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사장님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이슈]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나의 노동, 저항의 시작은 개인정보 열람부터


며칠 전 ‘배달의민족’ 배달노동자들이 파업을 예고했다. 라이더에게 지급되는 기본배달료를 인상하지 않으면 5월 5일, 어린이날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문득, 배달하다가 쓰러져 사망한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뇌리를 스쳤다. 사실, 의아한 마음이 든다. 배민, 쿠팡이츠 등의 홈페이지를 보면 라이더란 언제든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일한 만큼 나의 수입이 되는, 효율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꿈의 프리랜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빛 좋은 개살구였나.

배민 라이더의 노동은 흔히 ‘플랫폼노동’으로 불린다. 사전적 의미로는 ‘디지털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노동’을 의미한다. 온디맨드 경제(On-Demand Economy)는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각종 물품 및 서비스를 O2O(Online-to-Offline)의 형태로 즉각 원하는 시간에 맞춰 제공하는 주문형 서비스를 지칭한다. 온디맨드 경제 하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독립계약자로서 위탁계약의 노동을 제공한다.

‘알고리즘 인류’. 우리는 알고리즘의 매력 혹은 알고리즘의 덫에 걸려 일상을 살아간다. 알고리즘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공정성과 자율성, 인간의 존엄성으로 자리매김하는 ‘알고리즘의 매력’에 가까우면 좋겠지만 실체는 불공평하고 파편화해 노동자를 옭아매는 ‘알고리즘의 덫’에 더 가까워보인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저항은 전 세계적 사안이다. 특히 스페인 대법원의 판결이 주목받는다. 스페인 대법원은 2020년 9월엔 스페인의 배달앱 글로보(Glovo)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2021년 5월엔 영국의 배달앱 딜리버루(Deliveroo) 배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2021년 5월엔 일명 라이더법(Ley Rider)이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됐다. 법의 핵심은 플랫폼 배달노동자를 독립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한 점과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 매개변수’를 노동조합에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업무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결정의 기준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주요한 쟁점이다. 라이더 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알고리즘 사장’을 강조한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의 결정으로 배달을 하고 배달료가 책정된다. 라이더 노동자들은 배달 단가의 변동 기준이나 변동 추이, 배차 기준, 패널티 기준 등 업무와 관련된 주요 결정들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는지 알지 못한다. 모든 결정이 이뤄지는 알고리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탓이다. 

배달앱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으로 배차하고 배달료를 결정하는데, 날씨나 교통상황 등에 따라 배달료는 실시간으로 변동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배달료는 3천 원이 될 수도 있고, 4천 원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변동의 구조를 정작 라이더는 알지 못한다. 라이더 노동자는 인공지능이 결정해서 배차하는 ‘콜’을 무작정 많이 수락할 수밖에 없다. 콜을 얼마나 수락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고 등급에 따라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수락률은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콜을 수락하는 건당으로 소득이 책정되다보니 빠른 배달, 과도한 경쟁에서 과속과 과로가 발생한다. 자연히 사고율도 높아진다. 사고가 발생해도 라이더 노동자들은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독립계약자’기 때문에 그 책임과 부담은 고스란히 라이더의 몫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재보험법이 개정돼 2023년 7월부터는 라이더 노동자들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 정도다.

플랫폼 기업은 라이더 노동자의 노동 과정, 노동의 결과, 이에 대한 고객의 평가 등을 모두 자동으로 기록한다. 이 기록으로 플랫폼이 보유하게 되는 정보는 라이더 노동자의 개인정보다. 플랫폼 기업이 보유한 라이더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인공지능 알고리즘 시스템과 맞물려 통제의 기제로 작동한다. 

결국 플랫폼 기업이 공개하지 않는 알고리즘이란 라이더 노동자의 노동조건, 정보인권을 기반하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선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까지 작용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정보 열람요구, 직접행동의 출발

플랫폼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으로 개인정보 열람요구권이 있다. 배달의민족 라이더 노동자는 ‘배민커넥트’ 웹사이트에서 개인정보처리방침 ‘이용자의 권리와 그 행사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열람방법을 확인한 후, 개인정보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개인정보 열람요구로 개인정보처리자가 정보의 주체와 관련된 어떤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지,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은 무엇인지, 다른 업체에 내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라이더 노동자라면 자신이 수행한 업무, 주행 기록, 고객들의 평점 등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열람을 플랫폼 기업에 요구할 수 있다. (개인정보 열람요구는 개인정보보호법 제35조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로 라이더 노동자 뿐 아니라 정보주체 누구나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

전 세계 개인정보보호법의 기준이라고 불리는 GDPR(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정보주체의 열람권이 명시돼 있다. 개인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가 개인정보 처리내용과 그 적법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주체의 요구가 있으면 자신의 개인정보 및 처리목적 등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한다. 

개인정보 열람의 의미가 쿠키 부스러기처럼 사소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 열람은 알권리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으로 이어지는 초석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알고리즘 투명성 열람요구를 시작으로 소송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란 알고리즘의 굴레에서 기계처럼 취급하는 노동조건을 드러내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회복해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것, 즉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에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과정이다. 

2022년 7월 법원은 타다 드라이버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라이더 노동자들이 ‘알고리즘 사장’으로부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쟁취해가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역행하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시작이다. 

스페인 글로보(Glovo) 배달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싸움의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내 개인정보가 알고리즘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떻게 의사가 결정돼 내 노동에 영향을 끼치는지 의문을 품는 데서 시작했다. 그 의구심이 정보주체로서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설명을 요구하도록 이끌었고 문제의식이 명확해지고 발전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한 노동자들이 연대와 투쟁이 시작됐다. 

나의 개인정보를 알고리즘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공개하라는 요구는 정보주체의 권리,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으로 이어진다. 알고리즘에 의해 지배받는 감시와 통제, ‘알고리즘 사장님’의 감시와 통제로 마음 편히 화장실도 못가는 괴롭힘은 없어져야하지 않을까. 먼저, 열람요구를 통해서 의심스러웠던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저항의 불씨가 되어 길을 만들어 줄 알고리즘 투명성 요구, 개인정보 열람요구로 직접행동의 출발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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