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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와 사진


《워커스》 100호를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 그간의 고생을 위로한다 해야 할지 판단이 잘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어떻게 온라인을 선점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 종이 잡지를 만들겠다던 그 호기로움에 동참한 지 7년이 되었고 100번째 책을 만들고 있네요. 처음 회의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여전히 동시대와 화해하지 못한 화난 사람들 몇몇이 있었는데 빈틈없어 보이는 자본주의의 바깥을 찾아보겠다는 몸부림 같았습니다. 이 실험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가시지 않았지만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참세상>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이 의심을 뒤덮을 만큼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휴간, 월간으로의 변경, 판형의 변화 등등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 100번째 책을 만들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래도 축하한다는 말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워커스》 웹사이트에 들어가 소개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참세상이 월간 워커스(workers)를 창간했습니다. 워커스는 참세상의 취재역량을 확대하고 파격과 혁신, 연대를 모토로 하는 디자인 그룹과 사진가들과의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생산됩니다. 새로운 이미지와 디자인과의 만남을 통해 청년과 노동자들의 저항과 계급적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젊은 시사 월간지가 되고자 합니다.”

여기서 ‘사진가들’의 사진을 책임지는 게 저의 역할이었던 듯합니다. 잡지의 기획안이 나오면 그에 맞는 사진들을 섭외하기 위해 이리저리 연락하고 수락과 거절을 거친 후 ‘프리퀄’과 ‘리부트’라는 책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화보를 구성하고 내지에 사진을 배치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작가들의 사진으로 ‘프리퀄’ 한 꼭지를 채우는 일에 허덕거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일종의 변명과 반성, 그리고 부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워커스》에서 사진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렇습니다. 우선 기사와 사진을 동등한 위치에 놓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신문과 시사잡지에서 느꼈던 사진의 위치는 늘 기사를 보조하는 일종의 ‘짤방’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진과 기사가 독립적으로 위치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각자의 벡터가 중첩되고 충돌하면서 생기는 일종의 왜곡이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워커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사잡지에서 기대하는 이미지의 전형과 관성에서 벗어난 작가들의 사진을 적극적으로 기사에 개입시켰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작가의 작업 의도와 어긋나더라도 그것이 이미지가 갖는 유연한 복제-확장의 힘이라 믿고 작가를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발표 기회가 많지 않은 작가들의 안정적인 작업발표 지면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시스템의 관성이 가장 빠르게 적용되는 곳이 시각을 둘러싼 세계입니다. 이는 사진이나 미술을 둘러싼 일종의 유행과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작업이란 이 관성을 극복하는 의지의 표현이라 여전히 믿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 작가들의 작업을 화보로 지속해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움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불편을 생산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각적 방법론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작가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지면이 필요하다면 《워커스》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내용이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이지 않더라도 이런 불편은 늘 정치적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으로 《워커스》는 매호 20면이 넘는 지면을 작가들을 위해 비워주었습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반성문입니다. 저는 결국 ‘리부트’ 화보 꼭지를 지켜내지 못했고 내지 사진은 카피라이트에서 벗어난 사진들을 찾아 기사에 적당히 배치하며 진정한 ‘짤방’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러 상황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극복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또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 몸에 쌓인 관성적 태도도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워커스》 100호에 글을 실어달라는 요청에 오랫동안 머뭇거렸던 이유입니다. 많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 원고를 수락한 것은 위에서 말한 《워커스》 첫 회의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무모했던 기획이 지금 저에게 건네는 가장 큰 의미는 여전히 실험을, 운동을, 싸움을 종료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편집장에게 ‘구인 광고’를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워커스》의 ‘리부트’ 화보 꼭지를 되살리는 데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작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에디터로서 저의 능력 부족입니다. 하지만 점점 더 시스템과 불화하는 작업이 줄어드는 경향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무수한 곳에서 시각세계의 걸림돌이 되기 위한 작업을 고민하는 많은 작가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워커스》에 작업을 보내주세요. 꼭 사진만 가능한 건 아닙니다. 회화 등 평면 매체뿐 아니라 영상 스크린샷을 활용해 서사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미지와 관련한 글을 보내주시면 제가 잘 정리해두었다가 각호의 기획에 따라 화보를 구성하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책의 처음(프리퀄)에 혹은 책의 마지막(리부트)에 게재될 수 있고 각 화보당 10면 내외가 배치됩니다. 물론 작지만 원고료도 드립니다. 이 부탁이 《워커스》 100호를 맞아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업 보내실 곳: jinh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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