위한 진정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곧 제5차 국민연금재정재계산 결과가 발표될 것이고, 또다시 적립금 소진 시기와 이에 따른 보험료 부과요율이 충격적인 소식으로 포장돼 전파를 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엉뚱한 전문가들이 우리의 노후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지켜보고, 바로잡아가야 할 것이다.

각주
(1) OECD, 『Pensions at a Glance 2021』, 2021, 187p
(2)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한 공적연금 제도개혁 방안 모색』, 국회입법조사처, 2022, 11p.
(3) George E. Rejda, 『Social Insurance and Economic Security』, Routledge, 2012, 27~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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