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4년, <검은 시위>를 읽는 이유

[기고] <검은시위: 자본주의와 낙태죄, 그리고 반격의 페미니즘> 서평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왔을 때 나는 마침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판결 소식을 들었을 때 면접이고 뭐고 기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 불합치 소식을 듣고 운동을 통해 실제로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판결 이후 4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나 유산유도제 도입은 실현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지, 재생산과 임금노동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판결 이후 한국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고 확장되었는지 등의 질문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책은 그 대답에 앞서 폴란드, 미국, 아르헨티나, 아일랜드의 낙태죄에 대항하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끌어낸 여성들의 투쟁을 담고 있다. 폴란드는 소련 해체 이후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기층의 불만이 커져만 갔다. 그런 불만을 먹고 성장한 법과정의당(PiS)은 최저임금과 복지수당 인상을 약속하며 유권자의 수를 늘려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가톨릭 신앙과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억압했고, 2016년 낙태죄를 강화하려는 시도 역시 그러한 지배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여성들은 그러한 정권에 맞서 수십만 규모의 투쟁에 나섰고, 바로 이것이 폴란드 검은 시위의 촉발점이 되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파업하고 연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임신중지를 계급적 이슈로 봤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폴란드 여성이 임신중지 수술을 받기 위해선 월급의 50~100% 정도를 지출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에도 2020년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더욱 강화했지만, 현지 여성들의 싸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작년 6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혔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에서 임신중지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뒤집혔던 배경에는 19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임신중지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었다. 당시의 리차드 닉슨(공화당)은 임신중지 금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가톨릭과 보수적인 유권자들을 모았다. 보수적인 개신교·가톨릭과 정치 세력은 68혁명 이후 쇠락한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그들의 입지를 재건하고자 전략적으로 임신중지 금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세력 또한 선택권을 옹호할 뿐 실제적인 권리는 외면했다. 이 책은 인종주의와 결부된 임신중지 권리에 대해서도 자세히 분석한다. 인종주의와 결합된 보수주의는 가난하고 교육에서 배제된 유색인종 여성의 성적 권리를 억압하고 있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전복된 현재, 미국에서는 여러 주가 임신중지를 금지했으며, 임신중지가 가능한 주에서도 많은 여성이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지독한 페미사이드에 저항해왔다. 2015년에 여성 청소년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이에 분노한 여성들은 ‘니 우나 메노스(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라는 문구를 들고 거센 저항을 일으켰다. 2016년에는 대규모 여성파업을 조직하여 이러한 폭력을 방치한 국가를 마비시켰다. 이와 함께 임신중지 권리에 대한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이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중도좌파 정부 이후 당선된 보수 정권의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의 어려움, 가톨릭 국교로 인한 보수주의적 성 관념, 여성 노동자 계급운동의 부재가 있었다. 이후 2020년 말,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이 제정되면서 아르헨티나 일부 여성들은 무상 임신중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든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녹색의 물결이 흩날리고 있다.

아일랜드는 2018년 5월에 ‘헌법 8조’가 사라지기 전까지 산모의 건강, 강간·근친상간, 태아의 손상 등의 사유에서도 임신중지 자체가 불법이었다. 1983년에 만들어진 수정헌법 8조가 태아와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를 하지 못해 여성들이 사망하게 된 사건은 아일랜드 여성들에게 헌법 8조를 폐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촉발시켰다. 이들은 폴란드의 ‘검은 시위’에 영향을 받아 2017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헌법 8조 폐지를 위한 여성파업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는 아일랜드 주류정치가 침체하는 경제 속에서 자신의 세력을 잃지 않기 위한 양보였다는 점도 지적한다. 아일랜드의 임신중지권에도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처럼 국가들의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책에서는 하나의 공통적인 맥락을 짚어내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치가 그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전통적인 이성애 중심의 가족주의와 성역할 규범과 노동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값싼 임금으로 노동계급 여성을 착취하고 재생산을 통제함으로써 다음 세대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한 수단이다. “부자는 임신중지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죽는다”는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시위 구호는 그 의미를 파악하게 해준다. 또한, 1970~80년대 여성의 성적 권리/해방을 주장했던 백인 중심의 2물결 페미니즘이 당시 좌파 지식인들에게 외면받고 저임금, 유색인종 여성들의 계급적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이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4B 운동이 아니라 성과 재생산 권리 운동을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조직하고 확장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전한 부분을 보면, 성과 재생산 권리가 보편적 권리로 보장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전하고 있다. 재생산권과 노동권은 서로 결부되어 있다는 인식은 신체의 ‘정상성’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한 저임금 노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많은 여성들은 4B 운동(비연애, 비혼, 비출산, 비섹스)을 통해 가부장제에 편입되지 않고 경력 단절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적인 생존을 선택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생활과 남성중심적 보수정치의 백래시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는 더욱 축소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를 전면으로 내세워 당선되고 난 뒤, 부정의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논의가 더 확장되어야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선 4B 운동이 아닌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에 대한 고민과 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여성’이라고 지정한 성별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위치에 있는 여성인지에 따라 이 재생산 가능성은 억압당한다. 기회도, 결과도 불공평한 이 사회에서 노동계급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재생산 가능성마저 포기하고 있다. 여성은 아이를 낳을 예정, 또는 아이를 낳고 남편이 있다는 가정으로 생애 전반에서 차별받는다. 여성의 재생산 가능성 때문에 주요한 생산력을 담당하는 노동자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쫓겼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거나 기르고 싶어도 이성애 규범의 혈연중심적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 생존전략,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로 임금노동에 기반한 생산과 소비를 할 뿐이지 성과 재생산의 의미와 정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성과 재생산 권리는 안전하게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권리이자, 가족을 구성할 권리, 어떤 노동이든 생산된 가치를 인정받고 공평하게 분배받을 권리가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성과 재생산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러한 권리들을 쟁취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모순을 찾아내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저자의 제안대로 필자 또한 여성파업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제안한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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