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투쟁, 그리고 투쟁의 무기

▲ [공장 내 문제]란 주제로 그린 노동자의 그림. 한 공장 내에서도 힘들고 덜 힘든 부분이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의 어린 노동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그려냈다. 지친 표정,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된 노동을 잘 드러내 주고있다. "배경의 푸른색은 힘든 노동현실을, 붉은 색은 노동자의 투쟁과 희망을 표현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우리 노동자는 노동과정, 노동현실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실천을 한다. 노동자의 삶에 대한 긍지와 동료에 대한 애정이 가장 힘든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쓰라린 마음으로 지켜보게 한다. 그 긍지와 애정이 더욱 더 높아만 가는 노동강도와 늘어나는 노동시간 속에서 늙어 가는 우리 노동자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젊든 나이들었든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 희망을 발견한다.


▲[공장 내 문제]란 주제로 파업을 경험한 버스노동자의 그림. "작은 승리를 안고,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노동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그에 비해 임금은 점점 줄어들고, 뼈빠지게 일하지만 우리 노동자는 이렇게 늙어가고 해고와 노조 탄압 등 현장탄압이 극심하다"고 작가는 그림설명을 한다.
노동자의 그림은 노동자의 고통과 투쟁, 희망을 그려 낸다. 이렇듯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가 자신의 이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실천적인 작업이기에 그림 그리기는 또 하나의 투쟁이다.

그림은 노동자의 투쟁을 그려 낼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투쟁을 고양시켜내는 투쟁의 무기가 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노동자로서 긍지를 지니고, 동료에 대한 애정을 갖고, 파업투쟁을 경험하고, 자본의 본질을 안다면 우리 노동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림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아직 자신의 그림이 또 하나의 투쟁이며, 투쟁의 무기라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하지 못했을 지라도 우리 노동자는 그림으로써 자신의 느낌과 생각, 성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아직은 미숙하고, 더디고,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서서히 자신의 발전을 이끌어 가고 드디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욱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비약적인 성장의 그 날을 맞게 될 것이다. 하여 정확히 인식하게 된다. 자신이, 자신의 그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20-30여 년을 자신만의 관념의 유희를 펼쳐 보이는 그림, 화려한 색과 형상들이 난무하는 그림, 사물의 본질이 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극도의 추상적인 그림들, 그저 보기 좋은 과일과 꽃을 그린 정물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여성을 대상화한 누드화 등이 아름답고 훌륭한 그림이며 예술이라고 배워 왔다. 너무도 당연하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두 계급을 초월한 그림이나 예술은 하나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는 모두 계급성을 드러내는데 자본가 문화의 계급성만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주입되고 지향하도록 한다. 자본은 하나의 몸짓, 말, 노래 하나하나에까지 그들의 논리를 깔아 놓고 있다. 자본의 세상인 이 세상 도처에는 이윤증식과 경쟁,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자본가 문화만이 난무할 뿐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문화를 절대 보급하지 않는다. 보급한다면 자본가에게 더 이상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고, 오직 상품으로서 이윤을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가짜 노동자 문화만을 보급할 뿐이다. 더 이상 노동자예술, 문화가 아니게 되었을 때일 뿐이다. 과거의 많은 문화예술인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뿜어내는 나팔수로서 기능하는 예술과 문화가 되었을 때뿐이다.


▲[Unite-Strugle, 단결-투쟁]
투쟁하는 동료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매 순간 우리 노동자의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지배이데올로기가 침투하는 분야가 문화부문이다. 문화는 노래로, 춤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너무나 친근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한다. 우리 노동자가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바보상자 TV가 자본가의 사상, 지배자의 사상으로 쪄든 문화를 고스란히 우리 노동자의 가슴에 꽂으며 그들의 사상을 지향하도록 만든다. 명절이나 친구들의 모임 등에서도 가족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기주의, 출세와 성공,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노동자의 선진적인 부분들까지 가차없이 쳐들어 온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존엄과 노동자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창피하고 미친 짓이라는 손가락질을 가족과의 일상적 만남에서 당해야 한다. 가족들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이렇듯 가족 또한 지배이데올로기가 주입된 문화를 반영하여 노동자의 사상을 공격하는데 일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투쟁하면서 알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되풀이 되며 질질 끌려가는,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더 많은 노동자들도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처럼 우리 노동자문화는 곳곳에 존재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투쟁이다.

이 문화투쟁에서 전문적인 능력과 수단을 쥘 수 있다면 더 강력한 투쟁의 무기가 될 것이다. 우리 노동자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투쟁과 함께 현장에서 투쟁을 만들어 나가고, 투쟁의 무기를 굳게 움켜쥘 것이다. 우리 노동자는 살아 꿈틀대야 하고, 투쟁해야 하며, 우리의 건강한 노동자문화를 생산해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 되어 우리 노동자의 문화예술을 우리의 정서로서, 정신으로 마음껏 생산할 수 있는 그날까지. 투쟁!!