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기후운동과 같이 가자!

[기획연재] 당사자의 목소리, 나는 4월 14일 세종으로 간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당사자들이 일상을 멈추고 오는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로 모입니다.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는 기획연재로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414기후정의파업 참여 이유를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전합니다. 이들이 외치는 ‘함께 살기 위해 멈춰’에 공감한다면 414기후정의파업, 세종정부청사 앞으로 달려와 주십시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 https://april4climate.tistory.com/

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이고 노동조합 활동가다. 솔직히 말하지만 ‘기후위기’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레타 툰베리를 알고 지구가 더워져서 산불이나 홍수 등 이상기후가 잦아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금방 잊어버렸다. 기후위기는 지구상의 많은 문제 중의 하나이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다른 많은 문제처럼 그저 불편과 고통을 떠안고 살면 되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기후위기’가 직접적인 나의 문제로 처음 다가온 것은 보령화력 1·2호기 폐쇄가 결정된 2019년이다. 현장조합원들 사이에서 ‘발전소가 폐쇄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동조합 회의에서 이 문제를 많이 논의했다. 그때마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동의한다’는 결론이 뒤집어진 적은 없지만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았다. 반대 입장은 대체로 ‘석탄발전소가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고용이 불안해지다 보니 석탄발전소 폐쇄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거다. 걱정의 목소리는 석탄발전소 폐쇄 후에 LNG 발전소가 대체 발전소로 건설된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많이 잦아들었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동의하는 노동자들!?

발전노동자들은 석탄발전소 폐쇄에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 발전노동자 스스로 석탄발전소 폐쇄를 주장하는 단계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차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양대노총 결의대회가 있던 날, 발전노조와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용산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사전 집회를 열었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약 500명의 원·하청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명박 정권 시절 노조파괴를 겪었고, 그때 만들어진 복수노조로 발전 산업 현장은 갈라지고 약화돼 독자적인 집회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여는 발전노동자 단독집회여서 그런지 분위기도 한껏 고무돼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현장조합원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말을 들었다. 우리는 석탄발전소 폐쇄로 발생하는 고용문제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 집회에 갔는데, 온통 석탄발전소 폐쇄하라는 구호와 요구밖에 없어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석탄발전소가 기후위기의 주범이고 하루빨리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주눅 들고 죄인이 된 것 같았다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런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진행된 ‘발전비정규노동자 인식조사’에서 노동자 74%가 ‘고용이 보장되면 석탄발전소 폐쇄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런 결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설문 결과가 솔직히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됐다. 조건을 단 것이 한편으로 이기적으로 비춰지고 나아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덜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아마 집회 후에 현장조합원의 말을 듣고 느꼈던 당혹감은 노동자의 현실적인 생각(설문 결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각색했던 오만에서 비롯된 것 같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부족함을 보완하고 가장 올바른 길을 찾아내지 않았던가?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기후재난은 불평등하다고 한다. 발전소 폐쇄에 따른 피해도 마찬가지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피해를 더 본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2차 하청이 더 큰 피해를 본다. 서천 1·2호기, 영동 1·2호기, 보령 1·2호기, 삼천포 1·2호기 등이 폐쇄될 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20명은 모두 2차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용케 살아남은 2차 하청노동자들도 임금, 노동조건, 노동시간 모두가 더 나빠진 일자리로 이전했고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전무했다. 여성과 고령자가 많은 청소노동자의 경우 피해는 더 심각했다. 보령 1·2호기 폐쇄 후를 대비하기 위해 9명이 일해야 할 공간을 2명이 일하기도 했다. 울산의 경우 자회사가 감축해야 할 인원을 노동자에게 통보하고 누가 퇴사해야 하는지를 노동자가 직접 결정하도록 한 일도 있었다. 노동자 사이에 갈등이 극심했다. 이 과정에서 줄어든 인력규모만큼 인건비는 줄어들었고 강제 퇴사를 거부하는 노동자와 그 동료에 대해서는 인건비가 삭감되어 지급됐다.

고용유지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까지는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폐쇄 초기 단계고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까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폐쇄 석탄발전소 인력을 나머지 석탄발전소에서 흡수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도 없거니와 남은 석탄발전소도 점점 줄어든다. 게다가 정부의 더딘 에너지 전환계획을 감안해도 석탄발전소 폐쇄 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노동자의 고용 면에서 보자면 본격적인 위기가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노동자모임'(정태모)이 태안 시내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태모’ :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노동자모임

지난해 924기후행동이 준비될 때, 태안화력 내 6개의 민주노조가 ‘우리도 폐쇄 석탄발전소 당사자로서 우리 목소리를 내보자’고 뭉쳤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함께 출근선전전을 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호의적이었다. 조직별로 5명씩 총 30명 참여를 목표로 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참여했다. 김용균 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원청과 하청의 노동자들이 서로 반목하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값진 성과였다.

내친김에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고 공동 활동을 지속하자고 결의했다.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노동자 모임’(정태모)이 결성됐다. 격주로 모여서 학습하고 매월 출근선전전과 유인물 발행을 결의하고 실천했다. 나아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고 3월 초에는 태안 시내에서 선전전도 진행했다.

다양한 세상과의 만남

활동을 시작하고 기후정의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들이 너무 다양해 놀랐다. 막연하게 다들 정부가 하지 않는 혹은 정부가 싫어하는 활동을 하는 곳들이니 노동운동과 비슷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만남이 잦아지면서 공통분모도 더 많이 확인됐지만 차이점 역시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전력산업의 민영화 주장은 노동자의 입장과 완전히 상반돼 양립하기 힘든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발전노조의 역사가 민영화 반대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력산업 민영화는 발전노동자와 상극이었고 노동자민중에게도 재앙이다. 또 공공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는데 다만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은 다를 수 있고 심지어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풀기 위해 큰 노력이 있어야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는 또 자본주의 체제전환과 다른 세계를 꿈꾸는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담대한 전환을 향한 노동자 투쟁

정태모는 2주에 한번씩 모여서 공부한다. 얼마 전에는 조천호 교수의 기후 관련 동영상 등을 보고 소감을 나누고 간단한 토론을 진행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야 했기에 깊이 있는 토론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수억 명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수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기이한 상황에 참담해 했다. 또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책임이 있는 자들이 책임을 지기는커녕 그린워싱으로 노동자민중을 기만하고, 심지어 석탄발전소를 폐지하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석탄발전소를 짓는 모습에 분노했다.

기후위기를 막는 투쟁과 노동자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투쟁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자본이 만들었다. 자본과 싸우는 노동운동이라면, 기후위기 해결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체여야 한다. ‘고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혹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라는 단서로 노동운동과 기후위기 해결을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양자를 대립시키는 힘, 그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의 힘이다. 고용보장에서 출발하는 노동자의 투쟁은 기후위기를 막고 세상의 많은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는 싸움으로 나갈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414기후정의파업에 동참해 세종정부청사에서 노동자의 함성으로 넘쳐나도록 만들자!

  발전노동자들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직접 소식지를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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